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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지금은방송중] 오락의 새 장르 ’무한 수다’쇼

등록 2007-07-22 18:03수정 2007-07-22 21:20

지금은방송중
10년쯤 전, 심야 토크쇼의 난잡함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즐겨 쓰던 관용구가 ‘연예인 신변잡기 수준의 수다로 넘쳐나는 경박한 토크쇼’였다. 당시 그 경박한 일로 밥벌이를 하던 나는 못내 궁금했다. 연예인 신변에 관한 잡기들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으로 토크쇼를 만들라는 것인지 말이다. 가수들과 조세정책을 논의하고, 배우들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반 토론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시청자들이 즐거워하지 않을 거라는 점은 그런 관용구를 쓴 평론가들도 동의하리라 본다. 교훈과 감동을 얻고 싶다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편이 낫다. 게스트의 생각과 경험과 일상을 묻고, 가끔 공감도 해주는 정도의 찰랑찰랑한 무게감이 토크쇼의 생산성이요, 효율이요, 깜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토크쇼의 생산성에 관해 좀더 과격한 입장을 취하는 쇼들이 각광받고 있다. 문화방송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식의 전통적 토크형식이든 <무한도전> 식의 새로운 토크쇼이든 최근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쇼들은 연예인의 신변잡기보다 훨씬 더 허접스런 소재로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일테면 ‘쇼의 진행자 중 누가 진짜 2인자인가?’ 같은 것이다. 녹화를 마치고 난 뒤, 분장실에서 출연자들끼리 나눔직한 대화로 30분을 꾸린다. 공감은커녕, 몇 주 시청을 건너뛰면 이해도 어렵다. 출연자들 간의 역학관계를 시트콤처럼 파악하고 있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라디오 스타’가 매회 단편 드라마 류의 부제를 자막으로 띄우고, <무한도전>이 출연자들에게 별명을 붙여가며 캐릭터를 만드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새로운 장르의 토크쇼는 출연자의 신변잡기조차도 관심이 없다. 그런 것쯤 요즘은 인터넷에서 바로바로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시트콤 주인공처럼 친숙해진 캐릭터들이 아무 이유 없이 떠드는 것을 구경하는 즐거움이 바로 이 새 장르의 미덕이다. 토크쇼가 ‘대화를 나눈다’는 형식을 전제로 한다면, 중구난방 떠들고 있는 광경을 엿듣는 형식의 이런 쇼에 ‘챗쇼(chat-show)’라는 이름을 붙여줌 직하다. 기존 토크쇼가 연예인을 모셔다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면 챗쇼는 여럿이서 수다방에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와글와글 떠드는 분위기다. 그런데, 생산성으로 치자면 제로에 가까운 이 챗쇼들이 주는 오락성이 의외로 순도가 꽤 높다. 재밌다는 점에서 오락 프로그램 본연의 기능에는 가장 충실한 형식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랑스의 살롱문화, 카페문화에서 수많은 철학과 미학과 예술들이 싹텄다는 부러운 얘기를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겼다. 쉽게 얘기하자면 그 친구들 매일 커피마시며 무정형의 수다를 즐기다가 영감들을 얻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프랑스의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파리쟝들의 수다에 카메라만 한대 뻗쳐놓은 것들이 많다.

까짓거 떠들며 뭔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우리도 좀 한다. 재잘대는 것에 뿌리 깊은 천시풍토가 있는 우리 사회도, 이제 바야흐로 수다 엔터테인먼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김일중/<토크쇼 화법> 저자,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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