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영애씨
티브이엔 ‘다큐 드라마’ 인기몰이…통통튀는 꼬집기에 시청자들 ‘후련’
이영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조각 같은 얼굴과 매끈한 몸매의 ‘친절한 금자씨’가 먼저 떠오른다면, 최신 흐름에서 꽤나 뒤처진 당신이다. 아니라고? 둥글넙적한 얼굴, 넉넉한 몸피, 까칠한 성격의 ‘막돼먹은 영애씨’가 먼저 떠오른다고? 오호라, 뭘 좀 아시는 분인데?
케이블방송 채널 티브이엔(tvN)이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방송하는 〈막돼먹은 영애씨〉(사진)의 인기몰이가 심상치 않다. 지난 4월20일 첫 방송을 선보인 이래 1% 안팎의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케이블 시청률 1%는 지상파 방송 시청률 10%와 맞먹는 수치로, 흔히 케이블방송 업계에서 성공 여부를 따지는 기준이다. 지난 13일에는 시청률이 1.15%까지 치솟았다. 선정성을 등에 업고 눈길을 끌어모으는 다른 티브이엔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선정성 없이도 효자 프로그램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애씨〉가 표방하는 장르는 ‘다큐 드라마’.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결합했다는 뜻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많이 쓰이는 6㎜ 카메라로 스튜디오 세트가 아닌 실제 가정집·사무실 등지에서 촬영했다. 새로운 장면에 들어갈 때 시간·장소를 자막으로 내보내며 성우의 해설을 집어넣는 다큐멘터리 기법도 빌렸다. 편당 제작비는 3500만원이다. 억대 제작비를 훌쩍 넘기는 다른 드라마에 비하면 초저예산 드라마인 셈이다.
〈…영애씨〉의 다큐적인 특징은 형식에만 그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꾸밈없이 보여줌으로써 다른 드라마들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리얼리티와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얻어낸다. ‘출산드라’로 이름을 알린 개그우먼 김현숙이 연기하는 이영애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다. 외모·몸매·집안·학벌·직장 어느것 하나 튀지 않는 영애는 그러나 다른 드라마의 그 어떤 인물보다도 입체적이고 통통 튀는 색깔을 보여 준다.
직장 후배인 ‘킹카’ 연하남을 짝사랑하다 용기를 내어 먼저 고백하는 영애지만, 그 후배의 거절에 창피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회사를 옮기려는 영애기도 하다. 그가 없으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능력 있는 영애지만, 남들에겐 해외여행 간다고 둘러대고 단식원에 들어갈 정도로 외모 콤플렉스에 짓눌린 영애이기도 하다. 단식원 입소 이틀 만에 필사적인 탈출에 성공하고는 흠모하는 후배 앞에서 치킨·피자·과자 등 온갖 먹거리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내 주제에 다이어트는 무슨? 생긴 대로 사는 거지”라고 뇌까리는 것도 영애의 참모습 가운데 하나다.
‘덩어리’라 부르며 희롱을 일삼는 직장 상사에게 개똥 묻은 구두 뒷굽으로 커피를 저어 주거나 상사의 칫솔로 화장실 변기를 닦는 등 엉뚱하지만 후련한 영애의 복수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많다. 막돼먹었을지언정 비뚤어진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똥침’을 날리는 영애씨가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히로인’인 이유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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