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 시청률 25% 기록 ‘수직 상승’
민중시위-강경진압 연상시켜 ‘인기’
민중시위-강경진압 연상시켜 ‘인기’
에스비에스 드라마 <일지매>가 최고 시청률 25%를 기록하며 수목 드라마 선두를 굳히고 있다. 16세기 조선이 배경인 <일지매>는 고귀한 혈통과 자질을 타고난 주인공이 고난에 처했다가 조력자를 만나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영웅담의 기본틀을 따라간다. 전형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 <일지매>의 특별한 힘은 뭘까?
<일지매>의 매력은 ‘이중 구조를 맛깔스럽게 섞은 비빔밥의 맛’이라는 평가가 많다. 건달과 의적을 오가는 일지매 자체가 이중적인 캐릭터다. 시대적 배경은 과거이되 요즘 현실 상황을 끌어들이고, 비장한 비극과 가벼운 희극을 맵시나게 이어 붙였다.
<일지매>는 현재를 변주한다. 지난 3일 방송분에서 민중들은 시위를 벌였다. 청나라 사신의 아들이 술 마시고 말을 달리다 꼬마를 치어 숨지게 하고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청나라 사신이 머무는 곳 앞에 민중들이 모이자 관군들은 방패로 막아서다 강경진압을 시작했다. 이때 일지매가 등장해 사신의 아들을 끌고 나와 사과를 받아낸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게시판에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이 치여 숨진 사건과 촛불집회가 떠오른다”는 반응을 썼다. “요즘 같은 난세에는 영웅이 필요한데 이 드라마를 보니 속이 시원하다”(이윤상) 등 통쾌하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물론 “시류를 탄 에피소드를 불쑥 끼워넣어 시청률 높이려는 설정 아니냐”(이은정)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용석 피디는 “지난해 기획안 짤 때부터 넣은 설정인데 요즘 현실과 비슷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생각해 봤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은 있지만, 드라마로 그런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를 앞세우진 않았다”며 “개인적인 복수에 머물던 일지매가 사회적인 문제로 넘어가는 단계에 필요한 설정”이라고 말했다.
<일지매>에는 개그프로그램 유행어 등도 섞여 들어간다. 일지매의 양아버지 쇠돌이(이문식)는 아들을 보고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웅이 아버지’ 코너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멋져 부러~”를 연발한다. 요즘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에서 접하는 다양한 것들을 과감하게 집어넣어 기존 사극에는 없는 새로운 재미를 더하려는 전략이다.
또한 비장한 장면 뒤에는 어김없이 웃기는 장면이 붙어나와 비극과 코미디를 휙휙 바꿔 보여준다. 역적 아들로 몰린 일지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 돌아오는데 앞니 하나 빠진 양아버지 쇠돌이가 서당 안 간 걸 꾸짖으며 “야 이놈아”라고 쫓아온다. 이 피디는 “슈퍼히어로의 특징은 상처를 입어도 금방 되살아나는 자기 복원력인데 일지매가 금방 낫고 헤헤거리는 건 그런 특징과 어울린다”며 “일본 영웅은 울분에 자결하지만 한국 영웅의 특징은 슬퍼도 웃으며 참고 넘기되 잊지 않는 것인 듯하다”고 말했다.
<일지매>는 그동안 의적 이야기이면서도 주인공의 액션을 미뤄왔다. 20부작 중 8부가 되어서야 일지매가 탐관오리 집을 털고 매화를 남긴다. 이 피디는 “(액션을 뒤로 미룬 이유는) <쾌도 홍길동> <최강칠우> 등 다른 의적 드라마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라며 “대신에 쇠돌이 등 조연의 캐릭터를 살리고 부부간의 사랑, 부정, 모정이 두드러지게 한 덕에 중장년 시청자를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일지매는 개인적 복수를 위해 칼을 가는 영웅이었다. 복수를 완성하는 데서 그칠지, 체제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적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체제 전복에 나설지, 일지매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 피디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그 시대의 모순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 일지매는 사회적인 문제에 눈뜰 수밖에 없다”며 “백성은 뒷전이고 권력에만 집착하는 무리에게 확실한 경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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