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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야성을 상품화한 인간의 오만, 방송사 부조리 향한 ‘죽비소리’

등록 2020-07-17 17:51수정 2020-07-18 02:34

[주말에 다시보기] 교육방송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
지난 14일 방영한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는 독립다큐피디와 방송사의 불공정한 계약을 폭로했던 고 박환성 피디와 고 김광일 피디가 만든 유작이다. 미완성인 작품을 동료들이 마무리해 3년 만에 세상에 내놨다. 교육방송 제공
지난 14일 방영한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는 독립다큐피디와 방송사의 불공정한 계약을 폭로했던 고 박환성 피디와 고 김광일 피디가 만든 유작이다. 미완성인 작품을 동료들이 마무리해 3년 만에 세상에 내놨다. 교육방송 제공

“집에서 혼자 봤어요. 보는 내내 눈물이 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14일 밤 9시50분에 방영한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교육방송)를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에 한경수 독립다큐피디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을 티브이에서 선보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렸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또 다른 동료 피디들은 홍대의 한 식당에 모여 함께 시청했다고 한다. “울다가 웃다가 환호하다가 침묵하다가….” 14일 밤 그들의 마음은 따로, 또 같이 모두 <야수의 방주>를 향했다.

고 박환성 피디.
고 박환성 피디.

이 작품은 3년 전 <교육방송>의 불공정 거래를 폭로했던 고 박환성, 고 김광일 독립다큐피디의 유작이다. 박환성 피디는 <야수의 방주>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외주제작 피디들에 대한 방송사의 갑질을 폭로했다. 특히 저작권은 물론 외주제작사가 따온 정부지원금마저 방송사가 송출이나 편성 등의 명목으로 40%씩이나 가져가는 관행이 논란이 됐다. 한경수 피디는 “프리랜서 피디로서 방송사를 상대로 고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박 피디는 당시 ‘업’을 걸고 사실을 밝혔다”고 말했다. 야속하게도 남아프리카에서도 그런 불공정이 불러온 열악한 제작 환경으로 돈과 시간에 쫓겨 촬영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고 김광일 피디.
고 김광일 피디.

<야수의 방주>는 독립다큐피디의 현실을 드러내 변화의 물꼬를 튼 상징적인 작품인 셈이다. 그들이 숨진 뒤 미완성으로 남았던 작품을 동료 피디들이 힘을 모아 3년 만인 지난 14일 세상에 내놓았다. 방송일과는 무관했던 박 피디의 동생이 형의 유지를 받들겠다며 독립제작사 블루라이노픽처스를 이어받았고, 한국독립피디협회 동료들이 힘을 보탰다. 두 피디가 살아생전 80~90% 완성해놓은 촬영분을 애초 2회분에서 1회분으로 줄여 완성했다.

그렇게 탄생한 <야수의 방주>는 평소 인간과 자연, 동물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던 박환성 피디의 세계관이 집대성됐다. 야성을 상품화하는 인간의 오만을 꼬집는데, 사자, 호랑이, 곰 등 야수의 본성을 가진 맹수가 인간의 오락을 위해 희생당하는 이야기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우리에 갇혀 사람을 상대한다. 야성이 깨어나는 생후 9개월이 되면 순한 녀석은 관광객의 산책에 동원되고, 그렇지 않은 녀석은 퇴출당해 번식용으로 쓰인다. 거기서 태어난 새끼들은 다시 또 우리에 갇혀 장난감 인생을 산다.

지난 14일 방영한 &lt;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gt;는 독립다큐피디와 방송사의 불공정한 계약을 폭로했던 고 박환성 피디와 고 김광일 피디가 만든 유작이다. 미완성인 작품을 동료들이 마무리해 3년 만에 세상에 내놨다. 교육방송 제공
지난 14일 방영한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는 독립다큐피디와 방송사의 불공정한 계약을 폭로했던 고 박환성 피디와 고 김광일 피디가 만든 유작이다. 미완성인 작품을 동료들이 마무리해 3년 만에 세상에 내놨다. 교육방송 제공

이야기의 진행 속도가 빨라 몰입도가 높고, 그런 맹수가 구조와 재활을 거쳐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기획에만 3년이 걸렸을 정도로 박환성 피디가 특히 공을 들인 작품이다. 박 피디는 남아프리카로 떠나기 직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다른 동물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 우리에 갇힌 맹수들을 보면서 기획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본방송이 끝난 뒤인 16일 동료들은 박환성 피디 기일을 맞아 경남 진주에 모였다. 그곳에는 <교육방송> 부사장도 함께였다. 박 피디의 죽음을 계기로 <교육방송>과 독립피디협회는 우여곡절 끝에 상생협의회를 꾸렸다. 제작비 현실화와 저작권 문제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도 논의 중이다.

지난 14일 방영한 &lt;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gt;는 독립다큐피디와 방송사의 불공정한 계약을 폭로했던 고 박환성 피디와 고 김광일 피디가 만든 유작이다. 미완성인 작품을 동료들이 마무리해 3년 만에 세상에 내놨다. 교육방송 제공
지난 14일 방영한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는 독립다큐피디와 방송사의 불공정한 계약을 폭로했던 고 박환성 피디와 고 김광일 피디가 만든 유작이다. 미완성인 작품을 동료들이 마무리해 3년 만에 세상에 내놨다. 교육방송 제공

그는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남아 수많은 동료에게 빛이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할 말은 많은데….” 박환성 피디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느냐는 질문에 한경수 피디는 그저 울먹였다.

<야수의 방주>는 <교육방송> 누리집과 유튜브 등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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