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고맙습니다, 여러부~운!

등록 2007-06-10 17:13

지금은 방송중
기부드라마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질문〉은 조촐한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말로만 하지 말고 우리의 재능으로 조금만 좋은 일을 해 보자는 성준기 감독의 제안에 이선희 서희정 작가와 나, 배우 배종옥 등 몇몇이 맞장구를 친 데서 비롯되었다. 냉정한, 비리가 난무하는 삭막한 방송가를 우리가 나서서, 조금만 아름답게 만들자! 지금 생각하면 격한 말로 ‘웃기는 짓’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하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남 탓을 내려놓고 오직, 그곳에서 못난 자신의 꼬락서니만을 잘 지켜보며 반성합니다’라는 명심문을 새기며 성준기 감독과 참여 작가 12명, 배종옥이 고개 숙여 천배를 할 때도 내 경우 그것은 감상이었고, ‘잘난 척’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우리가 하는데, 안 될 턱이 있나, 잘 될 거다, 무조건!’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그 오만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하나도 되는 일이 없었다. 좋은 일인데 한다는 사람은 다 참여하자는 슬로건은 좋았는데, 의견이 안 맞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가정의 달’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방송사에서 편성을 따내는 일부터 모든 제작 과정을 진행할 프로덕션을 찾는 일, 참여할 배우들이 적을 경우 특집극의 제작비로는 처음부터 남는 돈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까지. 도망가고 싶었다. ‘차라리 개인적으로 돈 몇 푼 내고 말지….’ 다들 스케줄이 장난이 아닌데 회의만 밤에서 새벽까지 이어지고, 성질대로 살다 공동작업이라는 틀 안에서 내 의견과 글이 까일 때는 ‘북한의 아이들이, 제3세계 아이들이 싹 다 굶어죽어도 도저히 못하겠네’라는 말이 목구멍을 간질였다. 장장 6개월 동안 목적은 오간 데 없고 성질만 났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 일을 끝마칠 수 있었을까? 이후, 나의 공은 없었다. 내가 흔들릴 때 12명의 참여 작가가 바로잡아주고, 방송사가 시청률을 포기해도 이런 일은 해야 한다고 나서주고, 기업이윤을 포기해 모금액을 늘려주겠다고 프로덕션이 부추기고, 그 좋은 일에 왜 나는 끼워주지 않느냐고 배우들이 응원가를 불러주고, 감독과 스태프들이 돈 몇 푼 아끼려고 촬영일수를 줄여주고, 외부제작 스크롤에 돈을 절약하겠다고 혼자 끙끙대는 성준기 감독을 한국방송 기술팀과 카프리라는 사진모임이 도와주고. 지금껏 내가 잘나 방송가에 사는 줄 알았는데, 나는 오직 글 한줄 썼을 뿐이고, 그걸 구체화하는 작업에 나는 없었음을 이번일로 깨달았다.

어느 날, 대자연 속에서 나 까짓 게 뭐라고 이렇게 세상을 향해 핏댈 세우나, 공기가 없음 내가 사는가, 농부가 없음 내가 사는가, 건축하는 사람들이 없음 내가 사는가, 가족이 없음 내가 존재라도 하는가?를 물었을 때 눈물나게 모든 것에 감사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도 그렇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부족한 방송을 봐준 시청자에게도 더없이. 여의도는 아름답다. 다만, 내 오만한 감각이 느끼지 못할 뿐.

노희경/드라마 작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