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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단막극, 쫄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등록 2007-10-21 19:47

안판석 피디·황경신 작가·배우 이선균
안판석 피디·황경신 작가·배우 이선균
개성있는 연출·연기·극작 가능하고
형식과 소재 변주로 ‘다양성’ 확보
“드라마 전체 발전의 주춧돌 역할”
#1. 안판석 피디·황경신 작가·배우 이선균이 말하는 ‘단막극의 참 맛’

단막극이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문화방송이 지난 3월 〈베스트극장〉을 폐지한 데 이어 한국방송도 2004년부터 꾸려왔던 〈에이치디티브이(HDTV) 문학관〉 팀을 최근 해체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드라마시티〉도 맘이 편하지 않다. “프로그램당 광고가 최고 24개 붙을 수 있는데 〈드라마시티〉는 1~2개에 그칠 때가 많다”는 드라마시티팀 이민홍 피디의 말처럼 수익이 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그렇다면 방송사에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단막극은 존재가치가 없는 것일까? 〈연애〉 〈태릉선수촌〉 등 단막극에 출연해 연기 초석을 다진 배우 이선균(오른쪽)과 〈베스트극장〉 오프닝음악을 만든 안판석 피디(왼쪽), 〈한 뼘 드라마〉로 단막극의 새로운 맛을 낸 황경신 작가(가운데)는 “단막극은 배우, 연출, 작가가 마음껏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 단막극의 단맛=단막극을 통해 연기할 기회를 얻었다는 이선균은 “대본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미니시리즈와 달리 인물의 전체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어 배우가 능동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처럼 자기완결성을 가진 유일한 드라마가 단막극이라는 안판석 피디도 “드라마 피디들이 자본 등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기승전결을 곱씹으며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장르”라고 했다.

2004년 〈제주도 푸른 밤〉으로 연기상을 받은 엄태웅과 〈소영이 즈그 엄마〉 이경희 작가, 〈샴푸의 요정〉 황인뢰 피디 등 지금은 유명해진 이들도 모두 단막극을 거쳐 갔다. 단막극은 신인들이 솜씨를 부릴 수 있는 대표적인 등용문이지만 미니시리즈에 집중하던 이들이 한번씩 돌아와 숨을 트고 가는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황경신 작가는 “예전에는 송지나, 주찬옥 같은 스타 작가도 스스로 원해서 단막극을 썼다”며 “이병헌·이승연이 주연한 4부작 옴니버스 드라마 〈러브 스토리〉처럼 기존 작가나 배우, 연출가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는 신선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양성애자를 등장시킨 것도 〈완벽한 룸메이트〉라는 단막극이었고, ‘5분’짜리로 드라마 형식을 파괴한 것도 〈한 뼘 드라마〉였다. 안판석 피디는 “월화, 수목, 주말까지 모든 드라마가 비슷한 현실에서, 단막극이 형식과 소재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측면도 깊이 있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단막극의 쓴맛=황인뢰 피디가 만든 〈샴푸의 요정〉은 새로운 연출을 선보이며 드라마 연출기법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런 단막극이 최근 들어 존재감을 잃어버린 가장 큰 이유를 안판석 피디는 지나치게 자본주의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에서 찾는다. “예전엔 완결성을 먼저 생각했는데 지금은 누가 보나, 파괴력이 있나, 돈이 되느냐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주목하는 한류드라마가 주로 미니시리즈라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안 피디는 “매주 단막극 비평기사를 싣던 언론도 이제는 미니시리즈와 대작드라마에 집중하고 그곳에 출연한 배우들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꼬집었다. 이선균은 “단막극은 신인배우나 한물간 배우만 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배우들의 시선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비가 수백억원까지 치솟는 드라마 시장에서 미니시리즈의 실패는 방송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검증된 소재와 형식, 스타를 출연시켜 안정감을 얻으려는 상황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손해가 적은 단막극은 도전정신이 허용되고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 미니시리즈의 초석을 다질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안 피디는 “단막극에서 시험삼아 내보낸 뒤 보태고 다듬어 미니시리즈의 소재로 사용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드라마가 발전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며 “수익 때문에 방송사가 끌어가지 못한다면 사회적인 차원에서라도 단막극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선균은 “표현하려는 내용에 따라 러닝타임을 조금씩 달리한다면 좀더 다양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며 단막극이 좀더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2. 단막극 ‘드라마시티’ 제작 현장

3분 분량 세시간 촬영…짜임새 높여
“70분짜리 영화 보는 재미 주고파”

단막극 ‘드라마시티’ 제작 현장
단막극 ‘드라마시티’ 제작 현장
“이 못생긴 여편네가!” 지난 14일 경기도 인천에 위치한 한 종합병원에서 중년남성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온다. 11월3일 방영하는 〈드라마시티-못생긴 당신〉(K2 토 밤 11시15분)의 촬영현장(왼쪽 사진)이다. 아내가 너무 못생겨 평생 거들떠도 안 본 남편이 암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며 비로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 이민홍 피디는 “노인문제를 네 편의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다음은 현대판 고려장을 소재로 삼은 이야기”라고 했다.

방송 3사를 통틀어 유일한 단막극이 된 〈드라마시티〉는 미니시리즈에선 다루기 힘든 폭넓은 이야기의 변주로 외로움을 이겨내고 있다. 과거와 미래의 사람이 마주치는 상상력을 발휘한 〈인터널〉이나 처음으로 시도한 족구드라마 〈무공족구외전〉처럼 변별력 있는 소재가 넘쳐난다. 〈…당신〉도 단막극에서 자주 다루었던 노인들의 이야기에 안락사라는 장치를 보태 한 발 나아갔다. 이 피디는 “다양한 장르를 버무려 매주 주말의 명화를 보는 재미를 주고 싶다”고 했다.

〈드라마시티〉는 8명의 신입·기성 피디가 번갈아 한 편씩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촬영한다. 미니시리즈 회당 제작비 70~80%선에 그치는 7천만~8천만원으로 장비나 인력 여건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영화 못잖은 공을 들인다. 이날도 3분 남짓의 세 장면을 네 시간 넘게 끌어가는 등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덕자(오미연)가 오철(박인환)에게 물을 뿌리는 장면에선 ‘원테이크’로 가자는 감독의 즉석 제안에 모두 머리를 맞댄 지 30분 만에 답을 찾아낸다. 이 피디는 “찍고 틀기 바쁜 미니에서는 할 수 없다. 단막극에서는 만족할 때까지 찍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덕분에 이 드라마로 연기 첫발을 내디딘 가수 출신 배우 채영인에겐 자연스레 공부의 시간이 됐다. 〈드라마시티〉는 갈수록 자리를 잃어 가는 중견배우들에게도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당신〉으로 1년 만에 단막극에 출연한 박인환씨는 미니시리즈 속 ‘누군가의 아버지’를 벗고 남자와 남편을 오가는 카멜레온의 연기를 펼친다. 드라마 안팎으로 분위기를 주도한 그는 “정형화된 아버지 역이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마음껏 연기할 자리가 마련되니 연기자로서 기분도 좋다”고 했다.

짜임새 있는 계획으로 열심히 달려온 덕에 〈…당신〉의 촬영은 오후 6시쯤에 끝이 났다. 마지막 방송까지 연일 밤을 새도 시간에 허덕이는 미니시리즈에 비하면 알토란 같은 작업이다. 다음날 찍을 오철과 덕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풍여행은 70분 감동의 정점이라고 한다. “당신을 조금 더 일찍 사랑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오철의 마지막 대사는 단막극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글 남지은 기자, 사진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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