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르리’는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내어 함께 먹거나 어떤 것을 똑같이 골고루 나눠 주는 일을 뜻합니다. ‘창작집단 도르리’는 인천 동구 만석동
기차길옆작은학교에서 자라거나 활동해온 이모 삼촌의 창작 공동체입니다. 김성수·오정희·유동훈 세 사람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예술활동을 통해 ‘가난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편견을 무너뜨리길 꿈꿉니다. ‘도르리의 골목 도르리’는 그림, 만화, 조각 등으로 우리가 사는 동네와 골목, 사람, 세상을 격주로 이야기합니다.
27년 전 동네에 큰불이 났습니다. 깊게 파인 주름 같은 좁은 골목을 경계로 해서 길게 이어져 있던 집 수십채가 불타 버렸습니다. 그 불을 시작으로 우리 동네는 이곳저곳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골목길을 축으로 짝을 이루어 마주보고 있던 골목길 한쪽 면의 동네 집들이 소방도로를 만들 때 우르르 헐렸습니다.
칼로 베이듯 드러난 골목집 벽에 동네 사람들은 굴막을 짓고 천막을 덧대고 꽃과 나무를 심어 상처를 싸맸습니다. 긴 세월 차곡차곡 쌓인 동네 사람들의 손길을 연필선으로 차곡차곡 쌓아 그리고 싶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허름해 보여도 삶이 있어 아름다운 집들을 닮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그렸습니다.
같은 골목 같은 집을 그린 두 그림은 17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도화지에 들어왔습니다. 집도 그림 재료도 바뀌었습니다. 연필그림(2001년·위)과 수채그림(2018년·아래) 속 집들을 비교하며 들여다봅니다. 17년이라는 세월치고는 많은 것이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슬레이트 지붕에서 강판 지붕으로, 시멘트와 합판으로 얼키설키 막은 벽이 샌드위치 패널이나 철판 벽으로 바뀐 집들도 보입니다.
비닐과 각목으로 뚝딱뚝딱 지어진 굴막도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연필그림 속 스쿠터도 모습을 감췄습니다. 스쿠터 아저씨는 그 노란 스쿠터 발판에 각목이며 시멘트를 바쁘게 실어 나르며 동네 집수리를 하셨는데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찔레꽃집 옆집의 김 할머니도 세상을 뜨셔서 이제는 빈집으로 있습니다.
빈집이 또 보입니다. 그런데 그 집은 말끔하게 고쳐 놓고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3년 전 구청에서 외부인에게 돈을 받고 가난한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옛 생활 체험관’(아래 집 그림 오른쪽 둘째)을 만들려다 동네 사람들의 거센 반대로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계속 꽁꽁 닫혀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17년 전 한창 공사 중이던 초록색 집은 말끔하게 수리를 마치고 지금은 빨간 강판 기와지붕을 멋지게 올렸습니다. 그 집 주인은 이제 ‘초록색 집 아저씨’가 아니라 ‘빨간색 집 할아버지’(아래 집 그림 맨 오른쪽)가 되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일제 강점기 군수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합숙소로 지어졌을 때의 뼈대는 그대로 남아 집들을 받치고 있습니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엇보다 그린 사람이 다릅니다. 2018년 수채화를 그린 ‘도르리’의 성수 삼촌(27)은, 2001년 연필화를 그린 동훈 삼촌(49)을 따르던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아이였습니다. 지금 기차길옆작은학교 아이들은 두 사람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릅니다. 17년 전 연필로 그린 골목과 집들을 오늘 이 골목에서 살아가는 도르리의 청년이 여러 색을 덧입혀 새롭게 그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낡은 집을 덧대어 고치며 삶을 이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위의 연필그림은 ‘도르리’의 유동훈씨가 2001년 그렸습니다. 아래 그림은 같은 집들을 2018년 김성수씨가 수채 물감으로 다시 그렸습니다. 가운데 만화는 오정희씨가 그 집과 골목의 일상을 담아 묘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