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출자 윤성현(사진)
KBS 2FM 윤성현 PD, 목소리 입혀 1인제작…이색실험 호평
“도대체 누구야?” 새벽 2시, 한국방송 2에프엠에서 흘러나온 기괴한 목소리에 청취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잠을 부르는 잔잔한 음악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디제이가 책임지는 심야 시간에 기계음과 신나는 댄스음악이라니 ….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도 찾기 어려운 디제이에 대한 힌트는 청취자들이 올려준 ‘얼굴 있는 배구공’ 사진이 유일하다.
기계의 마찰음이 섞인 목소리로 <올 댓 차트>를 진행하는 이 디제이는 국내 최초의 ‘사이버 디제이’ 윌슨이다. 윌슨은 눈·코·입을 그려 넣은 배구공으로, 기계음을 입혀 디제이가 됐다. 배구공을 사이버 디제이로 라디오 부스에 앉힌 건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 윤성현(사진) 피디다. 그는 <올 댓 차트>의 연출·선곡·대본까지 맡아 1인 제작 시스템으로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 ‘만능’이다.
“유령, 괴물, 변태 등으로 윌슨을 떠올리면 맞아요.(웃음) 음습한 분위기에 성격까지 거칠지만, 디제이로서 능력은 있는 친구예요. 청취자가 고민 상담을 해오면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해서 한 큐에 해결해버리는 재주가 있죠. 사람이 아니니까 이미지를 생각해서 가식을 떨 필요가 없는 덕분이겠죠.”
윌슨의 탄생은 청취자로부터 기원한다. 윤 피디가 <메이비의 볼륨을 높여요>의 조연출을 맡고 있던 지난해 4월, 한 청취자가 메이비에게 윌슨을 건넸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갇힌 톰 행크스의 유일한 친구가 돼줬던 배구공 윌슨처럼 메이비의 친구가 되길 바라서다. 이를 눈여겨본 윤 피디는 윌슨에게 목소리를 입혀 아예 고정 게스트로 앉혔다. 이후 ‘아랍어 강습’, ‘발레 교실’ 등 “말도 안 되는” 여러 코너들이 윌슨과 함께했다.
지난해 10월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떠난 뒤 그 커다란 빈자리를 메우기 시작한 윌슨은 지난 봄 개편 때도 무사했다. 청취율로 따지면 윌슨이 자조하는 대로 “0%”에 불과하지만, 인지도나 홈페이지 안 게시물 숫자 등 청취자 참여도로 보면 같은 시간대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다.
윤 피디는 사이버 디제이인 배구공 윌슨의 성공 비결을 역설적이게도 ‘인간미’로 꼽는다. “티브이와 달리 라디오는 소속감을 줄 수 있는 매체죠. 청취자를 그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포용하려면 디제이 개인의 몫이 커요. 인간적으로 정이 느껴져야 하는데 윌슨은 사이버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걸 충족시켰죠. 국내 최초의 사이버 캐릭터 ‘아담’과는 달리, 인간의 외모가 아닌 내면을 닮았달까요.”
구혜진 <씨네21> 기자 999@cine21.com
사진 한국방송 제공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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