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엄마 따라잡기>
비록 코미디물에 가깝기는 하지만 교육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한 문제제기를 해왔던 SBS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끝났다. 아쉽게도 마지막 회는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소 김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드라마를 꽤 재미있게 봤다.
나는 한국교육의 비뚤어진 현주소에 대한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비판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여기서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몇 가지 점을 살펴보겠다.
1. 현민주(하희라 분)의 아들에 대한 집착
현민주는 외아들 진우를 특목고(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해 과감하게 강남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경제력이 없는 현민주가 강남의 사교육 열기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 현민주는 아들의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낮에는 식당일,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다가 마침내는 노래방 도우미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일반 서민들의 눈으로 볼 때 현민주의 행동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왜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면서 아들의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고 할까?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포장된 현민주의 자기욕망일 뿐이다. 현민주는 부잣집 아들이자 서울대 학생이었던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둘의 신분격차는 워낙 컸기 때문에 시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는다. 그런 현민주에게 있어서 남편이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검사 부인’이 되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류남편을 가진 여자’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현민주의 간절한 소망은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은 뒤로는 아들 진우에게 옮겨졌다.
현민주에게 있어서 아들 진우가 당당하게 일류대에 입학하여 판검사가 되는 것이야말로 긴 세월동안 가슴속 깊이 쌓인 한을 푸는 것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순종적인 아들인 진우는 엄마와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모자 간에 갈등이 표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가 엄마의 비뚤어진 욕망의 희생자임을 어렴풋이 자각하게 되자 진우와 엄마 사이는 점점 틈이 생기게 된다. 만일 현민주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진우와 엄마 사이는 계속 나빠졌을 것이며 진우 자신의 심리적 건강성도 심하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일류대에 보내기 위해 올인하는 부모들 중에는 이렇게 자기의 심리적 문제점을 아이들에게 투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열등감’(공부 혹은 출세에 대한 열등감)이 심한 부모는 아이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이런 점에서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위장된 부모들의 잘못된 욕망과 위선을 보여준 것은 긍정적이다.
2. 서상원 선생(유준상 분)이 현민주에게 끌리는 이유
좌충우돌하는 남자 주인공 서상원 선생은 매우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시청자들 중에는 ‘과연 저렇게 골 때리는 인간이 있을까?’라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법 하다.
그러나 비록 인구분포상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서상원 선생과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서상원의 성격은 ENFP(어린아이)이다.
ENFP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뜨거운 열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낙천적으로 생활한다. ··· 타인의 기분이나 본능적 욕구를 알아내는 천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을 모으고 청중을 리드하는 카리스마와 기술이 있기 때문에 마치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사람들을 휩쓸고 다닌다. ··· 이들은 대인관계를 중시하고 주목받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며, 관능적 매력과 끼로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우’에 딱 어울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성격과 심리학>, 김태형·전양숙, 새뜰심리상담소, 2007, 151~152쪽)
다행히도 서상원은 좋은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 자신감이 넘치고 심리적으로도 건강하다. 게다가 유전적으로 좋은 머리까지 타고 나서 지적이며 유머가 넘치고 재치가 번뜩인다.
그러면 귀여운 악동(ENFP : 어린아이)인 서상원이 재미없고 무뚝뚝하며 고지식한 현민주(ISTJ : 모범생)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 현민주의 성격은 서상원과는 완벽하게 반대되는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E(외향)-I(내향), N(직관)-S(감각), F(감정)-T(사고), P(인식)-J(실천)의 대립축에서 서상원은 모두 왼쪽에 해당되는 ENFP(어린아이)라면 현민주는 모두 오른쪽에 해당되는 ISTJ(모범생)이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와는 반대되는 성격(심리적 유형)에 매혹당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 본능적으로 그림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몸이, 땀을 많이 흘렸을 때 갈증을 나게 해 물을 마시게 함으로써, 신체적 균형을 되찾게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성격과 심리학>, 169쪽)
그것은 둘째, 서상원과 현민주의 반대되는 성격은 서로의 결점을 보완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적이며 매사에 까불까불하고 좌충우돌하기 쉬운 ENFP(어린아이)가 안정감이 있으며 강단지고 현명한 ISTJ(모범생)를 배우자로 맞이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에 정서적으로 둔하며 지루한 편인 ISTJ(모범생)에게 있어서 톡톡 튀는 건강한 ENFP(어린아이)는 인생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즉 심리적으로 건강하기만 하다면 ENFP와 ISTJ는 성격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상원이 정략적으로 접근한 한선생과의 결혼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한선생은 전형적인 ‘파파 걸’(아버지에게 의존적인 딸)에다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만일 순진하고 철없으며 맹한 한선생이 서상원과 결혼한다면 자기 아버지에게 그랬듯이 서상원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서상원은 안정감이 없고 좌충우돌하는 충동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선생의 의존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서상원은 역시, 사랑하기만 한다면, 현민주와 결혼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3. 강남엄마들의 성격
<강남엄마 따라잡기>에 등장하는 성호엄마(호빵맨)를 위시한 극성맞은 강남의 아줌마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여기서는 그들의 잘못된 교육관은 제쳐두고 성격에 대한 얘기만 해보려고 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강남엄마들은 거의 다 ES-J(ESFJ와 ESTJ)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외향감각형(ES)이라는 심리적 유형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ES는 현실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외부자극에 지극히 민감하기 때문에 현실을 놓치는 경우란 거의 없으며 최신유행도 놓치지 않고 쫓아다닌다.(<성격과 심리학>, 114쪽)
외향감각형(ES)들은 세상의 흐름과 유행을 아주 민감하게 포착하여 그것을 쫓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첨단을 달려야만 직성이 풀리고 안심을 한다.
외향형(E)들은 외부자극이나 타인의 평가 등을 아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이들은 무턱대고 남들을 모방하는 ‘남 따라 하는 바보’가 될 가능성이 많다.
게다가 세세하고 구체적인 데 무관심한 편인 직관형(N)과 달리 감각형(S)은 ‘아이를 일류대학에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학원이 좋은가’와 같은 ‘구체적인 사실’들에 아주 민감하다. 반면에 ‘한국의 교육이 올바른가?’, ‘지구온난화를 그대로 두면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와 같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문제’들에는 몹시 둔감하다(이런 문제들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직관형(N)들일 가능성이 많다).
둘째, 아이들을 철두철미하게 통제하며 관리하는데서 인식형(P)보다는 실천형(J)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목적의식성, 자기 자신과 환경에 대한 통제력, 조직성과 규율성이 뛰어난 실천형(J)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정해진 목적에 따라 철저히 통제하려고 하며 그럴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돌연변이 강남엄마인 이미경(정선경 분)은 인식형(P)이기 때문에 그녀가 강남엄마들을 열심히 따라다니는 것은 힘에 겨운 일이다. 이미경이 아이 닦달하기를 포기한 것은 아이(준옹)의 머리가 나쁘다는 것도 원인이 됐겠지만, 끈질기고 완강하지 못하며 충동적인 인식형(P)의 성격적 특성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도적인 강남엄마들은 대부분 성호엄마(호빵맨)와 같은 ESFJ(인심좋은 주인장)이거나 윤수미(지연 엄마)와 같은 ESTJ(보안관)들이다. 물론 ESFJ가 주로 능숙한 사교술로 엄마들을 이끈다면 ESTJ는 주로 논리성과 찍어누르기로 엄다들을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들 주위에 이미경 같은 ESFP(낙천가)나 현민주 같은 ISTJ(모범생)들이 모인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ES-J(ESFJ와 ESTJ)들은 대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도록 선동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사회가 건강하지 못할 경우 이들은 가장 심한 반개혁주의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목소리가 큰 ES-J들을 생각 없이 뒤쫓다가 사회의 흐름이 바뀌게 되면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4. 윤수미(임성민 분) 아들의 자살
과학고에 다니던 윤수미의 아들인 이창훈의 자살은 잘못된 한국의 교육현실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지옥 같은 입시공부에 시달리고 있는 대다수의 아이들 또한 비록 자살은 하지 않더라도 심신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창훈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크게 보면 한국의 교육현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윤수미가 과학고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창훈이를 데리고 교육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한 상담자는 창훈이의 우울증이 심하니 심리치료부터 받게 하라는 충고를 해준다. 그러나 윤수미는 그 말을 무시했다.
이런 윤수미의 행동은 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범하는 잘못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심리적 병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몸에 병이 생기면 당장에 병원에 데리고 가는 등으로 난리를 치지만 마음의 병은 일류대학에 합격하고 출세를 하면 자연히 낫는다는 무지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심리적 병을 방치하는 것은 육체적 병을 방치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다. 윤수미에게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아이를 죽음으로까지는 몰고 가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한 윤수미의 성격적 특성은 창훈이에게 버거웠을 것이며 창훈이의 우울증을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많다.
윤수미의 성격은 ESTJ(보안관)인데,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ESTJ는 자기확신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여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들은 정서적 공감능력이 부족하며 차갑고 신경질적인 모습을 많이 드러내는 편이기 때문에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내향감정형(IF)들은 한마디도 지지 않고 쏘아대며 상대방을 찍어누르는 ESTJ(보안관) 앞에서 쩔쩔 매게 된다.
윤수미의 남편 이준호와 두 아이인 창훈이와 지연이가 모두 내향감정형(IF)이니 결과는 보나마나하다.
IF들은 자기 속을 잘 표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신경 쓰느라 말도 조심해서 한다. ··· IF가 가지는 최대의 약점은 ‘감정을 속으로 쌓아두는 것’이다(IF병이라고 할 만하다). 즐거운 감정만 쌓인다면 상관없겠지만 IF는 화도 속으로 쌓아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화병(속이 상하는 병)에 가장 잘 걸리며, 참고 참았던 화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때는 제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성격과 심리학>, 112~113쪽)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내향감정형(IF)인 창훈이가 가정의 지배자이자 무서운 어머니에게 혼날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과학고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정말 심각하게 다뤘어야 했다. 창훈이가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먼저 생각했다면….
부모 중의 하나가 건강하지 못한 외향사고형(ET)이고 나머지 모든 구성원들이 내향감정형(IF)인 가족의 경우에는 대부분 ET가 IF들 위에 군림하게 되며, 이런 가족들 간의 성격차이만으로도 심각한 심리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창훈이의 아빠 이준호도 공범자다.
이준호는 ‘엄마에게 말해서 과학고를 그만둘 수 있게 해주겠다’고 창훈에게 말했다. 아마도 그 말을 들은 창훈이는 평소 어머니에게 꼼짝도 못하는 아버지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한편으로는 의심하면서도, 워낙 절박한 처지에 몰려있었기에 아버지의 말에 마지막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아버지는 자신의 외도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게 되고 집을 나가게 된다. 가출을 하는 아버지에게 창훈이는 애절한 목소리로 ‘과학고 문제’는 어떻게 하냐고 호소했으나, 아버지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답변을 피한다.
창훈이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고 생각하며 크게 절망했을 것이다. 어머니한테 꼼짝 못하고 끌려 다니는 아버지에게 무엇을 더 기대할 것인가? 마지막 실낱같은 가능성마저 사라지자 창훈이는 자살을 결심한다.
부모 사이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방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이들에게 여러모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윤수미의 가족은 잘 보여주고 있다. 가족들을 일방적으로 찍어 누르는 것도 나쁘고 그런 횡포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도 나쁘다. 역시 아이들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민주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좋다(안타깝게도 그런 가정은 드물지만).
요즘 한국의 교육현실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교육문제는 한국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루 종일 입시공부에만 매달려 일류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대학에서는 내내 취업공부에 파묻혀 살다가 엘리트가 되어 한국사회를 지도하게 되는 그때. 한국의 미래는 희망적일까 아니면 절망적일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나라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교육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긍적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또한 잘못된 교육 속에서 신음하며 파괴되어가는 가족의 실상을 그려낸 점도 평가받을 만하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