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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내시가 권세 탐하면 고자와 다를 바 없다”

등록 2007-09-12 12:02수정 2007-09-12 14:59

지난 22일 오후 목동 SBS사옥에서 열린 SBS 새 월화드라마 ‘왕과나‘의 제작발표회에서 탤런트 오만석(왼쪽부터), 전광렬, 안재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
지난 22일 오후 목동 SBS사옥에서 열린 SBS 새 월화드라마 ‘왕과나‘의 제작발표회에서 탤런트 오만석(왼쪽부터), 전광렬, 안재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
‘왕과 나’가 안내하는 내시 세계 호기심 자극
한마디로 신선하다. 왕이나 영웅, 양반의 이야기에서 한걸음 벗어나 내시를 전면에 내세운 SBS TV '왕과 나'의 이야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흥미를 끌고 있다.

앳된 소년들을 모아놓고 '양물' 검사를 하고 고환을 잘라내 내시로 양성하는 과정이 이채롭다. 6회(11일 방송)까지 방송된 현재 세조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조선 정국을 내시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 역시 그러하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대사들은 귀를 솔깃하게 자극한다.

'왕과 나'가 안내하는 내시의 세계를 흥미로운 대사로 살펴보자.

◇"사람을 죽이려고 그러느냐. 사흘간 물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줌보가 터져버려"

내시는 권력자였다. 권력의 옆에서 굽신대기만 했던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신분이었다. 특히 극중 전광렬이 연기하는 조치겸과 같은 내시부 수장에 대해서는 "정승판서가 부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그 때문에 가난한 서민에게 내시는 신분 상승, 가난 탈출의 매력적인 통로였다. 내시를 양성하는 내자원이 전국에서 활발히 가동됐는데 아무나 내자원에 입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양물' 검사에서 통과해야 하는 것. 통과를 하면 도자소에서 고환을 잘라내는 극도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린 소년들은 혼절하기 일쑤인데 이후에도 사흘간은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버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줌보가 터져버린다.

◇"역발상 기개세(逆發想氣蓋世) 장수의 상이나 사내 구실을 못할 것이고, 현모양처와 자손 대대로 존경을 받지만 한점 혈육을 남기지 못할 것이며, 만고의 충신으로 존경을 받겠지만 조정에 출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웬만한 양반도 굽어볼 수 있는 권력자이긴 했지만 내시는 '남자 구실'을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과 함께 신분 상승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드라마는 주인공 김처선에 대해 '삼능삼무(三能三無)'의 팔자를 타고났기에 조선 최고의 내시가 될 운명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손은 남기지 못하지만 주상전하를 최측근에서 보필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한 것.

같은 맥락에서 "내시로 죽어도 고자가 될 수는 없다"는 울부짖음이 등장한다. '남자 구실'은 하지 못하지만 내시도 엄연히 혼례를 하고 양자를 들여 대를 이어가고 있는데 예종이 이를 금하려고 하자 내시부가 거세게 들고 일어났을 때 등장한 대사다. 내시는 고환을 잘라냈을지언정 자신들을 일반 '고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 아무리 역성혁명으로 왕조가 바뀌어도 우리 내시들 잘린 양물이 다시 자라나진 않음을 명심하 라"

내시는 왕에 대한 충성을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 복잡한 정국, 수차례의 반정 속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조정대신들과 마찬가지로 종종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드라마 초반 조치겸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세조를 치려는 움직임에서 의(義)를 놓고 고민했다. 이때 조치겸의 양아버지인 노내시는 "누가 왕이 되든 내시의 신분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의에 앞서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라는 충고.

반면 조치겸을 키운 내자원의 쇠기노파는 조치겸의 선택에 "내시가 권세를 탐하면 쭉정이 고자와 다를 바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세상에 모진 것이 처첩간의 투기이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양물 달린 사내의 투기요, 그보다 더 지독한 것이 양물 없는 고자의 투기라더니…"

비록 양물을 잘랐지만 내시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엄연한 남자. '왕과 나'는 이를 극대화해 주인공 처선이 훗날 폐비윤씨가 되는 소화를 마음에 품고 내시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설정했다. 양반 댁 처자 소화와 맺어질 수 없을지언정 내시가 돼 궁에서 늘 보고 살겠다는 슬픈 사랑이다.

이와 함께 조치겸은 죽은 친구의 부인을 가슴에 품고 늘 곁을 돌보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치겸의 부인은 서슬퍼렇게 질투를 하는데, 조치겸은 친구의 부인을 비록 자신이 취할 수는 없어도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일은 없도록 조치를 취한다. 역시 질투심의 발현이다.

◇"치겸이의 어릴 적 별명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이무기라고 들었습니다) 성을 따서 '조무기'라고 했지. 비록 양물을 잘라 승천할 수는 없지만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이뤄내는 성품일세"

조치겸은 예종으로 인해 삭탈관직될 뻔했다가 극적으로 복권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예종이 조치겸 무리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묘사해 화제를 모았다. 이렇듯 조치겸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버리는데 내시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양반이나 왕족 입장에서는 '일개 내시'일 뿐이지만 내시부 수장 조치겸이 받는 대접은 무척 융숭하다. 11일 방송에서는 꽃미남 내시들과 소환들이 대청의자에 앉은 조치겸을 단장해주는 장면이 방송됐다. 손발을 닦고 손톱과 발톱을 다듬고 동백기름을 발라 참빗으로 머리를 빗겨주는 장면은 왕 부럽지 않았다. 이러한 대접을 받는 자리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켜낼 수밖에.

◇"내시의 덕목 중 으뜸은 인내심이다. 배가 고파도 참고, 마려워도 참고, 가려워도 참고, 말하고 싶어도 참고, 화가 나도 참고, 웃음도 참고, 계집 생각도 참고, 참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한다"

인간 본능의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선택한 내시의 길이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시는 신분의 한계를 인정하고 정해진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것. 11일 방송에서 최 참봉이 내시를 꿈꾸는 소년들에게 소학을 가르치며 인내를 강조했다.

최 참봉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 번만 새기면 너희들도 판내시부사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참는 과정은 단순히 욕망을 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온갖 무시무시한 형벌도 참아내야 한다. 권력이 있지만 더 큰 권력 앞에서는 바람 앞의 호롱불 신세가 될 수 있는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대비다.

이와 함께 이날 방송에서는 내시를 뽑는 혹독한 소환시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소환시험을 앞두고 청탁이 횡행했다는 설정 역시 눈길을 끌었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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