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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문은애 작가 “오락물은 통계와 전략이다”

등록 2008-06-08 20:50

문은애 작가
문은애 작가
‘예능 프로 미다스의 손’ 문은애 작가
드라마 ‘시청률 여왕’은 김수현 작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예능 프로의 미다스의 손’ 문은애(42) 작가다. 오락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상상플러스> <무한도전> <황금어장> 등이 모두 그가 메인 작가로 틀을 잡은 프로그램들이다.

시청률 정글서 ‘쉬지 않고 20년’

문 작가는 시청률이 낮으면 파리 목숨이 되는 살벌한 정글에서 해마다 서너 개씩 프로그램을 맡아가며 한 번도 쉬지 않고 20년을 버텼다. <우정의 무대> 등의 쇼, <출발 드림팀>처럼 몸으로 뛰는 오락 프로그램, <슈퍼선데이>의 ‘공포체험 돌아보지 마’ 같은 토크쇼,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의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짝짓기 리얼리티쇼까지 다루지 않은 장르가 없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그를 “새로운 오락 프로그램의 포맷을 여럿 개발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지금도 <상상플러스 시즌 2> <황금어장> <위기탈출 넘버원>의 메인 작가를 맡고 있는 그를 지난 4일 만났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아이디어를 짜내는 지난한 과정을 차진 입담을 드러내며 조리 있게 들려줬다.

-20년 동안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매번 잘할 수는 없고 ‘나 죽지 않았다’는 걸 2~3년에 한 번씩만 보여주면 된다.(웃음) 그래도 회의 때 아이디어 내면 후배들이 ‘너무 약해요’라고 까기도 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맡은 모든 프로그램을 오래 하는 것이다.”

-기획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대중의 취향을 늘 점검한다. 누가 볼까, 그들의 월소득은 얼마나 될까 등 관련 통계는 물론이고 올해의 히트 상품, 베스트셀러 등 온갖 통계를 챙겨본다. 자료를 보고 나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해외여행 상품이 많이 팔리면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고 보고 프로그램도 스튜디오가 아니라 밖으로 나간다. 외국 프로그램도 훑어보는데 옛날에는 유학생들에게 그쪽 프로그램들을 비디오로 복사해 보내 달라고 부탁해서 봤다.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방송시간에 맞는 공략 계층을 정하고 아이템을 궁리해 가장 잘 뽑아낼 수 있는 연기자를 섭외한다.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는 텔레비전 4대를 켜놓고 타사 프로그램과 동시에 모니터한다. 이때쯤 다른 채널로 돌렸겠다 싶으면 여지없다. 그러면 그쪽에서 시청자를 뺏어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시청자의 공감을 얻으려면 늘 유기적으로 진화해야 한다.”

공략층 빗나가 엉뚱하게 뜨기도

-공략층을 정하면 맞아떨어지나?

“빗나갔는데 잘되는 경우도 있다. <비타민>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다뤄 인기를 끌었는데, 아무리 알면 뭐 하나. 빨리 죽으면 끝이다. 그래서 주부를 타깃으로 위기상황 대처법, 사고 예방법을 다룬 오락 프로그램 <위기탈출 넘버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주시청층은 6살에서 13살로 나왔다. 애들이 그렇게 죽음에 민감한지 몰랐다.”(웃음)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를 보면 기존 토크쇼보다 훨씬 심층적이다.

“칭찬 일색 토크쇼만 보다가 스타도 사는 게 비슷하다는 콘셉트로 가니까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황금어장> 대본은 책 두께다. ‘무릎 팍’ 녹화를 보통 6시간씩 뜬다. 강호동은 작가들이 마련한 질문을 뽑아내고 즉석에서 더 묻는다. 초대손님이 대답을 안 하면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천하장사가 되기 전 하루에 10시간 넘게 씨름 연습한 사람이니 가능한 거다.”

캐릭터 살게 상황 만드는 게 작가

-<무한도전>과 <라디오스타>도 독특하다.

“<무한도전>은 생소한 포맷은 아닌데 캐릭터를 구축하니 떴다. <라디오스타>는 <무한도전>의 오디오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무한도전>의 엠시들은 다 뭉쳐도 보통사람 한명에 못 미치는데 <라디오스타>의 엠시들은 다 뭉쳐도 한 사람 대본도 다 소화를 못한다. ‘내 대본인데 네가 왜 가로채냐…’는 식으로 빠져서. 초대손님들은 왜 대본에 있는 질문도 다 안하냐고 짜증내는 콘셉트다.”

-좀 모자란 캐릭터를 좋아하나?

“실수를 많이 하는 캐릭터에 정이 간다. 모자란 사람은 실수할 때마다 웃긴데 완벽한 사람은 완벽한 걸 다 보여주고 딱 한 번 실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캐릭터를 뽑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드라마도 시놉시스와 인간관계도를 짜지 않느냐? 오락도 마찬가지다. 작가 역할이 캐릭터가 도드라지도록 상황을 만드는 거다. 1990~91년 유재석이 소심한 캐릭터로 나와 무식한 캐릭터인 남희석의 매니저 김종석과 퀴즈 대결을 벌이는 장학퀴즈 패러디가 있었다. 김종석은 ‘스케줄’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 한국 역사는 많이 알았다. 유재석이 이기면 작가들이 한국사 문제를 쭉 낸다. 그러면 유재석은 한숨을 쉬어댄다. 그렇게 캐릭터가 사는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 옆에는 그의 카리스마를 한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쥐약 같은 사람을 앉혀놓는다.”

-새로운 형식을 만들 때 불안하지 않나?

“가장 불안하고 희열도 컸던 프로그램이 <상상플러스>였다. 토크쇼인데 연예인 신변잡기는 안 된다는 거다. 뭘 하라는 건지. 노무현 정부 때는 ‘참여’가 열쇳말이었다. 같은 코드를 써서 ‘참여토크’로 갔다. 참여를 어떻게 보여줄 건가? 참여가 잘 이뤄지는 건 온라인이다. 포스트잇에 리플을 써서 매번 8천장씩 작은 방에 붙이고 찍었다. 카메라 앵글까지 고려해서 대본을 짰다. 댓글을 보니 세대 차이가 많이 났다. 그래서 나온 게 ‘올드 앤 뉴’다. ‘우리말을 알아보자’는 주제는 껍질이다. 그 안은 똑같다. 좀 모자라 보이는 사람들이 유쾌하게 노는 것이다.”

-어떻게 3~4개 프로를 한꺼번에 만드나?

“처음 메인 작가가 됐을 때는 한 프로에 작가가 한두명이어서 소품 건전지까지 내가 사왔다. 지금은 6~8명씩이어서 소품, 섭외, 대본 담당 등 조직화돼 있다.”

방송은 찍은 번호 맞추는 ‘로또’

-어느 정도 대사까지 작가들이 쓰나?

“방송 초기는 구체적인 상황을 작가들이 다 짠다. <상플>에서 노현정 아나운서한테 처음부터 ‘공채 29기 아나운서’란 말만 하게 했다. 그는 명랑한 사람이지만 프로그램에서 남자 넷에 여자 하나이니 그 여자는 비밀스러워야 했다.”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나?

“시청률이 잘 나와도 ‘이젠 뭘 만드나’, 시청률이 안 나오면 ‘이젠 끝이구나’, 그러다 ‘정말 이게 끝이야?’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자신을 테스트해 보는 게 재미인 거 같다. 방송은 로또랑 비슷하다. 내 의도가 맞아떨어지면 내가 찍은 번호가 쫙 맞는 것처럼 희열이 크다. 돈도 들어오고…(웃음).”

-예능작가 지망생들에게 주는 조언은?

“많이 관찰하고 자기 성향과 판단에 따라 분석하라는 것이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문 작가의 ‘건방진 프로필

황금어장·무한도전…
수많은 히트작 만들어 온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이름: 문은애, 1966년생

방송과 인연: 영화감독을 꿈꾸던 대학생 시절, 1988년 문화방송에서 아르바이트로 예능작가를 시작했다. 3년 만에 메인작가가 돼 첫 프로그램 <유쾌한 스튜디오>를 맡았다. 이어 <주부 가요 열창>으로 주부들의 ‘나도 스타’ 붐을 일으켰다. <우정의 무대> 때는 잘생긴 장병들을 추려 “저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를 시켰다.

뜬 프로그램: 문화방송의 ‘양심냉장고’에 맞설 수 있는 코너를 짜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국방송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고민한 끝에 <슈퍼선데이> 속 코너 ‘공포체험 돌아보지마’를 만들었다. 여배우들이 서세원과 밤길을 3~4시간 걸어가면 귀신들이 놀라게 만드는 형식이었는데 인기를 끌어, 배우들이 예쁘고 귀엽게 놀라는 연습까지 해 출연했다.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의 ‘서바이벌 정글 미팅’ 코너는 여대생들이 스타와 미팅을 한 뒤 스타를 향해 “너 나가”라고 지목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왕따문화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를 좀더 감정이 살아나게 만든 짝짓기 리얼리티 쇼가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한국이 보인다>에선 유재석 등 5명이 금메달리스트에 도전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썼다. 2006년 <상상플러스>로 한국방송작가상 예능부문을 받았고, <무한도전> <황금어장>으로 연속 홈런을 쳤다.

주저앉은 프로그램: 그는 연예인이 운동선수와 대결을 벌이는 <출발 드림팀>으로 대박을 친 뒤 이를 역발상으로 뒤집는 <스포츠 오디세이>도 만들었다. 남들이 축구공을 찰 때 신발을 차는 형식으로 마니아를 모았지만 시청률은 미미했다. 하리수, 홍진경 등이 서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면 ‘물론이지’라고 답하는 코너도 만들었는데 시청률 실패. 방송3사를 모두 거치고 지난 3월 팬텀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도너츠미디어와 계약을 맺은 그는 20년째 욕심쟁이 우후훗~.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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