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시와 '여배우, 김기영을 말하다' 좌담회
한 괴짜 감독이 TV에서 잘 나가던 스물셋 꽃 같은 나이의 스타를 은막으로 불러들였다. 감독은 여배우를 계단에서 험하게 굴러 떨어지게 만들거나 천장에서 내려오는 '쥐 벼락'을 맞게 했다.
당돌한 성격이던 여배우는 못 하겠다고 몇 차례나 뛰쳐나가려 했지만 결국 영화가 완성돼 극장에 걸리고 영화는 대단한 인파를 모았다.
어느덧 예순 살이 된 중견 배우 윤여정은 37년 전 찍었던 영화 데뷔작 '화녀'(1971년)와 이듬해의 '충녀'(1972년)를 회상하면서 고(故) 김기영 감독과 '열심히 싸웠던' 기억을 먼저 꺼냈다.
"첫 영화를 김기영 감독님과 했으니 다른 감독들도 그런 줄 알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평생 영화를 다시는 안 하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죠. 그 땐 김기영의 '기역(ㄱ)'도 보기 싫었어요."
한국영상자료원의 '김기영 10주기 기념 전작전 - 그 남자, 기이하다' 특별 행사로 21일 저녁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배우 이화시와 함께 좌담회 '여배우, 김기영을 말하다'에 참석한 윤여정은 생생한 에피소드로 관객들의 웃음과 탄식을 번갈아 이끌어냈다.
"'충녀' 때 저만 빼고 감독님과 모든 스태프가 미리 계획을 짰더군요. 처음엔 그냥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이라고만 했어요. 그런데 조금 뒤 시트 밖으로 옷이 비치니 벗고 누우라는 거예요. 그 뒤에 느닷없이 쥐떼가 떨어진 거죠. 몸에 쥐가 달라붙는데 벗고있다는 게 생각이 났겠어요? 정신을 놓고 난리가 났죠. 감독님이 귀여운 데가 있으세요. 집에 그 필름을 들고 오셔서 미스 윤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병 주고 약 주는 것 같아 또 싸웠죠. (웃음)"
TV 드라마에서 생기발랄한 이미지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윤여정은 촬영이 고된 나머지 김 감독에게 자신을 왜 캐스팅했느냐고 따져 물었고 김 감독은 낄낄 웃으며 "청승맞아 보여서"라고 답했다.
윤 여정은 당시엔 어이가 없었지만 나중에 슬픈 역을 맡고 보니 "내가 정말 청승맞아 보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김 감독에 대해 '시대를 앞서간 감독'이자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던 분'이라고 정리했다.
"촬영하는 동안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연애를 하면 혼이 빠지거든요. 배우가 작품에 모든 걸 쏟길 원하셨던 거죠. 그 땐 어려서 잘 몰랐어요. 기괴하기만 했죠. 이후 다른 감독들과 작품을 했더니 좀 심심해요. 김 감독님한테는 한 컷 한 컷 디테일이 있었거든요. 일상적인 행동을 간파하고 늘 사람에 대해 연구를 하셨어요. '예전에 미스 윤이 내 앞에서 웃었던 웃음 있지? 그렇게 웃어봐' 하는 식으로 연기 주문이 아주 자세했죠." 윤여정과 함께 '김기영의 페르소나'로 꼽힌 배우는 이화시다. 1970년대 후반 김 감독 영화의 단골 주연 배우였던 이화시는 강렬한 눈빛 연기를 관객의 뇌리에 남겼다. 이날 한 관객은 "눈빛 연기 때문에 눈이 아프지는 않았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아니요, 저도 그런 강렬한 눈빛 연기가 좋아서 힘들지 않았어요. (웃음) 김 감독님은 천재 감독이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어제 김 감독님 영화를 다시 보는데 말을 못 이을 정도였죠. '하녀'의 이은심 선배님도 그렇고, 김 감독님은 마음에 이미 그려둔 여성 캐릭터가 있는데 우리 여배우들을 잠깐 빌려 표현했던 것이었구나, 깨달았어요." 이화시는 1976년 '흙'과 '혈육애', 1977년 '이어도', 1981년 '반금련' 등을 찍고 홀연히 은퇴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출연작마다 흥행에 실패해 좌절감이 컸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때 제 성격이 염세적이었고 늘 심각했어요. 흥행이 잘 안 되니까 견딜 수가 없었죠. 집에서 그만두고 결혼하라고 해서 중매 결혼을 했어요. 아이를 낳고 지금은 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김 감독님이 저를 키워주고 싶어하셨는데 죄송하더군요. '포기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10주기를 맞아 하늘에 계신 감독님께 사과드리고 싶어요." 두 여배우는 모두 앞으로 배우로서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 뜻을 밝히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김 감독님이 알렉 기네스 같은 배우가 되라고 하셨는데 이해를 못했어요. 나중에야 깨달았죠. 영화 '인도로 가는 길'에 알렉 기네스가 나오는데 처음엔 못 알아봤어요. 그런 정도의 변신을 하고 싶어요. 김 감독님이 준 교훈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제작자와 작가가 할머니 역을 맡기면서 미안해 했지만 전 기꺼이 하겠다고 했어요. 영화 '가루지기'는 신한솔 감독이 벗으라기에 벗었고요.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할 수 있어요." (윤여정) "이제 영화에 참여하고 싶어요. 지난해 나온 김진아 감독의 한미 합작영화 '두 번째 사랑'에 출연했습니다. 또 제 딸이 연출 공부를 하는데 딸의 졸업작품에도 출연했죠. 기회가 닿는 대로 하고 싶어요. 제 마음에서 못 다 태운 불을… 활화산이 돼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화시) (서울=연합뉴스)
"촬영하는 동안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연애를 하면 혼이 빠지거든요. 배우가 작품에 모든 걸 쏟길 원하셨던 거죠. 그 땐 어려서 잘 몰랐어요. 기괴하기만 했죠. 이후 다른 감독들과 작품을 했더니 좀 심심해요. 김 감독님한테는 한 컷 한 컷 디테일이 있었거든요. 일상적인 행동을 간파하고 늘 사람에 대해 연구를 하셨어요. '예전에 미스 윤이 내 앞에서 웃었던 웃음 있지? 그렇게 웃어봐' 하는 식으로 연기 주문이 아주 자세했죠." 윤여정과 함께 '김기영의 페르소나'로 꼽힌 배우는 이화시다. 1970년대 후반 김 감독 영화의 단골 주연 배우였던 이화시는 강렬한 눈빛 연기를 관객의 뇌리에 남겼다. 이날 한 관객은 "눈빛 연기 때문에 눈이 아프지는 않았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아니요, 저도 그런 강렬한 눈빛 연기가 좋아서 힘들지 않았어요. (웃음) 김 감독님은 천재 감독이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어제 김 감독님 영화를 다시 보는데 말을 못 이을 정도였죠. '하녀'의 이은심 선배님도 그렇고, 김 감독님은 마음에 이미 그려둔 여성 캐릭터가 있는데 우리 여배우들을 잠깐 빌려 표현했던 것이었구나, 깨달았어요." 이화시는 1976년 '흙'과 '혈육애', 1977년 '이어도', 1981년 '반금련' 등을 찍고 홀연히 은퇴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출연작마다 흥행에 실패해 좌절감이 컸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때 제 성격이 염세적이었고 늘 심각했어요. 흥행이 잘 안 되니까 견딜 수가 없었죠. 집에서 그만두고 결혼하라고 해서 중매 결혼을 했어요. 아이를 낳고 지금은 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김 감독님이 저를 키워주고 싶어하셨는데 죄송하더군요. '포기하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10주기를 맞아 하늘에 계신 감독님께 사과드리고 싶어요." 두 여배우는 모두 앞으로 배우로서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 뜻을 밝히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김 감독님이 알렉 기네스 같은 배우가 되라고 하셨는데 이해를 못했어요. 나중에야 깨달았죠. 영화 '인도로 가는 길'에 알렉 기네스가 나오는데 처음엔 못 알아봤어요. 그런 정도의 변신을 하고 싶어요. 김 감독님이 준 교훈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제작자와 작가가 할머니 역을 맡기면서 미안해 했지만 전 기꺼이 하겠다고 했어요. 영화 '가루지기'는 신한솔 감독이 벗으라기에 벗었고요.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할 수 있어요." (윤여정) "이제 영화에 참여하고 싶어요. 지난해 나온 김진아 감독의 한미 합작영화 '두 번째 사랑'에 출연했습니다. 또 제 딸이 연출 공부를 하는데 딸의 졸업작품에도 출연했죠. 기회가 닿는 대로 하고 싶어요. 제 마음에서 못 다 태운 불을… 활화산이 돼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화시)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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