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터전으로 한 펑크 밴드 ‘버닝 햅번’. 락웨일컴퍼니.
2009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밴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팀의 리더는 ‘책임감’이란 말을 썼다. 서울로 올라온 만큼 부산에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고 부산의 음악이 여전히 훌륭하다는 걸 알리겠다는 다짐이었다.
일종의 코스였다. 지역에서 활동하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오르거나 조금 ‘싹수’가 보인다 싶은 밴드 대부분 서울로 올라와 활동했다. 부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아’나 ‘레이니 썬’ 같은 밴드가 서울로 기반을 옮겨 활동했고, ‘갈매기 공화국’이란 일종의 연합체를 만들어 상경한 부산 팀들끼리 합동공연을 열기도 했다.
2018년, 부산에서 활동하는 밴드 ‘세이수미’는 5주간의 유럽 투어를 앞두고 있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를 도는 이번 투어의 이름은 ‘부산 콜링’이다. 영국 펑크 밴드 클래시의 앨범 <런던 콜링>에서 따온 ‘부산 콜링’은 ‘부산 밴드’ 세이수미의 정체성을 드러낸 이름이다. 세이수미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멤버들로 구성돼 연습실 바로 앞에 있는 광안리를 보며 음악의 영감을 많이 얻었다. 그들이 하는 음악 역시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서프록이다.
‘일종의 코스’가 변해가고 있다. 세이수미는 굳이 부산을 떠날 생각이 없다. 광안리 바다를 보며 맥주 한잔 하는 게 이들의 음악에는 굉장히 중요하다. “처음엔 그저 부산 밴드이기 때문에 부산 밴드라고 소개했을 뿐이지만 조금씩 정체성을 더 크게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의 인디 음악은 홍대 신(scene)이라는 말이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을 만큼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에 지방에서도 열심히 음악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어요.”
이런 흐름은 몇년 전부터 조금씩 감지되었다. 싱어송라이터 김일두와 김태춘이 이른바 인디 음악계 ‘삼김시대’의 ‘두 김(金)’으로 주목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들은 고향에서 음악을 하면서 가끔 서울에서 공연하며 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별시부산>이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들고 공연도 했다. 김일두, 세이수미, 지니어스 같은 음악가들은 ‘인디=홍대’라는 해묵은 편견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동네에서 얻은 경험과 영감을 노래한다.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복들 음반 ‘우주가 전복해’. 전복들 제공.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복들’은 얼마 전 3곡이 담긴 음반 <우주가 전복해>를 발표했다. 팀의 리더 고창일씨는 2000년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홍대 앞 클럽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고향에 내려와 가정을 이루고 꾸준히 대구에서 공연하고 있다. 그 역시 “홍대가 한국의 모든 인디 음악의 정서와 시장을 독점하는 방향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말한다.
“대구는 제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살아가는 곳이고, 그곳에 그들의 이야기와 생활이 있기에 저희들만이 할 수 있는 음악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저희들만이 할 수 있는 얘기들이 있다면 대구 음악인으로 제 역할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서울에 대한 동경이 실망으로 바뀐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세번째 앨범 <쉬 이즈 세븐틴>(She Is Seventeen)을 발표한 18년차 펑크 밴드 ‘버닝햅번’은 현재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결성 초기인 2001년쯤 아예 서울에 올라와 1년 정도 활동한 적이 있지만 막상 머물러보니 동경의 대상이었던 홍대는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겉은 화려해 보이고 시끌벅적했지만 실속은 없었다. 군 전역 한 뒤 자연스레 고향 대전에 자리를 잡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리더 송원석씨는 처음부터 대전에 대한 애정이나 자부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대전 밴드’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대전에 대한 애정이나 자부심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대전에 사니까 여기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멤버들끼리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전이 우리 이미지 가운데 큰 부분이 되었고, 또 멤버들 모두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다 보니까 추억이 가득한 이 도시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에 앨범 나왔을 때 어떤 분이 써주신 ‘대전발 라이브 엔진’이라는 표현이 정말 기분 좋았어요.”
버닝햅번은 몇년 전 레이블 락웨일컴퍼니를 설립했고 얼마 전에는 스튜디오도 만들었다. ‘책임감’ 같은 건 전혀 없다 말하지만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지역 다른 밴드와 자연스레 교류가 이어지며 함께 ‘신’에 대한 고민도 나눈다. 또 최근엔 ‘충청 하이브리드’란 이름으로 대전·청주 지역의 밴드들과 함께하는 기획공연도 마련했다.
‘충청 하이브리드’나 ‘부산 콜링’처럼 지역색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구는 ‘대구라이브클럽데이’란 자체 행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음악에도 각 지역의 색깔을 담으려 한다. 세이수미처럼 바다와 맞닿아 있는 자신들의 배경을 음악에 담는 경우도 있고, 제주에서 활동하는 스카 밴드 사우스카니발은 아예 제주도 사투리로만 가사를 써 노래한다.
이런 움직임에는 각 지역에 생기는 음악창작소와 문화재단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지역기반 음악창작소는 해당 지역 음악가들의 앨범 제작과 공연을 지원한다. 특히 광주, 대구, 부산의 음악창작소가 눈에 띄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구의 펑크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과 전복들 모두 대구음악창작소의 지원을 받아 음반을 제작할 수 있었다.
전복들의 고창일씨는 “대구음악창작소의 지원사업이 아니었으면 음반을 만들 용기가 안 났을 것”이라며 “싱글 위주로 진행하던 지역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앨범 단위 작품으로 승부해보겠다는 움직임이 만들어진 것도 음악창작소가 미친 좋은 영향”이라고 말했다.
각 음악창작소는 앨범 제작과 공연 지원을 중심에 두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역 음악가를 지원하고 있다. 부산음악창작소가 음악가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지원한다면 광주는 가을에 열리는 ‘광주 사운드파크 페스티벌’에 지역 밴드를 세운다. 대구는 역시 대구 출신인 이한철 같은 선배 음악가를 멘토로 초빙해 조언을 구하는 식이다.
이제는 누구도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고향이 좋아서 그곳에서 노래하고 연주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팀끼리 교류하게 되고 이른바 ‘신’이라는 것이 단단하게 자리잡게 된다. 고창일씨의 마지막 말은 지금의 흐름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지역 신의 성장을 위해서도 대구를 젖줄 삼아 성장하는 역할이나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유명해지거나 돈을 버는 밴드라는 그런 모델이 아니고, 내가 생활하는 공간과 호흡하고 그곳의 얘기를 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제는 음악을 하지 않는 제 친구들과 과거의 저에게도요.” 김학선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