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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어른 욕망이 만든 아이 ‘봄이’

등록 2007-05-20 17:57

 〈고맙습니다〉의 봄이
〈고맙습니다〉의 봄이
TV 보는 남자
세상 아이들이 문화방송 〈고맙습니다〉의 봄이(사진)를 본받아야 할까. 봄이의 웃음이 감동적이고 드라마 또한 대단히 매력적이었지만 봄이와 같은 천사표 아이가 굳이 존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아이들이 봄이를 흠모할 이유도 없다. 봄이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캐릭터이다. 어른들의 욕망대로 만들어진 우수한 유전자의 맞춤형 아이가 바로 봄이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봄이는 어른보다 어른스럽다. 예의바르고 귀엽고 지능도 높다. 다감하고 온유하고 인내심 강하고 밝다. 어른들이 자신의 자녀나 조카에게 바라는 모든 최고급 성정을 두루 갖추고 있다. 나아가 영적인 감화 내지 치유의 능력도 갖고 있다. 마음을 닫았거나 마음이 차가운 어른들을 돌려 세운다. 봄이는 완전무결한 슈퍼 어린이이고 날개만 없을 뿐 천사와 같은 존재다.

정반대로, 에스비에스(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감당하기 어려운 어린이들을 보여준다. 주먹과 발길질로 동생을 구타하는 아이, 고집불통의 아이, 대인 공포증에 시달리는 아이, 공격성이 유달리 심한 아이 등의 사생활이 그 흔한 모자이크 처리 없이 노출된다. 그들은 특별히 문제적인 아이들일까. 아닐 것 같다. 봄이보다는 차라리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아이들이 더욱 현실적이다. 그들은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는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이들은 항상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물론 천사 어른도 없다. 적어도 나는 천사 같은 어른과 단 한 번도 대면하지 못했다. 책에서 그런 완전한 인간이 있다고 읽었으나 실제 같은 공기를 마셔본 일도, 악수를 해 본 적도 없다. 내 주위의 어른들은 조금씩은 독하고 삐뚤어지고 무책임하고 우울했던 것인데, 그런 불완전 인간들도 다들 쓸모있고 친교를 나눌 만했다. 어른이나 아이나 천사가 아니어도 된다.

〈고맙습니다〉의 봄이 캐릭터는 어른 시청자를 끌고자 고안된 인물이다. 어린이 시청자들이라면 차갑게 외면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짱구처럼 심술맞은 장난꾸러기가 진정한 우상이다. 치매 노인 미스터 리도 어른들을 위한 또 다른 천사 어린이다. 치매가 노인을 순진무구한 존재로 뒤바꾸는 착한 질병일 리가 없다. 봄이처럼 미스터 리도 실존할 수 없는 어른들의 환상이다.

〈고맙습니다〉에 쏟아졌던 찬사들을 잘 뜯어보면, 사랑의 신화만큼 천사 어린이 신화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고 흥행성도 강하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 흥행성은 특유의 스텔스 기능에서 나온다. 완벽한 사랑 따위는 거짓이라고 쉽게 성토하는 이들도 착하고 귀여운 아이 캐릭터 앞에서는 비판력을 잃고 무장해제된다. 영화든 소설이든, 드라마건 광고건 천사 어린이 신화가 쓸 만하다. 우리 사회 비판의 레이더는 그것을 좀처럼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영재/웹진 <컬티즌>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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