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영의 무대 모습과 아무로 나미에의 뮤직비디오. 구성과 주제가 판박이 수준이란 비난이 일었다.
외국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나 화보, 무대 디자인을 베끼는 스타일 표절이 가요계에 번지고 있다. 노래보다는 볼거리와 콘셉트로 승부를 거는 이른바 아이돌 기획 가수들의 득세가 심해지면서 스타일을 베끼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표절한 것이 아니므로 표절 시비가 일어도 발뺌하거나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대중음악 스타들의 윤리의식이 예전보다 크게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 요즘 표절 주류는 스타일 베끼기 최근 나온 표절 논란들은 화장과 의상, 음반 화보 같은 스타일 콘셉트와 무대 디자인 등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요즘 최고 인기인 이효리와 서인영 두 가수가 콘셉트 표절 논란을 시리즈처럼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인영의 새 음반이 발매되자마자 표지 사진이 일본 모델 코코 로샤의 화보와 비슷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효리는 3집 발표 전부터 이미지 콘셉트가 영국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포스터는 상반신 누드에 운동화를 목에 건 일본 배우 호시노 아키의 사진을 베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다른 가수의 뮤직비디오나 무대 연출을 베꼈다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서인영은 활동 시작 첫 무대가 일본 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뮤직비디오 ‘뉴룩’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을 샀다. 내용 설정부터 무대 배경 무늬, 댄서들의 의상까지 판박이 수준이란 네티즌들의 비난이 잇따랐다. 또다른 방송프로그램 무대는 영국 가수 그웬 스테파니의 공연 콘셉트와 닮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리 선보이는 사전 홍보 동영상들이 표절 논란에 휩싸여 수정되는 일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효리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캔디 맨’ 뮤직비디오 및 아길레라가 출연한 신발 광고와 비슷하다고 의심받은 부분을, 서인영은 일본 가수 하마자키 아유미가 사용한 속눈썹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 부분을 나중에 삭제하는 식으로 논란을 피해 갔다.
서태지의 새 음반 표지(오른쪽)와 시규어 로스의 음반 디자인. 닮은꼴 아이디어라는 누리꾼들의 지적에 서태지 쪽은 “태아 이미지는 태초의 소리라는 콘셉트 때문이며 흔한 이미지로 표절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 “표절? 재연이거든요?” 인정도 사과도 없어 표절 논란에 대처하는 가수들과 기획사 쪽의 태도가 아이디어 훔치기가 아니라 참고 또는 재연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비슷한 부분은 ‘트렌드 수용’이라고 강변하고 너무 비슷하면 ‘재연’이란 말을 쓴다. 서인영 소속사인 스타제국의 이주원 이사는 “누가 봐도 재연이란 걸 알 수 있다. 콘셉트를 잡을 때 아무로 나미에 뮤직비디오처럼 하면 재밌는 무대가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조금만 도용할 거였으면 그렇게 똑같이 했겠느냐”고 설명했다.
화보 사진의 경우 서인영 쪽은 “수십 장을 찍다 보니 잡지에서 봤던 분위기를 참고해 연출한 사진들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이효리 쪽은 “콘셉트가 비슷하다고 표절이라고 하면 누가 표절을 피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저작권위원회 서달주 책임연구원은 “화장이나 의상은 저작권과 상관없지만 뮤직비디오의 줄거리나 표현양식, 무대 디자인이 흡사하다면 저작권 침해가 된다”고 설명했다.
표절 논란이 일어도 곡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강변하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다. 이효리는 새 음반 13곡 중 4곡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는데 이전 음반에서도 표절 논란이 일었던 작곡가의 곡이 다시 들어갔다. 표절 여부가 작곡가의 문제이지 이효리의 잘못은 아니지만, 솔로 독립 이후 계속 표절 논란이 이어지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에 대해 이효리는 한 인터뷰에서 “의혹만 있었고 표절로 판정받은 것도 아닌데 평가절하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중들의 심리를 꿰찰 수 있는 최고의 작곡가들인만큼 계속 작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음악평론 사이트 ‘이즘’의 이대화 편집장은 “활동 콘셉트나 이미지는 노래와 마찬가지로 가수의 생명과 다름없다”며 “표절을 오마주니 재연이니 하는 식으로 변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한국 가요계가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 있다”며 “음악은 물론 이미지조차 검증된 코드로만 따오고, 팬들 역시 노래만 듣기 좋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창작자의 도덕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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