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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고달픈 영웅의 못말리는 입담

등록 2007-07-08 17:59

 〈다이 하드 4.0〉
〈다이 하드 4.0〉
‘다이하드’ 4편까지 20년 인기비결
막강한 적 홀로 맞선 소시민 가장
몸으로 때우며 풍자·유머로 제압

〈다이 하드〉가 나온 것이 1988년.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도 〈다이 하드 4.0〉을 보고 있으면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카폰에서 핸드폰, 인공위성을 이용한 피디에이(PDA)로 도구가 바뀌어도, 육체의 극한을 시험하는 듯한 존 매클레인의 악전고투는 여전히 황홀하다.

2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도 지속되는 〈다이 하드〉의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은 〈다이 하드〉로 돌아가야 한다. 〈다이 하드〉의 창조자는 존 맥티어넌이다. 요즘은 한물간 감독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붉은 10월〉 〈프레데터〉 〈다이 하드〉를 연출하던 시절의 존 맥티어넌은 할리우드 시스템 내에서 일하는 작가주의 감독이란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명장이었다. 그의 걸작들 중에서도 〈다이 하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액션영화 베스트 10을 꼽는다면 단연 상위에 꼽힐 명작이다.

존 맥티어넌의 〈다이 하드〉는 그의 영화들에 보이던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붉은 10월〉 〈프레데터〉 〈다이 하드〉의 주인공들은 각각 잠수함, 정글, 고층빌딩에 고립된다. 그들을 공격하는 적은, 어느 면으로 보아도 압도적인 전력을 가진 소련의 정규군, 외계인 전사, 고도로 훈련된 테러리스트들이다. 주인공의 동료인 미군이나 경찰 등은 그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는 내부의 적이다. 고립되어, 홀로 싸우는 영웅들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나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혹은 복원하기 위하여 ‘모험’에 나서는 것이다.

 〈다이 하드 4.0〉
〈다이 하드 4.0〉

〈다이 하드〉는 확실히 80년대적인 영화였다. 존 매클레인을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질은 아니지만, 남성적인 백인 영웅이라는 점만은 동일하다. 존 매클레인은 혼자서 다수의 적과 싸우는 웨스턴의 영웅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함께 싸울 동료가 없고, 전력도 약세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외부의 적을 막음으로써 내부의 가족을 보호한다. 결국 존 매클레인은 가부장적인 영웅이다.

다만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존 매클레인이란 존재는 초라하다. 근육도 별로 없고, 요즘의 슈퍼히어로처럼 특별한 능력도 없다. 존의 유일한 능력이라면 언제나 상대를 놀리는 능수능란한 입심이다. 애초에 풍자는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는 약자의 무기였다. 내부에서도 골칫거리인 존 매클레인이 외부의 적과 싸우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조롱과 풍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입심이다. 크리스마스 등 공휴일만 되면 테러리스트와 싸워야 하는 고달픈 운명 속에서도, 존 매클레인은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다. 존 매클레인은 당연히 소시민이 따라 배워야할 영웅인 것이다.

레니 할린의 〈다이 하드 2〉를 거쳐, 존 맥티어넌은 〈다이 하드 3〉으로 복귀한다. 3편에서 존 매클레인은 고층빌딩과 공항이라는 좁은 장소에서 벗어나 도시 전체를 누비지만, 오히려 상황은 악화된다. 여전히 테러리스트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며 생고생을 할 뿐이고, 동료라곤 빈민가의 흑인 선생 하나뿐이다. 그리고 이미 존은 가족에게 버림받았다. 이기고 나면 뭔가 보장되는 영웅이 아니라, 이긴다 해도 상처뿐인 영광인 소시민의 삶을 존 매클레인은 몸소 보여준 것이다.

〈다이 하드 4.0〉은 전작들을 철저하게 반복 학습한다. 결국 화해는 하지만 딸조차도 존을 스토커 취급하고, 국가의 컴퓨터 시스템을 초토화시키는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서는 오로지 철부지 해커의 판단에만 복종해야 한다. 존 매클레인은 신세대의 요구에 따라 몸으로 싸우는 아날로그 구세대의 판타지로도 보인다. 그래도 상관없다. 몸으로 때우는 화끈한 액션과 누구나 발끈하게 만드는 입담만으로도 〈다이 하드〉 이후에 태어난 관객들까지 사로잡는다. 역시 〈다이 하드〉의 본질은 존 매클레인의 캐릭터와 죽도록 고생하는 아날로그 액션이다. 〈다이 하드 4.0〉은 〈다이 하드〉의 적자로서 모든 것을 갖춘 영화다.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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