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희열
KBS2FM ‘라디오 천국’으로 디제이 복귀한 유희열
어떤 사람은 특정 공간에 있는 모습이 먼저 그려질 때가 있다. 지난 21일부터 한국방송 2에프엠에서 자신의 곡 이름을 딴 <라디오 천국>(이동우 연출, 밤 12시)을 진행하고 있는 유희열(사진)이 그렇다. 그가 다시 라디오 부스에 앉기까지를 손꼽으니 4년 만이다. 유희열은 그새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유희열은 며칠 여행을 다녀온 자리에 살짝 먼지를 털어낸 후 다시 앉은 것마냥 익숙한 모습이다. 디제이 ‘오빠’에서 ‘아저씨’가 됐지만, 그는 짓궂은 농담을 여전히 툭툭 던지며 한밤의 청취자를 간질인다.
“제가 원래 가볍고 속된지라 말만 뱉으면 하급이죠?(웃음) 사실 긴장했어요. 다른 방송을 들으며 공부도 많이 했고. 특히 옆 동네 (성)시경씨한테 많이 물어봤죠. 요즘엔 어떤 게스트가 잘나가냐, 출연료는 얼마 줘야 하느냐, 오래 비우긴 했나 봐요.”
유희열은 “주파수를 맞추던 예전 라디오는 인터넷 라디오, 보는 라디오 등으로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만큼은 예전과 같다”고 말했다. 잠에 들거나 유흥을 즐길 깊은 밤, 라디오에 기댄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정서가 있다는 것이다. 디제이를 통해 서로 신청곡과 소소한 사연을 주고받으면서, 직접 마주하지는 않아도 간접적으로 경험을 공유한다. 사회가 아무리 변화해도 여전히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며, 생각보다 그 수가 많다는 점을 유희열은 믿는다. 아침 방송을 하라는 권유도 많았지만 심야인 밤 12시를 고집한 이유도 아직은 그들과 더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란다.
예전 <음악도시>를 함께 만들던 작가들도 <라디오 천국>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유희열보다 유희열을 더 잘 아는 제작진은 원고 대신 선곡표만 준비해 둔다. 유희열이 들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에는 그날 선곡을 위한 시디가 한아름 담겨 있다. 음악적 편식이 없기 때문에 재즈, 팝뿐 아니라 트로트, 댄스뮤직 등도 충분히 틀 수 있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진 게 디제이에게 이런 장르나 주제의 선곡을 해오란 요구가 없어요. 10년 전만 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말이죠. 사실 노래 한번 틀어주는 게 요즘 같은 세상에서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유희열이라는 필터를 거쳐 소개된 노래를 듣고 100명 중 1명만이라도 메모지에 뮤지션 이름과 노래 제목을 적어둔다면, 제 말장난에 낄낄거리다가도 단 한 곡 좋은 노래를 발견한다면, 제 역할은 다한 것이라 생각해요.”
구혜진 <씨네21> 기자 999@cine21.com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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