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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단박 인터뷰’ 단박엔 못 만든다

등록 2007-05-09 18:22

지금은 방송중
새로운 프로그램을 띄우기까지 예방주사를 맞듯 피디들은 조바심내고 마음 졸이고 자신을 위안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2003년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무명의 피디가 시작하는 새 프로그램에 누가 출연해 줄 것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방송일이 다가오도록 출연자로 섭외했던 사람들이 몇 번의 출연약속을 하고 다시 어기면서 마음고생만 커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 선배는 ‘섭외펑크는 있어도 방송펑크는 없다’고 위로해 주었고, 다른 선배는 ‘섭외가 안 되면 프로그램을 내려야 한다’는 평범하면서도 쓴 약 같은 진리를 상기시켜 주었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선배의 응원도 있었다. “네 멋대로 해라. 마음껏 욕심내라. 500% 지원하겠다” 이런 든든한 지원 아래에서 프로그램이 안 될 리가 없다. 〈낭독의 발견〉이 문화계의 별과 같은 예술인들이 거의 다 출연한 괜찮은 프로그램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참 행복했다. 그리고 피디가 되었다는 사실에 진실로 감사했다.

지난 3월 중순 선배 피디의 전화를 받았다. 새로운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수시키는데 해볼 의향이 있냐는 것이다. 〈낭독의 발견〉이 시작된 지 3년 반. 이제는 새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던 차에 ‘이 프로그램은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일종의 ‘부름’으로 생각되는 이 순간의 번득임은 아직도 생생하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자와 연출하는 자. 흡사 첩보영화에서 주인공이 옛 보스의 지령을 받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이 순간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연출자를 찾느라 고민했던 선배는 “오늘 밤부터는 두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겠다”며 유유히 사라졌다.

선배와 헤어진 그날부터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시사인터뷰는 낯설고, 화수목 3일 방송되는 준일일방송의 편성도 생경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로그램 기획안을 쓰고, 콘셉트를 잡고 방향을 잡았다. 제목이 프로그램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에 제목을 짓느라 골몰했다. 아무리 해도 좋은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국어사전을 뒤지다가 ‘단박’이라는 단어를 찾았다. ‘즉시’, ‘직접적으로’, ‘현장에서’를 뜻하는 부사를 붙여 〈단박인터뷰〉라고 이름 지었다.

방송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커졌다. 방송 일주일 전까지도 출연자가 결정되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스태프들을 “프로그램이 스스로 섭외를 하니, 프로그램에 귀를 귀울이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위로했다. 방송을 며칠 앞두고 섭외가 결정되었고, 첫 방송을 하게 됐다. 프로그램의 질은 아쉽지만, 문제없이 방송을 치러냈다는 것 자체가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첫 방송을 끝내고 첫 주말을 보냈다. 하나의 방송프로그램이 이름을 달고 망망대해로 흘러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조급하지 않게, 하지만 간절히 마음을 담는다면 프로그램은 순항할 것이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홍경수/KBS 단박인터뷰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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