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역 김영철 “고요하고 강한 왕 표현”…원경왕후역 최명길 “어머니 모습 강조”
“그것도 정치야. 정치 중에서도 가장 질낮은 정치지.”(김갑수·황희역) “자넨 정치를 좀더 자알 배워야겠어 그리 못하면 다른 이가 아주 호되게 가르치려 들 것이야.”(최종원·하륜역) 14일 한국방송 별관에서 열린 <대왕 세종>(극본 윤선주, 연출 김성근)의 대본연습 현장에서 정치를 논하는 중견 배우들의 설전이 현실의 중견 정치인들 못지않게 뜨겁다.
2008년 대형사극의 맥을 이어갈 80부작 <대왕 세종>은 태종역을 맡은 김영철, 원경왕후 역의 최명길, 세종의 김상경 등 연기력 탄탄한 배우들로 진용을 꾸렸다. 과연 단 한번도 막힘없이 2, 3, 4회를 달려간 이날의 연습현장은 목소리만으로도 조선시대 정치가들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백전노장들의 숨막히는 암투였다. 백성을 알려는 순진한 마음으로 잠행에 나선 충녕대군이 외척의 정치적 암수에 걸려드는 내용이 초반부를 채운다. 이를 “마마께서 그리 배우고자 하는 정치의 다른 얼굴”이라며 가르치는 사부 이수(조성하)와 “세상에는 책 속에서 만났던 덕 있는 백성들은 없지만 그들은 나와 닮았더라”는 군민일치의 깨달음을 얻는 어린 세종(김현우)의 독백이 예사롭지 않다. 제작진은 “사극에서 궁은 항상 모략이나 사랑 싸움의 현장이었지만, <대왕 세종>에서는 조선정치의 심장부로 그려내겠다”고 했다. 전 문화부장관인 김명곤이 조선전복을 꿈꾸는 고려 황손역을 맡아 정치드라마로 복귀식을 치른다.
하필 어진 성군의 시대를 정치드라마의 소재로 빚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인시대>에 이어 본격 정치드라마를 그려낼 것을 다짐하는 김성근 피디는 “세종 시기는 태평성대가 아니라 새 왕조가 세워진 지 불과 20∼30년밖에 되지 않았던 정치적 격변기였다”고 설명했다.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를 썼던 윤선주 작가는 “드라마는 ‘짐이 곧 국가’라는 태종의 국가관이 ‘백성은 나의 스승이 되는 자’라는 세종의 믿음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담는다”고 했다.
드라마 초반 왕권의 주변에는 적들만 첩첩하지만, 중신들의 설전 사이에서 정작 왕의 음성은 부드럽고 고요하다. 중신들이 가고 난 후에도 남아서 대본에 밑줄을 치던 김영철과 최명길은 “1996년 방송됐던 <용의 눈물>과 차별화를 위해서도 고요하고 강한 태종의 모습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용의 눈물>에서는 유동근이 칼날 시퍼런 태종을 연기했다. 김영철은 “고요함 속에 강함을 벼리는” 인물로 태종의 가닥을 잡았다고 했다. <용의 눈물>에 이어 10년 만에 또다시 원경왕후 역을 맡은 최명길은 “큰아들 어진이가 세종대왕 어머니를 연기하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적극 권유해서 역을 맡은 만큼, 10년 전과 달리 어머니로서의 캐릭터를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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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주 작가 “결국 역사극은 진실로 간다”
“결국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진실을 향해 가는 게 아닐까요.”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에 이어 다시 한번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을 드라마의 무대에 올리며 윤선주 작가는 자기 작업의 폭을 이렇게 정한다. 전작들에서 높은 시청률과 역사논란이 항상 동반됐던 그가 생각하는 사극은 “역사와 드라마, 사실과 허구를 짜깁기해야 하는 태생 자체가 모순 덩어리인 장르”다. 퓨전과 판타지를 매개로 한 대형 역사극 사이에서 정치사극의 무게를 어깨에 얹으면서 세종의 기록을 힘껏 검토하되 그 기록의 행간에 진실된 해석을 부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윤 작가가 생각하는 ‘대왕 세종’의 진실은 무엇일까? <황진이> 종영 이후 1년 가까이 세종을 추적해온 그는 세종은 정치적 격랑을 헤치고 천재적 제왕의 면모를 과시한 인물이면서도 아버지와는 달리 백성을 자신의 거울로 삼는 국가관을 지닌 인물이라는 종합평을 내렸다. 군사, 기술 분야에서 전문가 집단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키우는 능력, 아버지 태종의 국가개념을 국가경영론으로 발전시킨 철학, 그 뒷편에는 작가가 보는 세종의 인간적인 욕구와 결핍이 있다. “어릴 때의 충녕대군은 결핍이 결핍된 아이였으리라고 상상합니다. 왕가의 일원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꽉 짜여진 삶, 대군이라서 일체의 욕구, 성장하고 싶다는 꿈마저 거세당한 아이요. 그 현실을 헤치고 리더로서 성장해가는 거지요.”
윤선주 작가는 “욕구가 천재를 낳는다”며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와 제왕의 행적이 결코 떨어진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결과론적인 역사 기록 사이에서 회의하고, 반성하고, 갈등하는 천재 세종의 인간적인 면모를 고루 담겠다는 그의 초반부 대본에는 작가 특유의 옛스러운 말투와 깊이있는 명제들이 빛난다. <대왕 세종>은 1월 방영을 목표로 지난 9일부터 첫 촬영에 들어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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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피디 “보스가 아닌 비전 제시하는 리더 보여줄 것”
30%대의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대조영>의 후속극이라는 점에서 <대왕 세종>이 어떤 드라마로 만들어질지에 대한 기대가 높다. <왕과 나> <태왕사신기> <이산>으로 다양한 사극을 접한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한껏 높아진 터다. <무인시대> <인생이여 고마워요>에 이어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의 연출을 맡은 김성근 피디는 “정통사극과 경량화 된 사극의 중간 톤으로 채널만의 색을 유지하되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출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왕 세종>은 기획 당시부터 <불멸의 이순신>의 연출․작가 등 제작진이 다시 모여 만든다고 알려지면서 화제를 낳았다. 그러나 이성주 피디가 드라마 팀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장록수> <왕과 비> <명성황후> 등의 조연출을 맡으며 풍부한 사극 경험을 쌓은 김 피디가 연출자로 낙점됐다. 그는 “사극과 현대물이 크게 다르다고 보진 않지만 사극은 사극만의 매력이 있다”면서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재밌게 만들겠다”는 말로 젊은 피디로서 대하드라마를 맡게 된 포부를 밝혔다.
“수준 낮은 정쟁이나 암투가 아닌 정치드라마”라는 말로 <대왕 세종>과 다른 사극과의 차별성을 강조한 그는 “세종이란 인물의 천재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내각을 구성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보스가 아니라 리더로서의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보는 세종은 “신하들을 힘으로 강하게 끌어오기보다 신하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릴 줄 알고, 백성을 위해 리더가 해야 할 덕목을 고심했던 왕”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문화의 르네상스’라고 알려진 시대의 성과물들도 에피소드로 녹일 예정이다. 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새 정권이 꾸려지는 내년에 드라마에서 그려질 성군의 모습이 정치지도자의 역할 모델로서도 보여지는 긍정적인 결과가 생겼으면 한다”는 바람도 비췄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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