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삽시다2>(한국방송2)는 노년에 접어든 여성들이 남해의 전원주택에서 함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이다. 2017년 추석 연휴에 맛보기 방송으로 시작한 뒤 그해 12월에 정규 편성돼 8개월간 방송한 <같이 삽시다>에 이은 기획이다. 시즌1에서 박원숙, 김영란과 함께 살았던 김혜정과 박준금이 빠지고, 맛보기 방송에만 출연했던 문숙과 마지막 회차에서 초대손님으로 등장했던 혜은이가 합류했다.
오랫동안 리얼리티 예능은 젊은 남성들만의 향연이었다. <나 혼자 산다>처럼 여성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늘고, <밥블레스유>처럼 중년 여성들이 밥 먹고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늘면서, 여성 시청자들은 자신의 일상을 비추어보고, 중년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선사받았다. <같이 삽시다2>는 평균연령이 무려 68살에 이르는 노년 여성들의 삶을 비춘다. 여성이 혼자 사는 것과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공포를 주입하는 사회에서, 편안하게 나이 드는 여성들의 유쾌한 모습은 비상한 용기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금껏 노년 여성은 ‘할머니’ 혹은 ‘어머니’로 불렸다. 즉 가족 안의 존재로 호명됐다. 그러나 <같이 삽시다2>의 출연자들은 가족 안의 존재가 아니다. 일찌감치 남해에 내려와 혼자 사는 박원숙은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겪었다. 전남편의 빚을 갚느라 수십년간 쉬지 않고 방송에 출연했는데, 이런 그의 활동은 그대로 경력이자 인맥이 됐다. 문숙은 이만희 감독과 사별 뒤 미국으로 건너가 화가이자 자연치유사로 변신했다. 명상, 채식 등의 생활양식은 삶이 곧 패션이 되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백발을 인생의 훈장으로 여기는 문숙의 풍모와 초연한 태도는 ‘고상함’이 무엇인지 새삼 곱씹게 한다. 김영란은 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재혼정보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혜은이는 오랫동안 남편의 빚을 갚아주다 최근에 이혼했다. 돈을 벌기 위해 계속 무대에 올라야 했던 혜은이는 지금도 팬클럽을 거느린 데뷔 46년차 가수다. 혜은이가 준비한 소극장 무대에서 우정 출연한 문숙이 한복 치마에 고무신 차림으로 훌라춤을 추고, 음치에 가깝던 김영란이 연습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오롯한 개인으로 존재하며, 자매애로 연대한다.
프로그램에는 뜻밖의 웃음이 넘쳐난다. 웃음은 주로 서툰 살림 솜씨와 박원숙의 입담에서 나온다. 흔히 나이 든 여자들은 당연히 살림을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 여성이 어떤 일을 하든 살림에 능숙할 것이라는 기대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티브이에는 굉장한 요리 실력을 갖춘 연예인들이 등장해 놀라움과 자괴감을 안긴다. 하지만 <같이 삽시다2>에 출연하는 노년 여성들은 모든 것이 서툴다. 오랫동안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김영란은 시즌1에서 형편없는 솜씨로 웃음을 안겼다. 시즌2에서 ‘한식의 대가’가 되어 왔노라 선언했지만, 인덕션 레인지도 켜지 못해 낑낑댄다. 혜은이는 더 심하다. 밥솥도 열지 못해 헤매고, 달걀부침도 겨우 할 만큼 젬병이다. 문숙은 ‘자연요리’를 해 보이지만, 워낙 느리고 소박해서 현란한 솜씨를 보여주는 여느 ‘쿡방’에 비해 심심하다. 혜은이는 “다들 엄마가 해준 음식을 추억한다는데, 나는 아이에게 뭘 해준 적이 없다”며 민망해하지만, 프로그램은 고정된 엄마 역할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박원숙은 “엄마의 집밥을 먹고 싶다”는 초대손님에게 “그럼 잘못 왔어”라 말하고, 혜은이가 지방공연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차 안에서 김밥이나 먹었을 것이라며 안쓰러워한다.
혜은이는 박원숙을 고모라 부른다. 젊은 시절 드라마에서 고모와 조카 역할로 만났던 인연 때문이다. 또한 <한지붕 세가족>에서 순돌이 역을 한 배우 이건주는 아직도 박원숙을 “엄마”라고 부른다. 박원숙은 전남편의 빚과 아들의 죽음이라는 불행을 겪으면서도 드라마로 만난 ‘아들’을 챙겨왔다. ‘큰언니’ 박원숙은 통 크게 고기를 사고 떡을 해서 ‘동생들’을 먹인다.
가부장제의 시각으로 보자면, 출연자들은 모두 ‘팔자가 드센’ 여자들이다. ‘남편 복’을 여성 행복의 최우선 가치로 꼽는 견해에서 보자면, 이들은 지금 불행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노년 여성보다 활기차며, ‘바로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 오히려 이들이 편안한 결혼생활을 누렸더라면, 이처럼 꾸준히 경력을 이어오지 못했으리라. 이들이 현재 가족이 있든 없든 오롯한 개인으로 만나 ‘같이 사는’ 모습을 보니 ‘뭣이 중한지’ 알 것 같다. 긴 인생에서 결혼생활은 한시적이며, 언젠가는 다시 ‘싱글 라이프’로 돌아온다는 자명한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가부장제 사회는 오늘도 협박한다. 가난하고 외로울 것이라고. 늙으면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어쩌면 고독사할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왕언니들’의 삶을 보니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겠다. 건강이 있고, 일이 있고, 친구가 있고, 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는 여성은 늙어도 불행해지지 않는다. 고독사는 자신을 돌볼 능력이 없는 남자들의 몫이다. 자신들의 불안함과 취약함을 투사하는 남자들에게 결단코 속지 말자.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