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운경 작가
“난 악인이 웃겨, 뭘 몰라 악한 거 아냐?”
<서울뚝배기>가 18년만에 돌아온다. 일일드라마 <돌아온 뚝배기>가 한국방송 2텔레비전에서 6월 2일부터 방송된다. <서울뚝배기>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 <형> <옥이이모> <파랑새는 있다> 등 ‘한국 서민의 인류학 보고서’란 평을 듣는 작품을 써온 김운경(54) 작가가 <황금 사과> 이후 3년 만에 내놓는 드라마다.
3대째 이어 온 설렁탕집을 배경으로 그 가족과 종업원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서울뚝배기>는 해학 넘치는 조연과 궁상맞으면서도 웃기고 따뜻한 에피소드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설렁탕집에 얹혀 살면서 농땡이 치기 일쑤였던 종업원 동팔(주현)은 “지가요. ~걸랑요”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다방 마담을 꼬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운경 작가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서울 옥수동 달동네에서 아침마다 화장실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사람들이었다. 삼류 춤선생, 차력사, 밤무대 가수, 버짐 잔뜩 핀 아이들…, 봉준호 감독은 “김운경의 드라마는 어떤 세계를 속속들이 보여주며 그들만의 언어와 살갗에 와닿는 생생한 공기를 포착한다”며 “무엇보다 그의 드라마는 일단 너무 웃기다”라고 쓴 적이 있다.
<돌아온 뚝배기>를 준비하며 김 작가는 어느 순대국집 주인이 가게에 붙여놓은 글을 옮겨 적었다고 한다. “나는 세상을 내 손으로 맛있게 하기 위해 나온 사람. 힘들고 서러워 눈물이 앞을 가려도 신문지 위에 마늘을 깔아놓고 마늘이라도 까면서 울어야 한다.”
뚝배기와 함께 돌아온 김작가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번잡하고, 말도 전달이 잘 안 돼서” 직접 만나 인터뷰하거나 사진 찍기를 무척 싫어한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쇼윈도 글라스엔 눈물이 흘렀다~.” 그의 통화대기음은 <서울 야곡>이다.
다시 한번 보니 아쉬운 거 많더라
21세기 뚝배기 심지 갖고 할거다
-왜 다시 <서울뚝배기>인가? =방송사에서 제의했는데 고민은 됐다. 창의력 부재로 비춰질까봐. <서울뚝배기>를 다시 봤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더라. 당시랑 지금이랑 많이 다르고, 대사도 고루하고. 젊은 주인공들이 결혼하는 결말도 뻔하고….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어렵지는 않을테니 그 안에서 21세기 서울뚝배기를 한번 해보기로 한 거다. 요즘 드라마 주인공들은 다 대학 나오고 변호사, 의사 그러잖나. 종업원 만봉이는 백령도에서 고등학교 나와서 성실하게 사는 인물인데 그런 인간도 승리해야지. -예전 <서울뚝배기>는 주연 최수종, 도지원보다 조연인 주현, 김애경이 더 기억 난다. =젊은 사람들이 만날 주인공이잖나. 그런 선입견을 좀 깨려고 했는데…. 원래 <서울뚝배기>는 음식 문화와 장인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거였다. 사실 사람들이 안동팔(주현)만 나오면 좋아하니까 (내가) 인기에 영합해서(웃음) 주현씨가 주인공이 돼버리는 특이한 상황이 된 거다. 이번엔 좀 더 심지를 가져가야지…. -취재를 항상 강조하던데…. “노숙자에 대해 쓰려면 2주 동안 서울역에서 굴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고 <서울의 달> 쓸 때도 ‘대머리 박’이라는 춤선생에게 춤을 배웠다고 들었다. =취재를 열심히 했다. <파랑새는 있다>에 차력사가 나오는데 난 학교 다닐 때부터 약장사들이 판을 벌이면 녹음을 했다. 다 사기꾼이지만 귀엽잖나.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 유랑의 무리라고 할까. -인물들이 웃기다. <서울의 달>에서 약간 변태같이 기괴한 미술선생님역은 배우 백윤식의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셰익스피어가 “운명을 결정하는 건 캐릭터”라고 말했잖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게 해야지. 배우들의 버릇도 많이 가져다 쓴다. 백윤식씨는 전부터 알았는데 시치미 뚝 떼고 진지하게 웃겼다. 그래서 ‘백변태’라고 불렀다(웃음). 웃음 속에는 눈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드라마에 나쁜 놈이 없나? =난 악인이 코믹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자기가 나쁜 걸 저토록 모를 수 있나, 좋은 소리 들을 수도 있는데 왜 그걸 못해서 저렇게 욕 먹고 살까. 뭘 몰라서 악한 거 같다. -그래도 학살자들처럼 진짜 못된 놈들도 있잖은가? =아휴, 그런 사람들은 너무 끔찍하다. 난 악랄한 인간이 나오는 건 아무리 잘 만든 영화도 보기 싫어다. 도끼로 사람 머리 때리고 이런 거 보면 저런 거까지 써서 먹고 살아야 하나 그런다. 1981년 <전설의 고향>으로 데뷔했는데 내가 쓰면 귀신도 다 웃겼다. 장승에 오줌 누고…. 아름다운 이야기 평생 해도 모자란데 왜 그렇게 극악스럽게 쓰나. -승승장구하다가 <죽도록 사랑해>와 <도둑의 딸>이 시청률이 나빴다. 그 뒤 <황금사과>는 시청률은 좋았는데 예전보다 해학은 줄고 이야기 전개는 빨라졌다는 평이 있었다. =<도둑의 딸>이 <허준>과 붙어서 박살 나고 조기종영해서 마음 상했다. 자신감의 위기도 좀 겪었고. <황금사과> 때는 내가 느려터지고 자꾸 까부는 것 같아 좀 빠르게 가보려고 한 거다. -이제 시청률 신경 안 쓰나? =시청률에서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작가는 자기의 말을 해야한다. 더불어 정을 베풀면서 살아가자는 이야기다. 이제는 (시청률에) 그렇게 상처 안 받는다. 안 나와도 까짓 거 뭐, 오늘 재미 없으면 내일 재미있으면 되지. -“불이 나면 렘브란트의 그림과 고양이 가운데 고양이를 구하겠다”는 조각가 자코메티의 말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난 예술이 그렇게 위대하다고 보지 않는다. 내게 손바닥만한 뜰이 있는데 오늘은 무슨 꽃이 올라오나 궁금하고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다. 흙이나 꽃이 더 대단하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돌아온 뚝배기 어떻게 달라지나
큰 줄기 비슷하지만
한 층 경쾌해진 캐릭터 1991년 <서울뚝배기> 조연출이었던 이덕건 피디와 김운경 작가가 다시 만드는 <돌아온 뚝배기>는 원작과 어떻게 다를까? 3대째 전통을 자랑하는 설렁탕집을 배경으로 후계자를 찾는 과정, 종업원과 가족들이 꾸려가는 사랑을 그리는 큰 줄기는 비슷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경쾌해졌다. 강사장의 외동딸로 연극을 전공하는 혜경(김성은)은 철딱서니 없는데다 공주병까지 갖췄다. 91년 도지원이 연기했던 같은 인물은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는 지적인 캐릭터였다. 혜경과 티격태격 사랑을 엮어갈 설렁탕집 종업원 만봉(강경준)은 열심히 사는 정직한 인물인 점은 같지만 최수종이 연기한 만봉보다 더 융통성이 없어 웃기다. 만봉과 혜경, 설렁탕집 지배인 광호(정민)는 삼각 관계가 된다. 홀아비 강사장(김영철)은 오지명이 맡았던 원조 사장처럼 고지식하지만 나름대로 내숭도 떨고, 연애 걸어보려고 안달하는 푼수기가 더해졌다. 새로 등장한 인물들도 있다. 만봉을 좋아하는 이웃 낙지집 조카 서수진(오연서)이 나와 혜경의 연적이 된다. ‘칸나의 뜨딱’ 마담에게는 딸이 생겨 설렁탕집 귀염둥이 수곤이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만들어간다. 구둣방도 문을 열었다. 구둣방 주인은 인생 상담도 곧잘 해준다. 멀끔한 배우 주현을 약간 모자란 이미지로 바꿔놓았던 안동팔 역은 정승호가, 김애경씨가 연기해 “실례합니다~” 코맹맹이 소리를 유행시킨 ‘칸나의 뜨락’ 마담은 이일화가 맡는다. 양동근이 맡아 동팔의 말투를 능청스럽게 흉내내던 꼬마 수곤으로는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이 캐스팅됐다. 시대가 바뀐만큼 종업원들은 출퇴근하고 설렁탕집 옆에는 널찍한 주차장도 생겼다. 김소민 기자
‘서울 뚝배기’
21세기 뚝배기 심지 갖고 할거다
-왜 다시 <서울뚝배기>인가? =방송사에서 제의했는데 고민은 됐다. 창의력 부재로 비춰질까봐. <서울뚝배기>를 다시 봤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더라. 당시랑 지금이랑 많이 다르고, 대사도 고루하고. 젊은 주인공들이 결혼하는 결말도 뻔하고….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어렵지는 않을테니 그 안에서 21세기 서울뚝배기를 한번 해보기로 한 거다. 요즘 드라마 주인공들은 다 대학 나오고 변호사, 의사 그러잖나. 종업원 만봉이는 백령도에서 고등학교 나와서 성실하게 사는 인물인데 그런 인간도 승리해야지. -예전 <서울뚝배기>는 주연 최수종, 도지원보다 조연인 주현, 김애경이 더 기억 난다. =젊은 사람들이 만날 주인공이잖나. 그런 선입견을 좀 깨려고 했는데…. 원래 <서울뚝배기>는 음식 문화와 장인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거였다. 사실 사람들이 안동팔(주현)만 나오면 좋아하니까 (내가) 인기에 영합해서(웃음) 주현씨가 주인공이 돼버리는 특이한 상황이 된 거다. 이번엔 좀 더 심지를 가져가야지…. -취재를 항상 강조하던데…. “노숙자에 대해 쓰려면 2주 동안 서울역에서 굴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고 <서울의 달> 쓸 때도 ‘대머리 박’이라는 춤선생에게 춤을 배웠다고 들었다. =취재를 열심히 했다. <파랑새는 있다>에 차력사가 나오는데 난 학교 다닐 때부터 약장사들이 판을 벌이면 녹음을 했다. 다 사기꾼이지만 귀엽잖나.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 유랑의 무리라고 할까. -인물들이 웃기다. <서울의 달>에서 약간 변태같이 기괴한 미술선생님역은 배우 백윤식의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셰익스피어가 “운명을 결정하는 건 캐릭터”라고 말했잖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게 해야지. 배우들의 버릇도 많이 가져다 쓴다. 백윤식씨는 전부터 알았는데 시치미 뚝 떼고 진지하게 웃겼다. 그래서 ‘백변태’라고 불렀다(웃음). 웃음 속에는 눈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드라마에 나쁜 놈이 없나? =난 악인이 코믹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자기가 나쁜 걸 저토록 모를 수 있나, 좋은 소리 들을 수도 있는데 왜 그걸 못해서 저렇게 욕 먹고 살까. 뭘 몰라서 악한 거 같다. -그래도 학살자들처럼 진짜 못된 놈들도 있잖은가? =아휴, 그런 사람들은 너무 끔찍하다. 난 악랄한 인간이 나오는 건 아무리 잘 만든 영화도 보기 싫어다. 도끼로 사람 머리 때리고 이런 거 보면 저런 거까지 써서 먹고 살아야 하나 그런다. 1981년 <전설의 고향>으로 데뷔했는데 내가 쓰면 귀신도 다 웃겼다. 장승에 오줌 누고…. 아름다운 이야기 평생 해도 모자란데 왜 그렇게 극악스럽게 쓰나. -승승장구하다가 <죽도록 사랑해>와 <도둑의 딸>이 시청률이 나빴다. 그 뒤 <황금사과>는 시청률은 좋았는데 예전보다 해학은 줄고 이야기 전개는 빨라졌다는 평이 있었다. =<도둑의 딸>이 <허준>과 붙어서 박살 나고 조기종영해서 마음 상했다. 자신감의 위기도 좀 겪었고. <황금사과> 때는 내가 느려터지고 자꾸 까부는 것 같아 좀 빠르게 가보려고 한 거다. -이제 시청률 신경 안 쓰나? =시청률에서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작가는 자기의 말을 해야한다. 더불어 정을 베풀면서 살아가자는 이야기다. 이제는 (시청률에) 그렇게 상처 안 받는다. 안 나와도 까짓 거 뭐, 오늘 재미 없으면 내일 재미있으면 되지. -“불이 나면 렘브란트의 그림과 고양이 가운데 고양이를 구하겠다”는 조각가 자코메티의 말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난 예술이 그렇게 위대하다고 보지 않는다. 내게 손바닥만한 뜰이 있는데 오늘은 무슨 꽃이 올라오나 궁금하고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다. 흙이나 꽃이 더 대단하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뚝배기’
한 층 경쾌해진 캐릭터 1991년 <서울뚝배기> 조연출이었던 이덕건 피디와 김운경 작가가 다시 만드는 <돌아온 뚝배기>는 원작과 어떻게 다를까? 3대째 전통을 자랑하는 설렁탕집을 배경으로 후계자를 찾는 과정, 종업원과 가족들이 꾸려가는 사랑을 그리는 큰 줄기는 비슷하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경쾌해졌다. 강사장의 외동딸로 연극을 전공하는 혜경(김성은)은 철딱서니 없는데다 공주병까지 갖췄다. 91년 도지원이 연기했던 같은 인물은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는 지적인 캐릭터였다. 혜경과 티격태격 사랑을 엮어갈 설렁탕집 종업원 만봉(강경준)은 열심히 사는 정직한 인물인 점은 같지만 최수종이 연기한 만봉보다 더 융통성이 없어 웃기다. 만봉과 혜경, 설렁탕집 지배인 광호(정민)는 삼각 관계가 된다. 홀아비 강사장(김영철)은 오지명이 맡았던 원조 사장처럼 고지식하지만 나름대로 내숭도 떨고, 연애 걸어보려고 안달하는 푼수기가 더해졌다. 새로 등장한 인물들도 있다. 만봉을 좋아하는 이웃 낙지집 조카 서수진(오연서)이 나와 혜경의 연적이 된다. ‘칸나의 뜨딱’ 마담에게는 딸이 생겨 설렁탕집 귀염둥이 수곤이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만들어간다. 구둣방도 문을 열었다. 구둣방 주인은 인생 상담도 곧잘 해준다. 멀끔한 배우 주현을 약간 모자란 이미지로 바꿔놓았던 안동팔 역은 정승호가, 김애경씨가 연기해 “실례합니다~” 코맹맹이 소리를 유행시킨 ‘칸나의 뜨락’ 마담은 이일화가 맡는다. 양동근이 맡아 동팔의 말투를 능청스럽게 흉내내던 꼬마 수곤으로는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이 캐스팅됐다. 시대가 바뀐만큼 종업원들은 출퇴근하고 설렁탕집 옆에는 널찍한 주차장도 생겼다.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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