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폴로, <아가멤논에게 끌려가는 브리세이스>, 1757년, 프레스코, 이탈리아 빌라발마라나.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35. 티에폴로, ‘아가멤논에게 끌려가는 브리세이스’
“한 병사가 내 손목을 잡은 채 통로 위쪽으로 끌고 갔다. 다른 한 명도 합세했다. (…) 오른손으로 저항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거들 스타킹이 완전히 찢겨 나갔다.”
나치 패망 직전인 1945년 4월, ‘여자만 남은 도시’ 독일 베를린에
소비에트(소련) 해방군이 입성했다. 나치를 격파한 소비에트군은 ‘강간 면허’라도 받은 듯, 노인이든 소녀든 닥치는 대로 성폭행했다. 승리에 취한 연합군에 의해 성폭행당한 독일 여성들은 베를린에서만 11만명이 넘었다. 1945년 4월20일부터 6월22일까지,
소비에트 붉은 군대 치하에 있었던 여성들의 ‘전시 성폭력’ 피해 증언을 담은 일기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한국어판 2018년) 얘기다.
전쟁의 서사는 늘 남성들의 것이었다. 애국심에 부푼 남성들이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나가 어떤 식으로 비극적인 희생을 당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 전우애가 싹트는지, 끝내 살아 돌아온 남성들이 결국 어떻게 빛나는 훈장을 쟁취해내는지. 이 모든 영웅 서사는 남성들의 몫이었다. 그 속에서 여성들의 자리는 없었다. 과연 여성들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남자들이 지켜준 덕분에 후방에서 안전하게 살았던 걸까?
전리품 다툼에 희생양 된 여성들
앰네스티 여성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여성과 어린이가 전쟁 난민의 80%를 차지한다. 특히 여성들은 이때 굶주림, 부상에 더해 성적 착취라는 이중, 삼중의 폭력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남성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연료’로써 여성들은 늘 이용돼왔기 때문이다. 전쟁 시기 여성의 몸이 전리품이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도 아니다. 다만 <함락된 도시의 여자>를 읽으며 놀란 것은 자신들이 ‘새로운 소비에트 인간’이라고 생색을 낸 사회주의 러시아인들조차 여성을 대상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리스 신화 속 전쟁 영웅이야 오죽했을까. 트로이 전쟁의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여성 포로를 어떻게 대상화했는지 보자.
기원전 1250년께 그리스와 트로이가 흑해의 주도권 쟁탈을 놓고 ‘트로이 전쟁’을 벌인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신이 내린 전사 아킬레우스는 함께 용맹을 떨치며 트로이를 압박했는데, 이 와중에 그리스군에게 위기 상황이 닥친다.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전리품 여성’ 때문에 불화를 빚은 탓이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 중 획득한 아폴론 신전 사제의 딸 크리세이스를 성폭행한 뒤 첩으로 삼았다. 그런데 크리세이스 아버지가 딸을 되찾기 위해 아폴론 신에게 도움을 청했고, 결국 아가멤논은 아폴론 신의 압력으로 크리세이스라는 전리품을 잃어야 했다. ‘재산’을 날린 아가멤논이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그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부하 장수인 아킬레우스의 ‘재산’ 브리세이스에 손을 댄다. 이탈리아의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1696~1770)가 그린 그림 속 브리세이스는 마치 물건처럼 무력해 보인다. 하얀 옷을 입은 브리세이스는 아가멤논의 부하 에우리바테스와 탈티비오스에 의해 아가멤논 앞으로 끌려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리세이스는 리르네소스 왕국의 왕비였다. 하지만 리르네소스를 초토화시킨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이 된 터였다.
그런데 이번엔 아가멤논에게 끌려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구한가. 하지만 호메로스는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브리세이스의 억울함을 다루는 대신 노획물을 잃은 아킬레우스의 반격에 초점을 맞췄다. 아킬레우스가 택한 반격의 수는 바로 전투를 거부하는 것. 용맹한 전사가 빠지니 전황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아가멤논은 격식을 차려 브리세이스를 아킬레우스에게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브리세이스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기를 든 남성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거래되던 그녀가 겨우 희망할 수 있었던 것은, 아킬레우스가 자신과 결혼해주어 전리품 신세에서 탈출하는 것뿐. 하지만 불행히도 이 소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에게 브리세이스는 ‘귀한 물건’, 그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남자가 물건과 결혼하겠는가.
세바스티아노 리치, <사비니 여인의 납치>, 1702~1703, 캔버스에 유채, 리히텐슈타인 왕실 컬렉션
간혹 전리품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때도 여성을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 건국에 얽힌 이야기를 그린 이탈리아 화가 세바스티아노 리치(1659~1734)의 <사비니 여인의 납치>를 보자.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는 강 옆 언덕에 로마라는 도시국가를 세운다. 나라가 계속 번창하려면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아이를 낳을 여성이 부족한 상황이라, 로물루스는 이웃 나라 사비니의 여자들을 납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사의 날, 로물루스는 사비니인을 초청해 성대한 잔치를 열었고 잔뜩 취할 때까지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윽고 작전이 실행됐다. 그림 중앙에 있는 건물 오른쪽에 노란색 옷을 입은 로물루스가 붉은 망토를 펼쳐 들고 있다. 작전을 개시하라는 신호다. 그 즉시 로마인들은 감춰놨던 무기를 꺼내 사비니의 남성들을 기습적으로 몰아냈다. 그런 뒤 격렬하게 반항하는 사비니의 여인들을 마치 사냥하듯 납치해 강간했다. 이후 로마 남자들은 납치한 사비니 여인들을 아내로 맞았고 로물루스도 사비니 왕의 딸 헤르실리아와 결혼했다. 사비니 남성들이 격분하며 복수를 다짐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개별적으로는 자신의 딸, 아내, 누이의 처지에 대한 분노도 있겠으나, 가부장 공동체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산, 영토를 로마 남성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가부장 남성에게 여성의 몸이란 ‘자신의 씨’를 담는 ‘토양’과 다름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사비니 여성은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인격체라기보다 ‘거대한 자궁’으로 취급받은 셈이다.
‘씨받이’, ‘대리모’에 동화책과 학용품까지
미국 여성주의 활동가 수전 브라운밀러는 저서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 이렇게 적었다. “강간은 전쟁이 초래한 증상이거나 전시의 극단적 폭력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전시 강간은 평시에도 익숙한 이유를 구실로 삼는 익숙한 행위다. 그냥 언제나처럼 여성의 신체 온전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실 남자들은 전쟁 시기든 평화 시기든 허가나 특별한 계기 없이도 언제나 강간을 저질러왔다.
여성의 신체는 내 의지에 반해 언제든 침범되고 속박될 수 있었다. 가부장제는 늘 여성의 몸을 물건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를 잇기 위해 여성을 ‘씨받이’나 ‘대리모’로 데려오고, 사회생활을 한다며 여성의 몸을 버젓이 뇌물로 바친다. 동화책을 펼치면 사슴은 나무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선녀를 아내로 선물하며, 문구점에 가면 “10분 더 공부하면 미래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라는 문구가 인쇄된 학용품이 떡하니 진열돼 있다. 이쯤 되면 여성의 몸은 ‘총성 없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전쟁이 항상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다. ‘여자 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본다. 아울러 미술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호출해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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