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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젠더 구도 깬 ‘생활밀착형’ 검사의 탄생

등록 2020-01-31 18:31수정 2020-02-01 02:02

[황진미의 TV 톡톡]
제이티비시 제공
제이티비시 제공

검찰개혁을 둘러싼 공방으로 온 나라가 뜨거운 가운데, 또 검사물이라니 식상할 만도 하다. 하지만 <검사내전>(제이티비시)은 의외로 참신하다. 뉴스에서든 극에서든 검사는 둘 중 하나로 묘사돼 왔다. 권력을 탐해온 개혁의 대상이거나 거대 악과 싸우는 정의의 사도거나. 그러나 90%의 검사는 서류 더미에 묻힌 채 생활밀착형 사건을 묵묵히 해결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이는 생소한 주장이 아니다. 영화 <더 킹>도 도입부에서 이를 언급했다. 영화가 정치검사의 흥망성쇠에 몰입하면서 이런 언급은 무색해져 버렸지만.

<검사내전>은 본격적으로 검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고, 검찰은 어떻게 돌아가는 조직인지 보여주는 오피스물이다. 남해안의 작은 지청을 배경으로 흥미로운 사건들과 함께 검사들의 일상이 묘사된다. 드라마는 극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여러 기법을 활용한다. 인물의 개성을 극대화하거나 코믹 요소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내레이션, 편집, 챕터 나누기, 소격 효과 등이 고루 쓰인다. 하필 내레이션 주체가 휴머니스트 남성 검사이고, “검사도 사람이다” 같은 자기 연민을 내비치는 오글거림도 있지만, 드라마가 검찰을 미화한다고 보긴 힘들다. 학연과 기수 문화에 절어 있고, 법과 정의에 맞게 사건을 처리하고도 권력자의 측근을 수사했단 이유로 좌천당하거나 승진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검사장까지 사건 무마 청탁을 해대고, 신임 지청장은 부당한 수사 개입에 반발하는 검사들에게 “항명” 운운한다. 이렇듯 드라마는 검찰조직이 결코 깨끗하지 않음을 전제하면서도, 이런 환경에서 각자 직업윤리를 실현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평범한 검사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드라마에서 가장 신선한 점은 젠더 구도와 차명주(정려원) 캐릭터다. 흔히 냉철한 엘리트 검사와 온정적인 동료의 대립 구도에서, 전자를 남성으로, 후자를 여성으로 놓기 쉽다. 수작이었던 드라마 <비밀의 숲>도 그 구도를 따랐다. 또한 둘 사이에 로맨스를 넣기 쉽다. 멋진 엘리트 여성을 보여준 드라마 <보좌관>도 그러했다. 하지만 <검사내전>은 이러한 틀을 완전히 무시한다. 차명주는 독보적인 실력을 지닌 검사고, 이선웅(이선균)과의 로맨스가 전혀 없다. 이들은 경쟁 혹은 견제하는 사이이고, 가끔 협력한다. 검사물에서 여성은 흔히 ‘상납물’이거나 남자 검사의 연애 상대였다. <더 킹>에서 주인공을 견제하며 최종적 승리를 거두는 정의로운 여성 검사가 등장했지만 중심 서사에서 비켜나 있었다. <마녀의 법정>은 여성 검사를 전면에 내세운 기념비적인 드라마인데, <검사내전>은 정려원을 고리로 이를 계승하면서, ‘똘끼를 뺀 마이듬’인 차명주를 통해 더욱 안정적이고 성숙한 여성 검사 캐릭터를 제시한다.

제이티비시 제공
제이티비시 제공

드라마는 이선웅의 내레이션을 깔지만, 서사의 방점은 차명주에 찍힌다. 드라마는 차명주의 전사와 가족사를 풀면서 차명주가 탈출하고자 했던 젠더 문제를 받아들이고, 다른 여성들과 화해해나가는 성장의 서사를 보여준다. 차명주는 서울법대와 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서울에서만 근무한 최고 엘리트로, 방배동에 사는 지검장 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폭력 가정에서 자란 뒤 대입과 동시에 부모와 절연하고, 입주 가정교사로 일한 고학생이다. 그는 친목에 끼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가 딱 한번 감정에 휘둘린 적이 있는데, 그것은 평생 남편에게 맞고 살다 남편을 죽인 할머니를 수사할 때다. 차명주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엄마에게 느꼈던 원망과 연민을 쏟아낸다. 결국 그는 절연했던 엄마와 재회하는데, 두 사람의 화해 장면은 서걱거리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또한 차명주는 육아로 힘들어하는 동료 여성 검사를 한심하게 여겼지만, 잠시 아이를 돌보는 경험을 통해 그의 초인적인 노력을 응원하게 된다. 이 에피소드는 전문직 여성이라 할지라도 성차별을 겪으며, 배려랍시고 휴직이 권고되는 것도 차별임을 적절히 지적한다. 무엇보다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이 대립하는 ‘여자의 적은 여자’의 구도에 빠지지 않아야 함을 일깨우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드라마는 사내 성폭행 사건을 통해 ‘순결한 피해자상’에서 벗어난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편견과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을 위해 취하는 전략들이 결국 성추행의 빌미가 되는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혼돈의 와중에 차명주는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만하다. 그는 실력과 노력으로 승부하며,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출세욕도 있지만, 법과 정의를 외면하지 않는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 미안해하지 않으며, 옳은 일을 했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부당한 외압에도 명분과 논리를 내세워 윗사람을 굴복시키는 슬기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습은 이타심과 반골 기질을 지닌 이선웅의 눈으로 보았을 때도 순응과 저항의 이분법을 넘어선 제3의 윗길로 보인다.

드라마는 그 밖에도 임금 체불, 학교 폭력, 도박, 어음 사기, 가짜 청구, 고소왕, 온라인 게임, 유튜버 등의 사건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이를 통해 이선웅을 비롯한 다른 검사들의 성장기도 함께 그린다. 이런 ‘생활형’ 검사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의 원작자가 김웅 검사다. 그가 2018년부터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 단장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실무를 맡아오다 작년 여름에 좌천당했으며, 지난 1월14일에 “수사권 조정은 집권 연장을 위한 혐오스러운 음모”라는 요지의 글과 함께 항의의 뜻으로 사직했다는 사실은 서늘한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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