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보는남자
알다시피 여론조사는 가장 용감한 과학에 속한다. 오차를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모집단과 표본이 같지 않음에도 여론조사는 표본으로 모집단을 추정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모험적인 과학에 중독된 것처럼 보인다. 정치 분야의 여론조사 열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여론조사를 금지시키면 문 닫을 오락 프로그램들이 한둘이 아니다.
<야심만만, 만 명에게 물었습니다>가 가장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퍼센트>는 근래 시작된 여론조사 오락 프로그램이다. <미녀들의 수다>는 ‘앙케트’라는 것의 결과를 갖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7옥타브>는 퀴즈 형식이지만 설문조사로 모범 답안을 만든 뒤 진행한다. “10대 80%가 모르는 이 단어”를 알아맞히는 <상상플러스 올드 앤 뉴>로 역시 설문조사를 배경으로 삼는다.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도 이전에는 방청석에 100명 가량의 사람들을 앉혀 놓고 즉석 설문조사를 벌였다.
개별 내용으로 볼 때는 공감도 가고 품격도 높다 싶은 때도 많지만, 유사 여론조사 오락프로그램의 범주에 넣을 것들이 과잉인 게 사실이다. 왜 여론조사가 오락프로그램의 주요 형식이 된 것일까. 여론조사라는 과학의 제스처만 취해도 적잖은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먼저 수다의 진정성을 과시할 수 있다. 출연자들의 대화가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폄하될 위험이 줄어든다. 그들은 여론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여론은 중요한 사회적 사실이다. 프로그램의 설문조사 순위가 엄격한 과학적 작업의 결과인지 여부는 무의미하다. 여론 조사의 가면만 쓰면 오락프로그램들은 중요하고 신뢰도 높은 주제를 다루는 듯 분장할 수 있다.
또 여론조사 형식은 간접 화법에 해당하므로 선정성으로 주목받으려는 소수 절박한 제작진의 안전도 도모해 준다. 가령 ‘이럴 때는 후배가 밉다’ ‘이런 일 때문에 누군가와 싸웠다’ ‘양다리 걸친 적 있다’고 말한 것은 대중들이다. 제작진은 대중의 입을 빌기 때문에 도덕 근본주의자로부터 비난받을 주제도 건드려볼 수 있다. 프로그램은 이슈의 생산자가 아니라 중계자로서 막후에 숨는 것이다.
시청자들로서도 여론조사 형식 프로그램에서 이득을 얻는다. 일종의 교양 욕구를 채우게 된다. 사람들 혹은 세상의 비밀을 알고 배운다는 착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실컷 웃고 떠들면서 교양을 얻게 되는 ‘에듀엔터테인먼트’가 매일 밤 티브이에서 펼쳐지는 셈이다.
또 한국인의 집단주의 습성도 여론조사 형식 프로그램들의 득세를 가능하게 했다. 나의 사고, 라이프스타일, 화법, 속마음 등이 세상과 얼마나 다를까 안절부절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여론조사 결과는 큰 위안이다. 나 개인과 집단 평균의 거리를 가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집단의 다수 의견 내지 다수 취향에 개의치 않는 독립적 개인주의자가 많다면 유사 여론조사의 상품성은 없을 것이다.
이영재/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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