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왕사신기’
며칠 전에 이메일로 날아온 <태왕사신기> 관련 기사를 읽고 이 글을 쓴다. (관련기사 : 아시아 정벌할 대작, 2%가 부족해)
나는 아직 태왕사신기라는 드라마를 본 적은 없으나, 기사를 읽어보니 고구려 광개토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인 듯하다. 그런데 기사를 죽 읽다가 이건 좀 사기성이 농후한 역사드라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이나 드라마를 보지 못해 기사에만 의존해 말을 하자니 좀 그렇지만, 우선 광개토대왕 이야기에 왜 환웅이 등장하는지부터 의심이 간다. 고구려는 처음부터 고구려일 뿐, 고조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자료도 없는데, 왜 자꾸 고구려를 고조선(환웅, 단군)과 연결시키려는지 모르겠다.
올해 초 LA에 머물 때 마침 한국 TV에서 <주몽>을 하길래 대충 보았는데, 거기서도 고구려 건국의 명분을 고조선의 권토중래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러나 역시 고구려를 세운 주몽 및 그 세력이 고조선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여겼다는 역사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늘날 후세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역사와 역사드라마는 이게 가장 근본적인 차이다.
차라리 그냥 솔직히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을 뿐 이 드라마는 픽션"이라고 고백하고 방영한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고 신나게 보겠다. 그런데 <주몽>도 그렇고 <태왕사신기>도 그렇고 역사적 배경을 사실에 가깝게 그리겠다는 선전을 하고 방영한다는 게 문제다. 그러면 그럴수록 역사 전문가의 눈에는 오히려 드라마의 가치가 떨어지고 재미도 반감된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자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오버랩 되면서, 드라마의 허술함이 너무 많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한국을 휩쓰는 이유는 5세기 무렵 고구려가 엄청난 '제국'이었다는 한국인들의 믿음이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와 결합하여 민족주의적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상업적 효과까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말이 나온 김에, 고구려의 전성기를 구가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 당시 고구려의 국력을 전체 동아시아의 틀 속에서 한 번 냉정하게 살펴보자. 먼저 동아시아 지도를 펼치고 이야기를 해보자. 혹시 고등학교 역사부도나 지리부도 같은 게 있다면 그걸 펴도 좋겠다. 지도를 폈으면 이제 한반도와 만주와 중국대륙을 비교해 눈으로 한 번 죽 훑어보자. 이런 몸풀기를 했다면 이제 본론에 들어가자. 중국대륙의 경우에 중원(황하 중류 유역)에서 한 번 흥기하면 황하 유역은 물론이고 대개 양자강 하류까지는 그냥 쓸어버리는 게 중국 역사의 큰 패턴이었다. 이런 현상은 이미 아주 고대의 주나라 무왕 때부터 시작되어, 근대 이전까지 계속 큰 '흐름'으로 이어졌다. 사실은 이런 추세야말로 황하와 양자강이 하나의 '중국' 문명권으로 묶이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다. 나머지 지역은 다 '중국' 문명이 주변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위 '중국'에 편입된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예외적인 경우라면, 남북조 시대 약 200년과 금-남송 시절 약 100년 정도뿐이다. 말 그대로 ‘예외적인’ 경우지, 절대로 기본 흐름은 아니다. 또한 중국역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 북쪽(중원 포함)에서 흥기한 나라가 남쪽을 쓸어버리는 패턴을 보여준다. 중국 땅에서 명멸하였던 통일왕조는 주(周), 진(秦), 한(漢), 위(魏), 서진(西晉), 수(隨), 당(唐), 북송(北宋), 원(元), 명(明), 청(淸)인데, 이 중에서 명(明)을 제외하고는 모두 북쪽에서 건국하여 중국을 통일한 경우다. 이런 배경적 지식을 가지고 이제 고구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전성기인 5세기 고구려의 실체를 비교사적 차원에서 보자는 거다. 이때 초등학생이라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도 실제로 초등학교 때 그랬다.)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때 왜 한반도 끝까지 쓸어버리지 못했을까? 당신도 아마 이런 질문을 나름대로 던진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이런 질문 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문제에 어떤 답을 해 보았는가? 이 문제는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고구려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 만주를 평정하고 전성기를 구가한 건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그 국력이 한반도 서남부(호남)를 쓸어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현실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지도를 보자. 중국대륙에 비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는 지형적 장애물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고구려는 반세기가 넘도록 공세를 펴고도 그 조그만 곡창지대를 손에 넣지 못했다. 손에 넣기는커녕 백제의 왕실조차 완전히 쓸어버리지 못했다. 그놈의 소백산맥을 넘지 못해 영남지역으로는 갈 수 없었다고 치자. 그럼 도대체 무슨 장애물이 있다고 호남으로는 못 들어갔나? 더욱이 호남은 그나마 곡창지대로서 고구려가 군침을 흘리고도 남음이 있을 땅인데 말이다. 동아시아 전체 지도에서 굳이 그려넣지 않아도 좋을 정도의 그까짓 금강을 건널 수 없었단 말인가? 백제가 그렇게 강했나? 물론 백제는 강했다. 그러나 그건 고구려의 남하를 막을 만큼만 강했다고 해야 올바르다. 바꾸어 말하면, 당시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장악할 만큼의 전투력을 지닌 군대를 동원할 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건 무슨 거창한 역사적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도, 상식만 있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 쉬운 상식선의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때 신라와 가야를 당분간 속국으로 삼을 정도만큼의 힘이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신라와 가야를 완전히 병합할 정도의 힘은 안 되었다는 거다. 가야의 경제적 풍요에 군침을 흘릴 만도 했건만, 신라의 전략적 중요성에 끌려 차라리 병합을 해버릴 만도 했건만, 고구려는 그렇게 굳이 병합을 하는 것보다는 그 왕들을 그대로 두어 속국으로 유지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한 그게 바로 당시 고구려 국력의 한계였던 것이다. 이제 다시 중국지도를 보자.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왜 고구려는 그 조그만 한반도 남부를 쓸어버리지 못했을까? ^^ 한편 이와 관련하여 재야사학자들이 즐겨 쓰는 '호태제' 내지는 '영락제'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 보겠다. 이런 호칭을 '지어내어' 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고구려는 '제국'이었으며 중국의 제국에 비해 손색이 없는 강국이었음을 웅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역사 왜곡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 고구려인들조차 자기 왕을 황제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야사학자들은 각종 문헌자료들이 다 왜곡된 것이라고 웅변한다. 그것도 사실은 아주 웃기는 얘기지만, 오늘은 일단 그렇다고 쳐 주자. 그리고 고구려인이 직접 남긴 기록만 가지고 따져보자. 바로 광개토왕릉비(호태왕비)를 보자는 거다. 호태왕비문에도 '광개토대제' 또는 '호태제'라는, 즉 황제라는 호칭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나만 눈이 나쁘기 때문인가? 그 비문에는 항상 무슨무슨 '왕'이라고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흔히 호태왕이라고도 부르는 거다. 그런데 재야사학자들은 왜 툭하면 호태제니 광개토대제니 하는 말을 지어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아들 장수왕이 부친의 공적을 한껏 드높이려 쓴 비문이라면, 솔직히 말해 과장이 좀 있으면 있었지 축소는 없다고 봐야 정상적인 생각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비문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보는 게 지극히 상식적이며 논리적이다. 심지어 백제의 동성왕을 끝까지 '동성제'라고 우기는데 이르러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황제라는 호칭은 국제적 의미를 갖는 표현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내가 아무리 나는 황제라고 외쳐도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건 황제가 아니다. 따라서 국내에서 아무리 '폐하'라고 불러도, 국제무대에서 통하지 않으면 그는 왕일뿐이지 황제는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독자 연호 한 번 썼다고 해서 그것이 곧 황제임을 증명하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고려 초기 광종의 예가 아주 대표적이지 않은가? 몽골의 지배에 들어가기 전까지 줄곧 폐하라고 불렸던 고려의 왕들이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취급당했는지 정녕 모르고 이렇게들 우길까? 독자 연호를 쓴 것이 정녕 자주국임을 증명해 주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는 광개토대왕 때의 고구려의 위상이 한국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경우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꾸 문헌기록의 말살이니 그런 말로 호도할 일이 아닌 게다. 후손이 잘 되면 조상이 덕 본다는 말이 있다. 18세기 볼테르 때까지만 해도 동양(중국)문명에 사족을 못 쓰던 유럽 지식인들이 19세기에 들어 마르크스의 사회발전론 같은 허접한 이론으로 유럽을 절대시하고 동양을 싸잡아 매도한 것은 좋은 예다. 후손이 잘 되어 조상들의 역사까지 뒤바꾸는 바람에 조상들이 덕을 본 아주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는 고대에는 우리가 이렇게 강했다고 사실확인이 안 되는 얘기를 자꾸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이렇게 강해져서 고대의 역사마저 주무를 정도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고대에는 웅장했는데 갈수록 약해진 역사라면, 그건 패배로 점철된 후퇴의 역사이며, 그런 사관은 패배주의사관에 다름 아니다. 현대 그리스 지식인들이 빠지는 블랙홀이 바로 그거다. “My Big Fat Greek Wedding"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리스인들의 뿌리깊은 심리를 잘 알 수 있다. 우리 역사는 계속 발전하고 국제무대에서 국력은 계속 커간다고 인식하는 게 아마도 역사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붙임. 아무튼 그래도 맨 위에 링크한 기사에 실린 사진은 멋은 있습디다. 배경화면으로 삼았더니 끝내주는군요. 다들 해 보세요. 와이드 모니터면 더욱 끝내줍니다. 다만 사진이 담고 있는 장면이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전투 장면치고는 다들 너무 한 쪽으로만 내달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그런 기마전은 영화에서나 나오지, 실제로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역사가들의 생각이죠.) 아니면 혹시 어느 일단의 기병대가 어디로 우르르 몰려가다가 몇몇이 그만 돌에 걸려 넘어지는 장면인가요? ^^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차라리 그냥 솔직히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을 뿐 이 드라마는 픽션"이라고 고백하고 방영한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고 신나게 보겠다. 그런데 <주몽>도 그렇고 <태왕사신기>도 그렇고 역사적 배경을 사실에 가깝게 그리겠다는 선전을 하고 방영한다는 게 문제다. 그러면 그럴수록 역사 전문가의 눈에는 오히려 드라마의 가치가 떨어지고 재미도 반감된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자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오버랩 되면서, 드라마의 허술함이 너무 많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한국을 휩쓰는 이유는 5세기 무렵 고구려가 엄청난 '제국'이었다는 한국인들의 믿음이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와 결합하여 민족주의적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상업적 효과까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말이 나온 김에, 고구려의 전성기를 구가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 당시 고구려의 국력을 전체 동아시아의 틀 속에서 한 번 냉정하게 살펴보자. 먼저 동아시아 지도를 펼치고 이야기를 해보자. 혹시 고등학교 역사부도나 지리부도 같은 게 있다면 그걸 펴도 좋겠다. 지도를 폈으면 이제 한반도와 만주와 중국대륙을 비교해 눈으로 한 번 죽 훑어보자. 이런 몸풀기를 했다면 이제 본론에 들어가자. 중국대륙의 경우에 중원(황하 중류 유역)에서 한 번 흥기하면 황하 유역은 물론이고 대개 양자강 하류까지는 그냥 쓸어버리는 게 중국 역사의 큰 패턴이었다. 이런 현상은 이미 아주 고대의 주나라 무왕 때부터 시작되어, 근대 이전까지 계속 큰 '흐름'으로 이어졌다. 사실은 이런 추세야말로 황하와 양자강이 하나의 '중국' 문명권으로 묶이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다. 나머지 지역은 다 '중국' 문명이 주변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소위 '중국'에 편입된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예외적인 경우라면, 남북조 시대 약 200년과 금-남송 시절 약 100년 정도뿐이다. 말 그대로 ‘예외적인’ 경우지, 절대로 기본 흐름은 아니다. 또한 중국역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 북쪽(중원 포함)에서 흥기한 나라가 남쪽을 쓸어버리는 패턴을 보여준다. 중국 땅에서 명멸하였던 통일왕조는 주(周), 진(秦), 한(漢), 위(魏), 서진(西晉), 수(隨), 당(唐), 북송(北宋), 원(元), 명(明), 청(淸)인데, 이 중에서 명(明)을 제외하고는 모두 북쪽에서 건국하여 중국을 통일한 경우다. 이런 배경적 지식을 가지고 이제 고구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전성기인 5세기 고구려의 실체를 비교사적 차원에서 보자는 거다. 이때 초등학생이라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도 실제로 초등학교 때 그랬다.)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 때 왜 한반도 끝까지 쓸어버리지 못했을까? 당신도 아마 이런 질문을 나름대로 던진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이런 질문 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문제에 어떤 답을 해 보았는가? 이 문제는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고구려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 만주를 평정하고 전성기를 구가한 건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그 국력이 한반도 서남부(호남)를 쓸어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현실을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지도를 보자. 중국대륙에 비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는 지형적 장애물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고구려는 반세기가 넘도록 공세를 펴고도 그 조그만 곡창지대를 손에 넣지 못했다. 손에 넣기는커녕 백제의 왕실조차 완전히 쓸어버리지 못했다. 그놈의 소백산맥을 넘지 못해 영남지역으로는 갈 수 없었다고 치자. 그럼 도대체 무슨 장애물이 있다고 호남으로는 못 들어갔나? 더욱이 호남은 그나마 곡창지대로서 고구려가 군침을 흘리고도 남음이 있을 땅인데 말이다. 동아시아 전체 지도에서 굳이 그려넣지 않아도 좋을 정도의 그까짓 금강을 건널 수 없었단 말인가? 백제가 그렇게 강했나? 물론 백제는 강했다. 그러나 그건 고구려의 남하를 막을 만큼만 강했다고 해야 올바르다. 바꾸어 말하면, 당시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장악할 만큼의 전투력을 지닌 군대를 동원할 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건 무슨 거창한 역사적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도, 상식만 있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 쉬운 상식선의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때 신라와 가야를 당분간 속국으로 삼을 정도만큼의 힘이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신라와 가야를 완전히 병합할 정도의 힘은 안 되었다는 거다. 가야의 경제적 풍요에 군침을 흘릴 만도 했건만, 신라의 전략적 중요성에 끌려 차라리 병합을 해버릴 만도 했건만, 고구려는 그렇게 굳이 병합을 하는 것보다는 그 왕들을 그대로 두어 속국으로 유지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한 그게 바로 당시 고구려 국력의 한계였던 것이다. 이제 다시 중국지도를 보자.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왜 고구려는 그 조그만 한반도 남부를 쓸어버리지 못했을까? ^^ 한편 이와 관련하여 재야사학자들이 즐겨 쓰는 '호태제' 내지는 '영락제'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 보겠다. 이런 호칭을 '지어내어' 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고구려는 '제국'이었으며 중국의 제국에 비해 손색이 없는 강국이었음을 웅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역사 왜곡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 고구려인들조차 자기 왕을 황제라고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야사학자들은 각종 문헌자료들이 다 왜곡된 것이라고 웅변한다. 그것도 사실은 아주 웃기는 얘기지만, 오늘은 일단 그렇다고 쳐 주자. 그리고 고구려인이 직접 남긴 기록만 가지고 따져보자. 바로 광개토왕릉비(호태왕비)를 보자는 거다. 호태왕비문에도 '광개토대제' 또는 '호태제'라는, 즉 황제라는 호칭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나만 눈이 나쁘기 때문인가? 그 비문에는 항상 무슨무슨 '왕'이라고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흔히 호태왕이라고도 부르는 거다. 그런데 재야사학자들은 왜 툭하면 호태제니 광개토대제니 하는 말을 지어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아들 장수왕이 부친의 공적을 한껏 드높이려 쓴 비문이라면, 솔직히 말해 과장이 좀 있으면 있었지 축소는 없다고 봐야 정상적인 생각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비문에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보는 게 지극히 상식적이며 논리적이다. 심지어 백제의 동성왕을 끝까지 '동성제'라고 우기는데 이르러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황제라는 호칭은 국제적 의미를 갖는 표현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내가 아무리 나는 황제라고 외쳐도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건 황제가 아니다. 따라서 국내에서 아무리 '폐하'라고 불러도, 국제무대에서 통하지 않으면 그는 왕일뿐이지 황제는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독자 연호 한 번 썼다고 해서 그것이 곧 황제임을 증명하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고려 초기 광종의 예가 아주 대표적이지 않은가? 몽골의 지배에 들어가기 전까지 줄곧 폐하라고 불렸던 고려의 왕들이 국제무대에서 어떻게 취급당했는지 정녕 모르고 이렇게들 우길까? 독자 연호를 쓴 것이 정녕 자주국임을 증명해 주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는 광개토대왕 때의 고구려의 위상이 한국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경우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꾸 문헌기록의 말살이니 그런 말로 호도할 일이 아닌 게다. 후손이 잘 되면 조상이 덕 본다는 말이 있다. 18세기 볼테르 때까지만 해도 동양(중국)문명에 사족을 못 쓰던 유럽 지식인들이 19세기에 들어 마르크스의 사회발전론 같은 허접한 이론으로 유럽을 절대시하고 동양을 싸잡아 매도한 것은 좋은 예다. 후손이 잘 되어 조상들의 역사까지 뒤바꾸는 바람에 조상들이 덕을 본 아주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는 고대에는 우리가 이렇게 강했다고 사실확인이 안 되는 얘기를 자꾸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이렇게 강해져서 고대의 역사마저 주무를 정도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고대에는 웅장했는데 갈수록 약해진 역사라면, 그건 패배로 점철된 후퇴의 역사이며, 그런 사관은 패배주의사관에 다름 아니다. 현대 그리스 지식인들이 빠지는 블랙홀이 바로 그거다. “My Big Fat Greek Wedding"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리스인들의 뿌리깊은 심리를 잘 알 수 있다. 우리 역사는 계속 발전하고 국제무대에서 국력은 계속 커간다고 인식하는 게 아마도 역사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붙임. 아무튼 그래도 맨 위에 링크한 기사에 실린 사진은 멋은 있습디다. 배경화면으로 삼았더니 끝내주는군요. 다들 해 보세요. 와이드 모니터면 더욱 끝내줍니다. 다만 사진이 담고 있는 장면이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전투 장면치고는 다들 너무 한 쪽으로만 내달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그런 기마전은 영화에서나 나오지, 실제로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역사가들의 생각이죠.) 아니면 혹시 어느 일단의 기병대가 어디로 우르르 몰려가다가 몇몇이 그만 돌에 걸려 넘어지는 장면인가요? ^^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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