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의 봄·가을은 잔인한 계절이다. 정기 개편으로 프로그램의 생사가 갈린다. 케이블 채널까지 수십 개이니 전쟁은 날로 처절해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 계절을 속편하게 보내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20여 년은 거뜬히 버틴 ‘장수 고전’들이다.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인데다 몇몇은 여전히 시청률로도 동시간대 1~2위를 다투는 절대강자들이다. 이들 노익장 프로그램의 특징은? 누구나 머리 쓰지 않고 웃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거나, 확실한 팬층을 끌고 가거나, 시청률이 아니면 ‘공익성’ 명분이라도 제대로 드러낸다. 5대 장수 프로그램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28년 송해 브랜드 <전국노래자랑> =일요일 낮 12시10분, ‘딩동댕.’ 노래자랑의 시작을 알리는 실로폰 소리는 1980년 11월30일 시작됐다. 시청률 약 15%로 여전히 시간대 확고부동한 1위다.
아무나 못 서는 무대다. 편당 15~17명이 출연하는데 예선에는 많게는 500여 명 넘게 몰린다. 박태호 책임피디는 “전국에서 펼쳐지는 예선을 쫓아다니며 수십번씩 참가하고도 계속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역대 출연자 2만5천여명 가운데 박 책임피디가 기억하는 두 얼굴은 판소리 <춘향전>의 ‘사랑가’를 구성지게 부른 4살짜리 박성열 어린이와 무대 매너가 빼어났던 엿장수 윤팔도씨. 윤씨는 이후 광고도 찍었다. <무조건>의 가수 박상철 등도 이 무대 출신이다.
진행자 송해(81)는 그 자체로 브랜드다. 2년 전에는 음반 <송해 애창가요 모음집 송해 쏭>을 내놨는데 대표곡 ‘나팔꽃 인생’은 이렇게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일요일의 남자 송해, 쏭~.” ‘뽀빠이’ 이상용 등으로 진행자가 바뀌다 1988년 5월부터 중간에 몇달을 빼고는 항상 그가 그 자리를 지켰다. 연주 악단의 김인협 단장은 이 프로그램 시작부터 함께했다. 이들이 녹화 전에 부르는 함께 구령은 “얼씨구 지화자 좋다”인데 그 추임새는 아직도 보통 사람들의 가수 꿈을 자극한다.
27년 아이때 친구 <뽀뽀뽀>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1981년 5월25일 첫방송부터 프로그램 시작을 알린 이 노래를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 듯하다. 초대 이재휘 피디가 당시 4살짜리 딸에게 영감을 얻어 작사·작곡했다. 첫 ‘뽀미언니’ 왕영은을 이어 현재 21대 이하정 아나운서가 진행하고 있다. 뽀식이 이용식, 뽀병이 김병조의 맥은 ‘동그리동’으로 불리는 슈퍼주니어의 신동이 잇는다.
이 프로그램의 뒷배는 시청자가 봐준다. 케이블 어린이 채널도 늘어 시청률이야 0.5%로 최하위권이지만 없애려면 시청자 단체들이 “공영성은 어디로 갔냐”며 들고 일어난다. 1992년 주1회로 줄이려하자 시청자단체들은 텔레비전 끄기 운동을 펼치며 맞섰다.
비빌 언덕이 있다고 그 나물의 그 밥만 할 수는 없다. <뽀뽀뽀>는 올해 초 <뽀뽀뽀 아이 좋아>로 이름을 바꾸고 경제교육과 한자 공부 꼭지를 넣었다. 금융전문가 등에게 감수도 받는다. 1982년 9월부터 방송한
도 로 새 이름을 달았고 주제곡도 요즘 인기가요처럼 바꿨다.
25년 시대의 거울 <추적 60분> =피디가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드러낸 첫 프로그램이다. 1983년 3월5일 엽기적인 보신관광 세태를 그린 ‘한국판 몬도가네’로 시작한 <추적 60분>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원조다.
방송 초기 심층·탐사 보도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청률이 30%까지 오르기도 했다. 시대 분위기에 따라 소재 선택의 흐름은 조금씩 달랐다. 김영삼 정권 때는 정·재계 비리 폭로, 김대중 정권 때는 의문사 등 인권, 노무현 정부 때는 비정규직 소외계층 문제가 주요 주제가 됐다. 그 전에야 언론 통제에서 예외가 아니어서 학생운동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정부가 발표한 대로 내보내거나 대기업 비리가 불방되기도 했다.
한국방송 공영성의 간판이니 없어질 리야 없지만, <추적60분> 제작진은 현재 7~8%에 그치는 시청률을 높이고 제 색깔을 굳혀야하는 두 숙제를 놓고 고민 중이다. 구수환 책임피디는 “속보는 인터넷 못 따라가고, 웬만한 정보는 다 공개되고, 비슷한 프로그램 많은 데다, 고발의 재미와 정보를 모두 줘야하고, 소비자 고발 등은 다른 프로로 특화되고 있고…”라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주제 하나로 한 시간 하지 말고 꼭지를 나누는 방식 등 이리저리 고민하다 결론은 전통대로 밀고 나가는 것으로 내렸다. 보도의 심층성을 살리려고 같은 주제를 3차례 연달아 내보내기도 한다.
방송 연수로 따지자면 <추적 60분>이 1986년부터 8년 동안 공백기를 거쳐 94년 재개됐으니 1990년부터 이어진 문화방송〈피디수첩>이 맞먹는다. <피디수첩>은 최근 시청자 문자 메시지를 소개하는 등 소통과 재미를 강화하면서 삼성 상속 비리 등 여전히 묵직한 주제를 내놓고 있다. 1992년 3월31일 ‘이형호 유괴사건-살해범의 목소리’로 시작한 <그것이 알고싶다>도 에스비에스 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24년 확실한 팬층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50대를 꽉 잡아 오전 10시대 전체 채널 평균시청률인 5~8%는 유지하고 있다. 무기는 코골이, 치질, 공기청정기 등 생활 속 궁금증들이다. 조류독감 등 큰 이슈가 터지면 관련 소재를 다루지만 인기를 끄는 것은 봄이면 겉절이, 봄나물 무치기 등 철마다 비슷하다. 남기석 피디는 “그래도 2년 안에 했던 소재는 피해 간다”고 말했다.
고정 시청자 층이 확실하다. 제작진이 시청자 층을 넓혀보려 20~30대가 관심을 가질만한 ‘우리 아이 영재로 키우는 법’ 등을 소개하자 시청률이 떨어졌다. 남 피디는 “방송 때마다 문의전화를 걸어 목소리가 익숙한 시청자도 있다”며 “한회 제작비 600만~700만원으로 이 정도 시청률을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 방송사들이 연예정보, 생활정보 등으로 프로그램 성격을 바꿔가며 덤벼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는 집안 대청소 등에 집중하며 여전히 생방송으로 진행하며 끄떡 없이 이어간다. 남 피디는 “옆집과 싸워 재판까지 가게 됐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을 묻는 상담 전화들도 일주일에 한건은 걸려온다”고 말했다.
24년 단순함의 힘 <가족오락관> =쇼·오락 진행자 가운데 한 프로그램을 가장 오래 맡은 사람은? <가족오락관>을 1984년 시작부터 진행한 허참이다. 정소녀 등 여자 진행자만 계속 바뀌어 지금은 21대로 이선영 아나운서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상대의 행동을 보고 낱말을 빨리 많이 맞추는 ‘스피드 퀴즈’도 프로그램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녀로 편을 갈라 게임하는 <가족오락관>은 단순함의 정점을 보여준다. 참가자의 물건이나 손 등을 확대해 보여주고 누구 것인지 맞추기 등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초기 3~4년 동안 <가족오락관>은 한국방송에서 시청률이 높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방청객으로 참여한 주부가 웃다가 방청석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세트를 정비하기도 했다. 요즘은 시청률이 7~8%대로 떨어졌어도 그 ‘원초적인 힘’은 여전하다. 박정미 책임피디는 “<무한도전>같은 오락프로그램에서 40~50대들이 재미를 찾기란 어렵다”며 “온 가족이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한국방송,문화방송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