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더>는 주인공 수진(이보영)이 버림받은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렸다. tvn 제공
‘친엄마가 유괴범에게 5억원을 요구하며, 돈을 주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친엄마와 유괴범이 뒤바뀐 것 아니냐고? 아니다. <마더> 속 상황이다. <마더>는 2010년에 방영된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작이다. 한국판에서는 원작의 적지 않은 부분이 바뀌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비밀은 없다> <아가씨>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정서경 작가의 영민한 대사와 한국적 정서를 반영한 극적인 연출이 몰입감을 더한다.
학대와 애정결핍 대물림되는 구조
아동학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해자의 76%가 친부모라는 통계 앞에서, 모성을 자연적 본성인 양 치부하는 관념은 설명력을 잃는다. 관련 뉴스가 터질 때마다 공분과 연민이 몰아치지만, 정작 양육과 모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마더>는 양육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아동학대가 단지 개인의 인격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지원의 부재로 생기는 참사임을 고발한다. 또한 학대와 애정결핍이 대물림되는 구조를 선연하게 드러낸다.
<마더>에는 다양한 모성이 등장한다. 수진(이보영)에게는 엄마가 둘이다. 8살 수진을 보육원 앞 계단에 매어놓고 사라진 친모와 보육원에서 만난 수진을 공개 입양한 배우 차영신(이혜영). 차영신은 수진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안겼지만, 수진은 10년째 연락을 끊고 홀로 살아간다. 그런 수진 앞에 혜나(허율)가 나타난다. 조류학자인 수진이 잠시 초등학교 임시 교사를 맡았을 때, 더럽다고 따돌림당하는 혜나를 만났다. 영양실조와 학대의 흔적이 역력한 혜나를 위해 수진은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추운 밤 쓰레기봉투 속에 버려진 혜나를 발견한 수진은 “네 엄마가 너를 버렸듯 이젠 네가 버리는 거야, 엄마를. 할 수 있겠니?”라 물으며, 혜나와 함께 탈주길에 오른다.
드라마는 자식을 버린 친엄마들과 자식을 품은 양엄마들을 보여주지만, 단순히 나쁜 엄마와 좋은 엄마를 대비시키는 이분법에서 벗어난다. 그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모성을 방기하게 되고, 어떤 심정으로 아이를 입양하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아이가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를 탐문한다. 그리고 유괴와 탈주의 과정에서 아이와 어른이 동시에 성장하는 서사를 만들어낸다.
혜나는 울지 않는 아이였다. 때려도 웃으며 안아달라는 혜나를 보고 혜나의 친모 자영은 “질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혜나에게 완전히 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스무 살에 미혼모가 된 자영에게 홀로 혜나를 키워야 하는 책임은 너무 버거웠다. 그때 유일하게 도움을 준 남자가 설악이었다. 아직 젊음과 연애를 즐기고픈 자영에게 설악은 놓치고 싶지 않은 ‘오빠’였다. 자영은 동거하는 설악이 혜나를 때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혜나가 사라지자, 자영은 설악과의 단란한 삶을 꿈꾼다.
혜나는 자신의 존재가 엄마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설악의 폭행을 견디며 살았다. 하지만 수진을 엄마로 받아들인 뒤, 자존감을 키우며 자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혜나는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아이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가 된다.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자영에게 “혜나는 죽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수진이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홀로 길을 나선다. 심지어 자신을 납치해 죽이려는 설악과 마주한 상태에서 혜나는 설악의 내면에 서려 있는 학대의 경험을 꿰뚫어보고 동병상련을 느낀다. 아이라고 믿기 힘든 성숙의 경지다.
“엄마가 키웠으면 다 내 친딸이야”
수진은 혜나와 함께 탈주에 나서면서, 일생 풀지 못했던 친모의 비밀을 알게 된다. 가난한 미혼모였던 친모는 동거남의 폭력을 견디며 살았지만, 수진이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동거남을 죽여버린다. 수진을 보육시설에 매어놓은 뒤 찾지 않은 이유는 끔찍한 폭력의 기억에서 수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수진을 구하기 위해 살인했고, 출소 후에는 수진이 입양된 집 근처에 살면서 딸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수진은 과거의 기억을 잊고 차영신의 딸로 자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늘 자신을 버린 친모를 그리워했다. 차영신은 수진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안겼지만, 그런 사랑이 부담스러워 수진은 차영신을 떠났다. 수진이 혜나를 만나 엄마가 되는 과정은 그가 자신의 두 엄마와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수진은 친모가 왜 자신을 버렸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고, 차영신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품었는지 이해하게 된 것이다.
원작보다 가장 강렬하게 각색된 인물은 차영신이다. 원작에서는 성공한 사업가였던 인물이 한국판에서는 여왕 같은 카리스마를 뿜는 대배우로 바뀌었다. 젊은 시절 차영신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친 뒤, 이미지 쇄신차 보육원에 갔다가 자신을 위로하는 수진을 만났다. 수진을 입양한 차영신은 이후 커리어를 쌓아가며 당대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딸들에게 “엄마는 아버지가 다른 딸 셋을 키우면서 아버지가 누군지 상관하지 않도록 가르쳤다. 너희들 중에는 엄마가 낳지 않은 아이도 있지만 내 친딸이 아닌 아이는 하나도 없어. 엄마가 키웠으면 다 내 친딸이야”라 말하는 차영신은 흡사 가부장제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대모신 같다. 남편의 배신에 낙담해 커리어를 망치는 여배우였던 그가 엄마가 됨으로써 인간적 성숙을 한 것이다.
물론 그의 모성이 완벽하지는 않다. 수진의 뜻과 무관하게 자기 스타일의 삶을 강요하고 지배력을 행사하는 차영신에게 수진은 숨이 막혔다. 원작에서는 말기암 환자 설정이 수진의 친모 몫이었으나 한국판에서는 차영신 몫이다. 죽음을 앞둔 그는 10년 만에 나타난 수진과 그의 딸을 격하게 반겼으나, 수진이 유괴범으로 쫓기는 사실을 안 뒤 수진의 파양을 결정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가장의 결단이자, 수진을 향한 모성을 내려놓고 딸을 자유롭게 해주려는 조처였다. 하지만 혜나가 수진을 위해 홀로 집을 떠나자, 차영신은 파양을 철회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너는 내 딸이고, 네가 한 일 때문에 내가 부끄러워할 일은 없을 거야”라 말하며 모성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차영신은 또 한 번 성장을 겪는다.
이처럼 영웅적인 여배우를 본 적이 있는가. <사랑과 야망>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별에서 온 그대> <굿바이 싱글> 등 수많은 텍스트가 여배우를 그렸지만, 히스테리적이거나, 철이 없거나, 나이 듦을 불안해하는 인물로 묘사되곤 했다. 재벌가 안주인이 되는 길이 아니라, 순전히 직업적 성취로 여왕 같은 삶을 누리며, 아버지가 다른 세 딸을 풍족하게 키워낸 노년의 여배우를 일찍이 상상해본 적이 없다.
일본판과 다른 결말을 기대하며
<마더>는 훌륭한 극본과 연기가 어우러진 걸작일 뿐 아니라, 우리 시대 가장 긴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저출산의 위기를 외치면서도 아동학대, 독박육아, 산후우울증, 미혼모 등의 비명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것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성찰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재판과 언론을 통한 공론화 국면을 예고하며,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법적 규정보다 ‘이슈 파이팅’이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 각색이라면, 일본판과 다른 결말도 기대해볼 만하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 한겨레21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