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는 남자
‘야동’은 밝은 느낌의 줄임말이다. 지배적 표현이던 ‘음란 동영상’ 대신 ‘야동’을 쓰기로 합의하고 실행하는 우리들은 시대의 비밀을 한 가지 들춰낸다. 칙칙한 어감의 ‘비디오’ 또는 ‘포르노’를 음지에서 보던 낡은 도덕주의의 시대는 갔다.
물론 여전히 포르노그래피 탐닉 취향은 들통 나면 한없이 창피한 일이지만 그래도 치명적 하자는 아니다. 할아버지 ‘야동 순재’가 주책맞은 도덕적 파탄자로 몰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안다. 발랄한 ‘야동’은 음란을 꿈꾸는 우리들의 죄의식을 털어낸 천금 같은 신조어이며, 포르노그래피의 사면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조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미국 드라마를 줄인 ‘미드’는 무엇의 증거일까. 살갑고도 닭살 돋는 어감의 ‘미드’는 우리가 미국 드라마에 대한 집단적 태도를 경신했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미드라고 정겹게 부를 때 미국 드라마는 우리에게 꽃다운 어떤 것이 된다. 동시에 우리는 자인한다. 이제는 미국 드라마에 대한 의심, 반감, 경계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실토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우리가 미국 드라마에 열광했다고들 말하지만 실은 불편하기도 했다. 무국적 여성인 원더우먼은 왜 성조기 무늬의 내복을 입고 악당을 물리치는지, 이런 저런 드라마의 주인공 남녀들은 왜 그렇게 자주 키스하는지 의아스럽고 생경했다. 맥가이버나 6백만불의 사나이나 에어울프도 다들 미국 안보의 수호자였던 것이 분명하므로 돌이켜보면 멋모르고 열광했던 기억이 개운치 않다.
말하자면 미국 드라마는 당연하게도 미국식 가치관과 이념과 성 윤리를 담고 있는 미디어이며, 그 때문에 낯설고도 의심스러웠던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섹스 앤 더 시티〉의 급진적 섹스 수다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24〉의 미국식 애국주의를 주시하지 않으며 〈CSI〉의 비주류 집단에 대한 편견을 거리낌 없이 수용한다. ‘미드’는 ‘미국 드라마’에서 국적을 삭제한 것으로, 시청자들을 미국 문화권 시민으로서 즐기도록 고무하는 신통방통한 신조어이다.
한편 ‘석호필’ 현상을 낳은 우리의 의지는 더더욱 적극적이다. 극동의 시민들이 미국의 대중스타에게 한국식 이름을 붙이는 작명법은 국경 밖의 산물을 자기의 것으로 취하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우리는 스코필드를 석호필로 음역함으로써 그 배우 혹은 그 캐릭터를 소유하려 했고 그 바람은 실현되었다. 석호필이 한국에 와서 우리만을 위한 인터뷰를 하고 광고를 촬영했다. 스타벅스 매장이 수입되어 현지화된 사업을 벌이듯 석호필도 한국 현지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말과 포즈 등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석호필’ 현상은 미국의 문화 상품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일체화하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미국 문화와 시민권 그리고 학력을 속절없이 선망하게 된 우리들은 미국 드라마에 대한 마음도 허물었으며, ‘미드’와 ‘석호필’이 그런 정황을 드러내는 신조어들이다.
이영재/웹진〈컬티즌〉편집장
이영재/웹진〈컬티즌〉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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