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드라마 등 각종 방송 대본을 자료화하는 디지털도서관 사업이 진행중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전자 입력하기 위해 모은 방송대본 원고들.
사진 한국방송작가협회 제공
‘방송대본 디지털도서관’ 내년초 개관
소실 많아 수집·보관 시급…158만부 모아 일반에 공개 〈아씨〉 〈어머니〉 〈충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 1950~60년대 안방을 사로잡으며 그 시대를 함께 호흡했던 드라마들이지만, 정작 그 대본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동시대 시청자들에겐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들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 대본을 한자리에 모아, 누구나 볼 수 있게 디지털도서관에 담아내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이사장 박정란)는 올해 방송위원회로부터 방송발전기금 10억원을 지원받고 자체예산 2억원을 보태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방송 대본 수집과 입력 작업에 들어갔다. 국내 최초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이 송출을 시작한 1933년부터 지금까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예능오락물 등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방송됐던 모든 장르의 대본이 이 도서관에 담기게 된다. 올해 안에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을 마친 뒤 내년 초에는 국내 최초의 방송대본디지털도서관을 개관할 계획이다. 디지털도서관이 구축되면 원하는 이는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사이트에 접속해 대본을 열람하거나 내려받을 수 있다. 방송 대본은 영상물을 위한 텍스트라는 특성상 일단 방송되고 나면 작가 개인의 컴퓨터나 시디·디스켓을 전전하거나, 육필원고 뭉치 상태로 떠돌다 소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00년대 들어 1세대 방송작가들이 잇따라 타계하면서 이들의 육필원고가 망실될 위기가 커졌다. “옛날 드라마 대본을 찾으려고 보면 1980~90년대 것도 정말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50~60년대에 한창 활동하다 지금은 작고한 작가들 작품은 말할 나위 없고요. 방송물 필름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80년대까지만 해도 비싼 필름값 때문에 종전 녹화분을 지우고 새 작품을 찍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박정란 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이 밝히는, 방송 대본 수집·기록 작업이 절박한 이유다. 방송 대본 데이터베이스(디지털도서관) 구축사업은 진작부터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비용 문제 등 때문에 기획단계에서 무산되기 일쑤였다. 올해 국회 예산 통과로 대본 수집과 입력에 들어갔지만, 이 작업 과정도 녹록한 건 아니다. 트럭 한대 분량의 원고를 내놓겠단 이도 있지만, 육필 원고의 경우 오랜 세월 탓에 일부 내용이 없어진 경우도 많았다. 방송작가협회 방송대본수집기록보존사업 추진단 류시균 단장은 “1990년대에 작가들이 대본 보관에 애용했던 3.5인치 디스켓은 6~7년 지나면 복원이 불가능해진다”며 “애써 대본 디스켓을 몇 상자나 받아왔는데, 디스켓이 열리지 않아 가슴 아팠다”고 전했다.
방송작가협회는 2천여명의 회원들을 비롯해 방송 관계자와 작고 작가의 유족, 지인까지 수소문하며 대본을 모으고 있다. 방송사들에도 자료 협력을 요청한 상태다. 올해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60분 방송분량을 1부(에이4 용지 30장)로 셈할 때 모두 158만3000여부(텔레비전물 41만8000여부, 라디오물 116만4000여부)의 방송대본을 수집하려 한다. 박정란 이사장은 “방송 대본은 작품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생활사나 시대사적 가치를 지닌다”며 “디지털도서관이 문을 열면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은 예전 작품을 통해 공부할 수 있고, 일반인들도 소설책 보듯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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