고 윤이상 돌아온 통영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 기념관 앞 전경. 시민들이 기념관을 관람하거나 산책하고 있다. 통영/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이상 기념관이 있는 통영시 도천동 생가터에서 부터 옛 통영보통학교로 이어지는 ‘윤이상 학교 다니던 길'. 통영/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 기념관 옆 ‘베를린하우스' . 방송사가 취재중이다. 통영/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죽어서 23년 만에 돌아온 고향
‘이장 반대’ 집회 한층 잦아들고
거리엔 ‘평화’ 기원 환영 메시지 현대음악 거장의 기념관
친북 이념 논란에
7년간 ‘도천테마파크’라 불리다
지난해야 ‘윤이상’ 제 이름 찾아 윤이상의 생가가 있던 도천동 갯벌은 매립돼 사라졌다. 통영시는 2010년 윤이상의 생가 터 부근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을 지었다. 그러나 기념관은 ‘도천테마파크’로 불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라 친북 논란을 빚는 윤이상의 이름을 건 기념관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야 겨우 제 이름을 찾았다. 이중도 윤이상기념관 팀장은 “윤이상을 둘러싼 많은 오해로 이름을 붙이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그래도 시내버스 정류장 명칭은 ‘윤이상기념관’이었다”고 말했다. 기념관은 지난해 리모델링을 하면서 독일 베를린에서 생활하던 집을 축소해 재연한 ‘베를린 하우스’도 새로 지었다. 이 집에는 윤이상이 베를린에서 사용한 피아노를 비롯해 책걸상·소파 등 가재도구가 그대로 옮겨져 있다. “동양의 사상과 음악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킨 그가 쓰던 피아노 위에는 대금과 피리가 놓여 있었다.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 기념관 옆 ‘베를린하우스'. 윤이상이 독일에 머물렀던 집을 재현해놓았다. 서재에 꽂혀있는 책들이 보인다. 통영/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봉래좌’ 지금은 주차장 됐지만
독일 집 재연한 ‘베를린 하우스’엔
그가 쓰던 피아노와 대금·피리가… 윤이상의 유년 시절 놀이터였던 극장인 문화동의 ‘봉래좌’는 지금은 주차시설로 바뀌었다. 윤이상은 이곳에서 조선 명창 이화중선의 남도 노래를 들었던 기억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봉래극장’으로 이름이 바뀐 뒤엔 무성영화가 상영됐다. 필름을 교환하는 중간에 최신 유행가나 서양의 클래식을 연주해준 까닭에 윤이상은 이곳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통영시 도천동 윤이상 기념관 옆 '베를린하우스'. 윤이상이 독일에 머물렀던 집을 재현해놓았다. 통영/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이상이 작업하던 책상을 재현해 놓았다. 통영/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윤이상이 묻히게 될 통영음악당 묘자리에서 한려수도가 내려다 보인다. 아직 터를 다지고 있는 포크레인이 보인다. 통영/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통영의 딸’ 송환 논란 계속…분단의 비극은 현재진행형
윤이상의 귀향은 분명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다시 한번 ‘분단의 비극’을 곱씹게 만든다.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윤이상은 2년간 감옥 생활을 한 뒤 독일로 추방돼 영영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2006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동백림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대포장한 사건으로 판단했지만 ‘통영의 딸 신숙자 송환’ 문제는 아직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했다.
신씨의 남편인 경제학자 오길남씨는 독일 유학생 시절인 1985년 가족과 함께 월북했다가 1992년 혼자 귀국했는데, 북한에 간 것이 윤이상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신씨와 두 딸은 북한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이상의 가족은 2011년 오길남씨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으나 2013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윤이상 가족 변호인인 민병덕 변호사는 “무혐의 처리가 된 것은, 생전에 월북을 강요한 적이 없다는 진술서를 쓴 윤이상이 사망해 진위를 확인할 수 없고, 오길남의 주장이 허위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이상의 가족은 “안타깝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언젠가는 역사가 다 정화해줄 걸로 믿는다”고 말했지만, 통영시애국시민총연합회 등 보수단체들은 “신씨와 두 딸의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라며 여전히 윤이상의 국내 이장을 반대하고 있다. 통영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윤이상의 유해가 임시 안치된 봉안당 보안에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통영/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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