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트리-이안의 동시사용설명서】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단풍잎 두 마리
어, 가을이 움직인다 ―〈손바닥 동시〉(창비 2018) 놀이에는 규칙이 있다. 규칙을 익히고 공유한 상태에서 놀이는 시작된다. 어떤 놀이는 규칙의 공유만으로 성립되기도 한다. 숨바꼭질, 얼음땡, 경도놀이 등은 준비물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좀비놀이는 술래의 눈을 가릴 수건 한 장이면 충분하고, 제기차기는 제기 하나, 공기놀이는 공깃돌 다섯 개면 흥이 다할 때까지 놀 수 있다. 참가자들은 규칙과 함께 놀이에 필요한 기술을 익힘으로써 재미를 더욱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하면 일본의 하이쿠를 떠올린다. 하이쿠는 5·7·5자, 모두 17자로 된 일본의 정형시다. 우리에게도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가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가 되었다. 하이쿠를 읽을 때마다 우리에게도 이런 짧은 시 양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심 부러웠다. 십여년 전부터 이를 고민해온 시인이 있다. 유강희 시인은 중국의 절구, 일본의 하이쿠, 우리의 시조 등을 참고하여 짧은 시 양식을 현대에 맞게, 우리 호흡에 맞게 만들어 내고자 했다. 하이쿠가 일본의 전통 시가인 단가에서 발전해 왔듯이, 유강희 시인은 손바닥 동시의 실마리를 우리의 시조에서 찾았다.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를 기본 형식으로 한다. 유강희 시인은 시조의 초장-중장-종장 장별 배행에서 3행 배치를 가져오고 각 장 4음보에서 앞 2음보만을 들어낸, 익숙하지만 새로운 시 양식을 고안해 냈다. 각 행이 2음보로 된 석 줄짜리 시인데, 시인은 이를 ‘손바닥 동시’로 이름 붙였다. 끊어 읽기의 단위인 음보는 보통 3~4자로 구성된다. 시조의 자수가 엄격하지 않은 건 시조가 음수율보다 음보율에 가깝게 운용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손바닥 동시의 규칙은 복잡하지 않다. ① 각각 2음보로 구성된 3행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3행 구성이 아닌 것은 손바닥 동시가 아니다.) ② 1~3행은 각각 기본 자수에서 2~3자를 넘지 않아야 하는 대신, ③ 글자 수를 줄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④ 제목을 적절히 활용한다(하이쿠에는 제목이 없다). 제목을 뺀 본문의 분량만 보자면 시조의 절반 정도, 하이쿠보다 조금 길거나 짧은 시가 된다. 이 외에 주(注), 반점·느낌표·물음표 등 문장부호의 효과적 사용, 시조의 감탄사적 투어(“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의 “어즈버” 같은 것. “어즈버”는 감탄사 ‘아’의 옛말)를 적절히 활용할 것 등이 형식을 구성하는 데 참고할 사항이다. 규칙이 정해졌으니 동시 놀이를 시작해 보자. 종이가 없을 땐 손바닥에 써도 된다. 종이가 있어도 가끔은 손바닥에 적어 보자. 동시를 쥔 손이 얼마나 간지럽고 사랑스러울까. 유강희 시인의 〈손바닥 동시〉는 100편으로 묶여 이 달에 출판사 창비에서 출간된다. 가정과 학교에서 재미있는 동시 놀이, 동시 공부의 텍스트로 삼을 만한 동시집이다. 여기에 실린 100편으로 100가지 시 얘기를 할 수 있다. 자수가 가장 짧은 예에 속하는 두 편을 보자.
차가 지나갔다
웅덩이가
날개를
편다 낙숫물 울지 않는다
안 운다
뚝!
날개를
편다 낙숫물 울지 않는다
안 운다
뚝!
개구리 눈
연못에 숨어
물 바깥 보려고
조금씩 밀어 올린 걸까 천둥 나뭇잎들
깜짝깜짝 놀라서
어서 푸르러지라고
물 바깥 보려고
조금씩 밀어 올린 걸까 천둥 나뭇잎들
깜짝깜짝 놀라서
어서 푸르러지라고
봄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뾰 화음(和音) 여름비가 촐촐촐
비둘기가 꾹꾹꾹
여우팥이 캥캥캥 국수 가족 호로로호로록
후룩후루루룩
뾰록뾰로로뾱,
뾰뾰뾰 뾰뾰뾰뾰
뾰뾰뾰, 뾰뾰뾰뾰뾰 화음(和音) 여름비가 촐촐촐
비둘기가 꾹꾹꾹
여우팥이 캥캥캥 국수 가족 호로로호로록
후룩후루루룩
뾰록뾰로로뾱,
새벽 편의점
컵라면 뚜껑 위에
두 손 얹고 잠시,
눈 감은 막일꾼 개 개 삽니다 대신
사람 삽니다, 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탱자나무 서로 껴안고
있으면서 어떻게
찌르지 않을 수 있지?
두 손 얹고 잠시,
눈 감은 막일꾼 개 개 삽니다 대신
사람 삽니다, 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탱자나무 서로 껴안고
있으면서 어떻게
찌르지 않을 수 있지?
이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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