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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드렁큰타이거 “자서전을 써서 랩으로 풀어냈다”

등록 2007-09-07 10:57

척수염으로 투병중인 힙합가수 드렁큰 타이거(본명 서정권)가 2년 만에 7집 ‘스카이 이즈 더 리미트(Sky Is The Limit)‘를 발표했다.(연합)
척수염으로 투병중인 힙합가수 드렁큰 타이거(본명 서정권)가 2년 만에 7집 ‘스카이 이즈 더 리미트(Sky Is The Limit)‘를 발표했다.(연합)
척수염 투병 딛고 속내 풀어낸 7집 발매

도인(道人)이 아니다. 신비롭고자 '돌+아이'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힙합의 선구자, 대부? 스스로 더더욱 아니다. 음악이 사탕처럼 달지도 않다. 오히려 최다 방송사 심의 부적격자. 그러나 드렁큰타이거(본명 서정권ㆍ33)의 입에서 '펑' 터지는 래핑은 뇌 속에 '퍽', 가슴에 '팍' 박힌다.

드렁큰 타이거가 7집 '스카이 이즈 더 리미트(Sky Is The Limit)'를 2년 만에 발표했다. 돌이키면 B급 영화처럼 불안하고 침울한 시간이었다. 인생을 뒤흔든 일들이 넘실댔다. 애정이 각별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후천적으로 찾아온 희소병인 척수염을 앓았다. 분리되려는 육체와 정신을 다잡으며 음반 작업을 했다.

사실 5집 때부터 병의 그림자가 낮게 드리웠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허리가 뻐근해지고 다리를 절룩거렸다. 주위에선 꾀병이라고 했다. 방송 스케줄에 쫓겨 퀵서비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도 그대로 무대에 오를 정도로 병원과는 담을 쌓은 사이였다. 처음엔 디스크 판정을 받아 경락 마사지를 받았다. 어느날 다리에 느낌이 오지 않았다. 1년 넘게 병을 키웠다. 결국 중병이 됐다.

인터뷰를 하는 날도 드렁큰타이거는 지팡이를 짚었다.

"척수 신경 다발에 염증이 생긴 거예요. 하루 12알씩 약을 평생 먹어야 하죠. 다리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져요. 뇌의 신호를 몸이 인지 못하는 건데 다 큰 놈이 자꾸 넘어지면 얼마나 웃기겠어요."

투병하며 나온 7집은 세상을 향해 풀어내는 자서전이다. CD에 최대한 수록할 수 있는 최대치 74분에 근접하는 총 20트랙, 68분을 눌러 담았다. 자신의 얘기를 죽 풀어 가사와 라임(Rhyme:운율)에 입혔다. 그로 인해 대중의 감상용 코드, 공연 코드에 맞춘 버스(Verse:절)와 훅(후렴:Hook)이 반복되는 힙합의 전형적인 공식을 탈피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펄프 픽션'처럼 형식의 파괴다. 대중적이지 않으니 기획사엔 미안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만족스러운 음반이다.

유독 영화ㆍ희곡ㆍ명곡에 대한 오마주(Hommage)가 넘쳐나는 7집의 랩 가사를 곱씹으면 드렁큰타이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사실 그가 혁명, 반사회적인 이미지로 부각된 것도 오해다. 6집 '1945 해방'에 담긴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도 사회적, 민족적 메시지가 담긴 건 아니다. 은유였고 스스로에 대한 해방이었다. 외로웠을 때이니 마음껏 나를 향해 욕해 달라고 부르짖은 것이다.


7집 수록곡 중 '돌연변이' '태어나 다시 태어나도' '다이 레전드(Die Legend)' '산수(山水)' 등은 생(生)과 사(死)를 읊조린다. '부활 큰 타이거'는 약물 부작용 등을 이겨내고 힙합에 정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제 어둡고 몽롱한 상태가 그대로 시니컬하게 반영됐나봐요. 한때 몸무게가 30㎏나 불어 퉁퉁 부었던 몸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병원서 MRI 촬영을 다시 하자 염증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거예요. 정말 힘들었죠."

'매일밤 01'과 '매일밤 02'는 힙합 불모지에서 그가 밟아온 길을 노래한다. '매일밤 01'은 고교 시절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 발매일, CD가게 앞에서 '두근반 세근반' 기다리던 설렘을 담았다. 이 곡은 도입부터 전설적인 래퍼 슬릭 릭(Slick Rick)의 '칠드런스 스토리(Children's Story)'에 대한 오마주로 시작한다. 랩 가사에는 그 시절 온몸의 세포를 떨게 한 뮤지션(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파사이드, NWA 등)의 곡 제목이 등장한다. 서태지의 '컴 백 홈(Come Back Home)'도 눈에 띈다. 미국에 있던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된 서태지 덕택에 한국에서 힙합의 가능성을 발견, '컴 백 홈'했기 때문이다.

연결된 스토리인 '매일밤 02'는 1997년 타이거 JK 음반으로 망한 후, 음악에 굶주렸던 자신이 이태원과 홍대앞 클럽에서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하며 힙합 음악을 찾아다닌 시간들을 쏟아냈다.

거장 영화의 오마주인 곡들은 노래에 상상력이 꽉 찼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역할을 바꾸고 시간과 장소를 옮길 의무가 생긴다.

'할리후드(Hollyhood)'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대한 리스펙트(Respect)다. 노래 속에서 그는 갱스터와 맞선다. 내용은 '디스(Diss:힙합 문화에서 상대 뮤지션을 노래로 공격하는 것)' 문화에 대한 위험을 경고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착안한 '돌연변이'는 SF영화 소재로도 쓰일 법하다. 그는 "나는 누군가 던진 쓰레기에 돌연변이가 돼 사람들의 귀 고막에 살고, 그들이 내 음악을 좋아하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게 된다는 스토리"라며 재미난 풀이를 곁들였다.

"힙합이 영화라면 전 그 속의 주인공이에요. 시나리오를 써서 랩으로 푸는 거죠. 저만의 랭귀지(Language)가 있어요. 음악을 통해 갱스터가 되는 상상을 하고, 여러 나라로 순간 이동을 하죠."

그는 스스로를 애, 철부지로 표현했다.

"순진하진 않지만 제겐 아직 순수가 있어요. 눈먼 믿음(Bilind Faith)이죠. 늘 삶은 수평이 아니었어요. 때론 독해지고자 독사가 되려 하면 천사가 방향을 틀어줬죠. 그래서 루게릭 병을 앓고 있는 박승일 선수를 위한 곡 '행복의 조건(희망승일)'을 노래했고 에이즈 퇴치 캠페인에도 참여할 수 있었어요. 결코 착해서가 아니라 그런 기회를 천사가 가져다 준 거죠."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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