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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금연장학생 장학금 받고 몰래 필까 안필까

등록 2005-12-14 17:46수정 2005-12-15 14:25

김승연 〈고대신문〉기자
김승연 〈고대신문〉기자
2005대학별곡
여대생들간 흔한 대화 한토막. “독한 남자는 힘들어.” “어떤 남자가 독한데?” “이를테면… 담배 끊은 남자?” 금연한 남자라면 그만큼 의지가 강한 반면 무섭고 냉정할 것임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한 번 물기 시작한 담배가 얼마나 끊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일례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번 맛들이면 끊기도 어렵거니와, 끊어도 가만 두질 않고, 피겠다면 더욱 성화인 게 담배다. 제 연기가 닿는 어느 곳에서나 담배는 멸시를 받게 마련이다. ‘금연구역’, ‘금연’, ‘노우 스모킹’ 표시가 곳곳을 도배하고 있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담뱃값 올리기는 것 말곤 수가 없는 사회보다, 대학은 좀더 치밀하게 때론 얄밉게 흡연 학생들의 기를 꺾는다. 얼마 전 한 지방 대학에서는 금연에 성공하는 학생에게 포상금을 주는 ‘금연 장학금’이 소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또 한 대학에서는 단과대 학생회 주최로 금연 캠페인 파티를 열어 어마어마한 ‘담배 케이크’를 자르고 새 학기를 시작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이 그 지역 보건소와 연계 하에 무료로 금연 클리닉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담배 연기만큼이나 뿌옇다. 여전히 화장실 칸막이에서는 연기가 나고, 자판기가 비치된 강의실 옆 복도는 담배에 찌든 냄새가 그윽하다. 각 단과대 과방이나 동아리방(동방)은 명실공히 흡연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명지대 김중원(경영계열 1년)씨는 “1년에 한번 외부와 학교가 연합해 동방 실태조사를 하지만 언제 오는지도 미리 알려주고 동방 사이에 금세 소문이 퍼져 무용지물이다”라고 말한다.

금연 장학금을 실시한 건양대의 자료를 보면, 2003년 이래 신청자는 총 356명. 1년 동안 주기적 검사를 통과해야 흡연 탈출 명함을 얻는다. 그 중 최종 성공자는 54명(15%)에 불과했다. 탈락자는 223명(63%), 79명이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 학생복지봉사팀의 임미선씨는 “장학금만 받고 다시 흡연을 하는 학생이 많아서 성공 직후에 반액을 주고 나머지는 졸업할 때 지급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료 금연 클리닉을 실시하고 있는 고려대 보건소 관계자도 “중도하차하는 학생이 많다”며 “공짜 (금연) 패치만 받고선 연락이 끊기는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전한다.

천안대는 금연 조력자에게도 소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도우미 장학금’을 두고 있다. 주로 남자친구의 금연을 원하는 여자 친구들이 많이 지원한다. 연인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인 만큼 연애 기간에만 효력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중앙대 서주민(신문방송 4년)씨는 “여자들이 자기 남자친구가 담배를 끊었다고 생각하지만 속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장학금을 주는 건 좋지만 여자친구가 자꾸 닦달하면 더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하고 되묻는다.

노력과 결과가 이처럼 벌어지는 이유는 꽤 자명해보인다. 사실 대학당국의 노력이 전시성 행정 전략에 가까워 그런 건 아닐까. 고려대 손인규(언론 4년)씨는 “금연 결심이 자의에 따른 것이어야지 옆에서 뭐라 해서 될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금연 클리닉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김병욱(제어계측공학 졸업)씨도 “금전적 대가를 노린 금연이 오래갈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고 전한다.

언젠가 학교 자유게시판에 오른 “‘흡연 열람실’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이 새삼 떠오른다. 이 추운 겨울, 건물 밖에서 덜덜 떨며 한 모금을 빠는 그대는 걸어가면서까지 ‘혐연권’을 주장하는 뒷사람의 따가운 눈총에 어지간히 등도 차갑고, 쑤시겠다. 갈수록 ‘쇼’처럼 변해가는 금연 캠페인이 외려 금연에 회의감이나 허탈함만 키워주는 건 아닐까. 그 사이 누군가는 진정 독한 사람으로 변해있을테지만.


김승연 <고대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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