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ㆍ집단 창작 시스템 도입 붐
'쪽대본'으로 대표되는 국내 드라마의 제작 관행이 바뀌고 있다.
아직은 '프리즌 브레이크'나 'CSI' 등 드라마 팬들이 열광하는 '미드'(미국 드라마)처럼 많게는 수십 명의 작가가 공동으로 작업하는 방식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지만 크고 작은 변화의 움직임들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최근 국내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점은 '크리에이터'의 등장. 크리에이터가 작품을 기획하고 전체 방향을 잡으면 집필 작가가 실제 대본을 완성하는 미국식 작가 시스템이다.
17일 동시에 방송을 시작한 SBS '식객'과 KBS 2TV '최강칠우'도 크리에이터를 내세운 작품들.
'식객'에는 작가와 연출자 외에 '크리에이터 최완규'라는 크레디트가 표기돼있다. 최 작가는 앞서 MBC '이산', SBS '로비스트' 등의 드라마에도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작가 시스템 구축에 앞장서온 최완규 작가는 "강력한 스토리 파워를 발휘해야 되는 작품은 작가 시스템을 통한 다양한 상상력으로 더 높은 완성도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최강칠우'의 크레디트에도 '크리에이터 케이피앤쇼(KP&SHOW)'가 적혀 있다. 케이피앤쇼는 MBC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와 영화 '화려한 휴가'의 박상연 작가가 설립한 작가전문회사로 '최강칠우'를 첫 작품으로 선보였다. '최강칠우'의 백운철 작가도 이 회사 소속으로 집필을 맡고 있다.
작가 여러 명이 함께 대본을 쓰는 공동 집필이나 집단 창작도 확대되고 있다.
김영현ㆍ박상연 작가는 MBC 드라마 '히트'를 같이 썼고 케이피앤쇼의 두 번째 작품으로 MBC 드라마 '선덕여왕'(가제)의 공동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
또 23일부터 방송되는 MBC 월화드라마 '밤이면 밤마다'도 '겨울연가'와 '눈의 여왕'의 김은희ㆍ윤은경 작가가 다시 호흡을 맞추는 작품이다.
'다모'의 이재규 PD가 준비 중인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홍진아ㆍ홍자람 작가, 종영된 KBS 2TV 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홍정은ㆍ홍미란 작가 등 두 '홍자매'도 공동 집필의 대표주자이다.
이와 같이 작가 2명의 공동 집필은 일반화하는 추세이며 3명 이상이 집단으로 대본 작업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9월 방송 예정인 KBS 2TV '바람의 나라'도 최완규, 정진옥, 박진우 작가가 대본을 맡았으며, MBC '종합병원2'도 최완규, 권음미, 노창 작가가 공동 집필한다. 48회 몬테카를로 TV페스티벌 결선에 진출하는 등 호평을 받은 MBC 드라마넷 '별순검'도 여러 명이 공동 집필했다.
강제규 감독이 기획하고 이병헌이 주연을 맡은 대작 드라마 '아이리스'는 최완규 작가가 이끄는 작가 중심의 드라마제작사 에이스토리가 대본을 맡았다.
이 정도 변화로 당장 '미드'에 버금가는 완성도 높은 대본이 쏟아져나오기는 힘들겠지만 '쪽대본'이 날아다니고 스타 작가 한 명에만 의존하는 현실은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모이고 있다.
국내에 작가 시스템이 뿌리내리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작가의 저변이 넓지 않고 드라마 시장에 한계가 있는 국내 상황에 맞는 한국형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 PD는 "작가 시스템은 특히 장르 드라마나 전문직 드라마에 플러스 요인이 되며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 임은 분명하다"면서도 "국내 여건으로는 무조건 여러 명이 분업하기 보다는 메인 작가 한 명이 전체를 책임지면서 보조 작가가 뒤를 받치는 것이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에이스토리의 이상백 대표는 "미국처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국내 드라마 제작 환경상 공동 작업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가 쉽지 않다"면서 "또 단순히 공동 작업이 아니라 얼마나 역량 있는 작가들이 결합하느냐가 집단 창작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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