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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블로그] 다큐멘터리의 저공비행

등록 2007-09-03 15:46수정 2007-09-03 17:33

MBC 스페셜 '카리브, 매혹의 리듬기행' 쿠바 편
MBC 스페셜 '카리브, 매혹의 리듬기행' 쿠바 편
“휴가 때 어디 다녀왔어요?”
“뭐, 거의 일주일 내내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집에만….”
“저런, 딱하기도 해라. 하기사 비오는데 여행 가면 그게 더 고생이죠.”
“그러게 말예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난 휴가 때 근사한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바다 건너 저 멀리 꿈과 낭만이 넘치다 못해 쓰나미로 밀려드는 카리브해로. ‘캐리비안 베이’ 수영장 정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휴가의 시작은 쿠바에서, 휴가의 마지막은 멕시코에서 보냈다. 비행기를 타진 않았다. 비행기 티켓 대신 손에 쥔 건 텔레비전 리모컨이었다. MBC가 8월 5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방송한 여름특집 ‘카리브, 매혹의 리듬기행’은 올 여름휴가를 여느 때보다 더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쿠바의 민초들이 넘실대는 룸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던 아바나 뒷골목(1편 정열의 몸짓, 쿠바)에선 나도 그들과 어울려 춤을 췄고, 멕시코의 소규모악단 마리아치들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지던 멕시코시티 가리발디 광장(2편 멕시코, 사랑과 낭만의 마리아치)에선 나도 그들과 함께 노래를 흥얼거렸다. 하나 아쉬웠던 건 카리브해 음악강국의 또 다른 한 축인 자메이카 코스가 빠졌다는 점. 밥 말리의 레게 리듬이 곁들여졌다면 더없이 완벽한 여행이었을 텐데….

MBC 스페셜 '카리브, 매혹의 리듬기행' 쿠바 편
MBC 스페셜 '카리브, 매혹의 리듬기행' 쿠바 편

언제부턴가 지상파 방송 다큐멘터리를 즐겨보기 시작했다. 주말 밤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나 을 챙겨보는 게 습관이 됐다. 지난해 이맘때 즈음이던가? ‘집에서 집을 찾는다’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족의 편안한 휴식처이자 추억을 쌓아가는 공간이어야 할 집이 언젠가부터 삶의 목표이자 굴레가 돼버린 실태를 담담하면서도 깊이있게 풀어나간 이 다큐멘터리는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너무 가까워서 존재감조차 잊고 있던 집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이처럼 심오한 생각꺼리를 끌어냈다는 게 놀라웠다.

사실 다큐멘터리 하면 으레 드는 선입견이 있었다. 동물의 세계를 담은 자연물이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다룬 역사물을 먼저 떠올렸다.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그래서 우리네 삶과 직접적으론 관계가 없다고 느끼는 다큐멘터리. 진기한 볼거리나 거대담론을 던져주는 이런 류의 ‘고공비행’ 다큐멘터리는 어딘지 공부와도 같은 고리타분한 느낌을 줬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일상생활에서 피부와 맞닿은 소재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부쩍 늘었다. 가족, 집, 행복, 웃음, 눈물, 실연, 일부일처, 금연, 자전거, 혈액형, 혼자 밥먹는 사람들…. 어찌 보면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어서 ‘저런 게 어떻게 다큐멘터리 소재가 될 수 있을까?’라고 여길 정도다. 무심히 지나쳐온 것들로부터 생각할 거리와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우선 재미있다. 또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데 훌륭한 활력소가 된다. 갑남을녀 사이사이를 저공비행하는 다큐멘터리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MBC 스페셜 '카리브, 매혹의 리듬기행' 멕시코 편
MBC 스페셜 '카리브, 매혹의 리듬기행' 멕시코 편

‘카리브, 매혹의 리듬기행’은 고공비행을 하면서도 저공비행을 해낸 다큐멘터리다. 평소 가보기 힘든 쿠바와 멕시코의 음악과 삶을 시청자들이 머리가 아닌 피부와 가슴으로 오롯이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광과 음악을 즐기고 끝난 게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 음악이란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음악은 제 구실을 하고 있는지 곱씹어보게끔 한다. 문득 국내 제작 다큐멘터리의 진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 아래 블로그에서 관련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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