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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그집 대문 열렸다, 사람이 보였다

등록 2018-10-22 05:00수정 2018-10-22 10:38

2108 오픈하우스 서울

건축가들이 현장에서 말하는
건축물의 비하인드 스토리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남궁선 사진작가.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남궁선 사진작가.
서정옥 방송작가는 늘 이곳이 궁금했다고 한다. 어느날 근처 공연장을 다녀오다 1층 지상 공간을 과감히 비워 커다란 문처럼 생긴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외벽 엘이디 조명은 1969년 롤링스톤즈의 알타몬트 콘서트 장면을 아름다운 색채로 물들였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는 그렇게 세련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로 그에게 다가왔다. 일반 시민들이 건축전문가들과 함께 건물 안팎을 답사하는 ‘오픈하우스서울’ 행사가 열린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서 작가는 얼른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답사를 신청했다. 올해 5번째를 맞은 오픈하우스서울(13~21일)은 예년보다 규모가 커져 이번엔 건축물 79곳과 건축가들의 스튜디오 16곳이 개방됐다.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서 건축가 최문규(오른쪽 둘째)가 건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픈하우스서울 사무국 제공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에서 건축가 최문규(오른쪽 둘째)가 건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픈하우스서울 사무국 제공
■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최소한으로 짓고 나머지는 시민들에게” “건축주의 의뢰를 받고 터에 와보니 기존 건물이 헐려 모든 게 비워진 느낌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건물을 최소한으로 짓고 나머지 공간은 시민들에게 돌려주자, 그러면 기업 이미지 홍보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건축주를 설득했죠.” 17일 낮 열린 뮤직라이브러리 오픈하우스에서 건물 설계자인 최문규(연세대 교수)가 설계 과정을 설명하자 서 작가의 눈도 반짝였다. 1만장 바이닐(엘피)과 3천여권의 음악 전문 서적을 비치한 이 뮤직 라이브러리는 현대카드 고객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지만 남산과 한강 사이 바람길 같은 공간이자 일반 시민들도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포용적 건물이다.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지하2층의 소극장 언더스테이지의 콘크리트 벽은 포르투갈 작가 빌스의 거대한 그래피티로 채워 그 자체가 구조체인 동시에 예술작품이 됐다. 최문규는 “본래는 일본의 건축그룹 사나(SANAA)가 설계를 맡았다가 도중에 프로젝트가 중단되자, 건축주가 내게 3년간 쓸 수 있는 임시건물을 만들어달라고 했다”며 “그러나 인기가 많아져 아마 더 오랫동안 쓸 것 같다”고 했다. 한시적으로 쓰일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마음 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건물은 결국엔 사라진다. 르꼬르뷔제 건물조차도 없어지지 않느냐”며 “내가 설계한 인사동 쌈짓길도 본래 모습을 잃고 난장처럼 변해버려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던데 나는 건축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행사 참가자들에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서울은 더 빨리, 더 좋게 변하고 있다”며 “주변의 변화를 좀더 예민하게 살피고 주변의 좋은 공간이 있으면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응원해달라”고 했다.

가회동 취죽당에서 건축가 황두진이 설계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가회동 취죽당에서 건축가 황두진이 설계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 가회동 ‘취죽당’…한옥 자체의 아름다움에 쾌적한 주거환경 더해 이날 오후 서울 가회동 31번지 일대엔 건축가 황두진이 이끄는 답사팀이 꼬리를 물고 골목을 누볐다. 황두진은 현대건축 설계자이지만 우연한 인연으로 2004년부터 여러 채의 한옥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해왔는데, 이날 공개된 취죽당은 2005년 맡은 두번째 한옥 주택이다. 천연염색가인 주인은 1930년대 지어진 한옥 리모델링을 의뢰하면서 유리창 대신 한지만 사용하는 등 한옥의 전통적 모습을 유지해줄 것을 당부했다. 황두진은 “추위를 막기 위해 외기에 면하는 창·문은 여닫이·사창(모기장 기능을 중간문)·미닫이 3겹으로 했고, 대청에도 온돌을 성기게 깔아 목재 뒤틀림을 방지하면서도 은근히 엉덩이를 덥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취죽당에서 한옥에 대한 건축가의 해석과 응용이 돋보이는 부분은 사랑채의 누마루. 본래는 사방이 벽이었던 집에서 대문·정원과 마주한 쪽 벽 2개를 없애 빛과 바람이 들어오도록 했다. 작은 마당은 이끼로 표현한 바다에 거북이 석물들이 놓여 간소하면서도 섬세한 맛이 어우러졌다. 귀를 쫑긋 세우고 황두진의 설명을 들은 김희재(14)는 매일 답사일지를 쓸 정도로 인물과 유적에 관심이 많은 ‘역사덕후’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경주 양동마을·안동 하회마을과 궁궐 등 여러곳을 다녀봤지만 취죽당은 정말 감동적이다. 사랑채 누마루가 가장 놀랍다. 박혀있던 곳을 뚫어놓으니 마치 본래 모습을 찾은 것 같다”고 감탄했다. 황두진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젠 한옥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도 쾌적한 주거환경도 확보된다”며 “요즘엔 30~40대 젊은 집주인들도 한옥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한옥의 미래가 밝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구로동 솔로하우스. 이강석 사진작가
구로동 솔로하우스. 이강석 사진작가
■ 가리봉동 ‘솔로하우스’…허물어져가는 공단 노동자 ‘벌집’ 원룸으로 새 생명 15일 오후 가리봉동 좁은 골목엔 김범준의 설계사무소(토포스)에서 진행되는 솔로하우스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배후 주거지였던 가리봉동은 1990년대 다가구주택의 전신으로 ‘벌집’이라고 불리던 집합주택이 흔하다. 김범준은 1971년에 지어진 벌집을 원룸으로 개조하는 ‘솔로하우스’ 작업으로 지난 2017년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허물어가는 벌집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솔로하우스는 소설 속 ‘외딴방’의 아픔을 돌아보는 동시에 영화 <구로아리랑>에 표현된 노동자들의 활기를 복원하려는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평소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버릴 것과 남겨둘 것을 명확히 하자고 생각했고, 외관은 예전 모습을 간직하되 내부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각 4.2평짜리인 방을 6.5평으로 확장해 본래 방 31개를 19개로 줄여 좁아도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을 확보했다. 벽돌은 고압세척으로 씻어내 그대로 쓰면서도 철골로 보강하고 유리를 덧붙여 화사한 분위기를 부여했다. 방범용 시시티브이를 달면서 대문과 담장을 없애 개방감을 줬다. 그는 “골목이 뜨는 것은 아날로그적 감성과 소박함이 인기를 끄는 전세계적 현상”이라며 “서울에 아파트가 더이상 늘어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골목길 주택에도 아파트의 편의성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최대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봉동 평화문화진지. 황효철 사진작가.
도봉동 평화문화진지. 황효철 사진작가.
■ 도봉동 ‘평화문화진지’…흉물로 방치된 대전차방호시설, 문화공간 탈바꿈 이번 오픈하우스 행사엔 최근 서울시에 들어서고 있는 공공건축물들도 대거 포함돼 흥미를 끌었다. 16일 유종수, 김빈 건축가와 함께 방문한 서울 도봉산역의 평화문화진지는 서울의 최북단방어선으로서 1970년 지어진 대전차방호시설을 문화공간으로 바꾼 건물이다. 북한군 남침을 막기 위해 탱크와 소총수들이 들어갈 수 있는 벙커를 1층에 짓고 2~4층 3개층에 군인 주거시설을 배치했다. 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은 주거시설은 지난 2004년 헐리고, 벙커는 10여년간 흉물로 방치돼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었다. 이 공간을 전쟁과 분단의 상징을 평화와 문화의 공간으로 바꾸자는 시민단체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현상설계 공모가 열렸고 코어건축이 당선됐다. 건축가들은 길이 237m에 이르는 벙커 5개동을 비우고 헐고 덧대 세미나실·예술가 스튜디오·커뮤니티실·전시실·중정 등으로 바꿨다. 유종수 건축가는 “안전에 이상이 없는 정도로 최대한 건물을 남기되, 덧붙이는 재료와 형태는 최소한 간결하고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도록 했다”고 말했다. 벙커에서 주거시설로 올라가는 계단 중 남은 부분은 철근을 부분적으로 드러낸 채 전쟁의 폭력성을 증언하는 것 같으면서도 옛 콘크리트가 전달하는 정서적 아련함을 전해준다. 건축가들은 새로 추가한 공간은 외장재료로 나무(탄화목)를 사용해 주변의 도봉산, 수락산, 중랑천을 비롯해 창포원 같은 주변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했다. 김빈 건축가는 “평화문화진지는 아직도 군사시설물로 묶여 있어 예전 벙커 부분은 국방부, 신축한 스튜디오 등은 서울시 소유다. 국방부 소유 부분은 유사시에 대비해 특정 용도의 시설을 만들지 않고 세미나실 같은 빈 공간으로 남겨뒀다.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공간으로 바뀌었는데도 분단의 긴장이 여전한 모습이 바로 평화문화진지에 담긴 복합적 상징”이라고 말했다. 이날 평화문화진지에서 공방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던 이용은 협치도봉사무국 사무국장은 “평화문화진지는 낡음과 새것이 뒤섞인 흥미로운 공간이어서 뭔가 재미난 일을 하고 싶어진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주민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공간”이라고 전했다.

세운베이스먼트. 서울시립대 제공
세운베이스먼트. 서울시립대 제공
■ 지하 보일러실에 들어앉은 서울시립대 캠퍼스 16일 저녁 찾은 세운상가엔 서서히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로 활기를 띠게 된 세운상가엔 서울시립대 캠퍼스가 ‘숨어’ 있다. 지하 보일러실을 개조해 만든 ‘세운상가 베이스먼트’는 서울시립대와 세운상가 상인·장인, 젊은 창업가들이 공존을 모색하는 곳이다. 건축가 이충기는 용도 폐기된 기름탱크, 보일러, 배관, 분배기 등을 일부 정리하되 천장 조명·계단 난간·출입문 손잡이 등은 설비배관용 파이프를 이용해 산업시설의 분위기를 살렸다. 이곳에선 대학 강의뿐 아니라 산업용 로봇, 3D프린터 등을 이용해 건축 재료의 물성을 실험하는 워크숍이 열린다. ‘세운캠퍼스 교장’을 맡고 있는 황지은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교수와 학생은 이론은 알고 있지만 기계를 다루는 숙련도는 세운상가 주변 작은 부품공장 사장님들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뛰어가서 도움을 청한다”며 “150여명이 들어있는 세운상가 상인 단톡방에 들어가 이런저런 의견들을 나눈다”고 전했다.

이번에 자신의 작업실을 공개한 건축가 중 유일한 여성인 김정임 서로아키텍츠 소장도 17일 저녁 사무실 문을 활짝 열었다. 김정임은 옛 대우빌딩을 리모델링한 서울스퀘어, 박보검이 머물러 유명해진 곽지해변게스트하우스, 영화사 뉴 사옥 신축 등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추첨을 통해 3D프린터로 만든 자신의 작품 모형을 손님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김정임 소장은 뭐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자 “나는 건축을 하면서 ‘태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축물은 개인 소유라고 하더라도 비를 피하게 해준다거나 보행로를 확보해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웃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건물, 조형성보다는 관계를 추구하는 건물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도봉동 평화문화진지. 황효철 사진작가
도봉동 평화문화진지. 황효철 사진작가

세운베이스먼트. 서울시립대 제공
세운베이스먼트. 서울시립대 제공

구로동 솔로하우스. 이강석 사진작가
구로동 솔로하우스. 이강석 사진작가

반포동 서로아키텍츠 사무실에서 건축가 김정임이 자신이 설계한 건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반포동 서로아키텍츠 사무실에서 건축가 김정임이 자신이 설계한 건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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