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일
초록뱀 지음/창비·1만6000원
시끌시끌 산만한 초등학교 쉬는 시간. 성민이는 친구가 그린 ‘드래곤볼 손오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그릴 수 있지?’
수업시간에 낙서하다 걸린 벌로 칠판지우개 청소를 하다 문득 자신의 똥손을 원망했다. 그렇게 며칠간 드래곤볼 만화책은 그의 교과서였고, 책 대여 연체료를 내고 나서야 손오공을 잘 그릴 수 있게 됐다.(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친구의 완벽했던 그 그림은 먹지를 대고 그린 거였다.)
“이 책의 큰 뼈대는 결국 제 이야기입니다.”
초록뱀 작가의 만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책으로 나왔다. 화려하지 않아 따뜻함이 돋보이는 초(?) 작가의 그림은 마치 단편 영화의 촬영 대본을 보는 듯 유려하게 흘러간다. 초등학생이던 성민이가 낙서로 시작한 그림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쭉 그의 꿈이자 지금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문과였지만 친구 따라 공대에 가고 그림동아리에서 그림을 배우다 미대로 전과하면서 놓을 듯 말 듯 그리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림으로는 제대로 먹고 살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의 괴리를, 남들에 비해 알량해 보이는 재주에 무력감을 느낀다.
정해진 답이 없는 인생에서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고민하고 의심하는 주인공에게 작가는 서툰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무언가는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래서 심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성민의 입을 빌려 말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찾을 수 없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래, 그냥 그리자. 답을 찾은 것처럼.” 김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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