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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우린 지금 ‘야생 시트콤’ 탐험중

등록 2008-08-03 17:52수정 2008-08-03 21:01

문화방송 크크섬의 비밀
대체 이 섬의 정체는 뭘까?

문화방송 <크크섬의 비밀>(월~금 저녁 7시45분)은 시트콤의 새로운 영토를 탐험 중이다. <순풍산부인과> <거침없이 하이킥!> 등을 함께 만들어 온 송재정 작가와 김영기 감독이 길라잡이다. 10년 넘게 일상의 웃기는 단면을 예리하게 저며내 온 고수들이 이번엔 미스터리를 보태 매회 궁금증의 미끼를 던진다.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과 지극히 황당한 이야기, 이렇게 이질적인 요소를 크크섬에서 붙여놓은 셈이다.

무인도에 갇힌 홈쇼핑 직원 9명은 불안해하는가 싶다가 어느 참에 내기 화투에 열을 낸다. <크크섬>의 이음매를 매끈하게 만드는 건 그야말로 “크크” 웃기는 낙천적인 캐릭터의 힘이다. 세트를 박차고 나간 한국 최초 야생 미스터리에 멜로까지 섞어놓은 이 ‘짬뽕’ 시트콤은 독특한 맛을 내며 시청자들 입맛을 당기는 중이다.

미스터리와 일상의 조합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나왔다. 여자친구가 스파이로, 엄마의 동네 친구가 살인마로 밝혀졌다. <하이킥!>에서 미스터리가 액세서리 정도였다면, <크크섬>에서는 아예 기둥 줄기를 이룬다. 이야기의 힘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오락프로그램과 드라마 사이에 낀 장르, 시트콤의 발디딜 땅을 이들은 크크섬에서 모색하고 있다.

‘순풍…’ ‘…하이킥’ 작가와 감독
미스터리+일상 탑재하고 섬으로

■ 그곳엔 모자란 사람들이 산다

<순풍>의 박영규, <하이킥!>의 이순재가 선사한 ‘찌질한 매력’을 <크크섬>에서는 신성우가 잇는다. 낙도에 구호품을 전달하려고 배를 탔다 술 퍼마시고 눈 떠보니 무인도에 떨어진 직원 9명 가운데 자타공인 낙하산, 무능력자인 신 과장이 신성우다. <크크섬> 1회 첫 장면, 근육질 신 과장이 처절하게 울부짖는데 갈매기 똥이 그의 입속으로 툭 떨어진다. 화투 칠 때 든 패가 표정으로 다 드러나는 인물이라 백전백패이지만 다 잃을 때까지 ‘고’ 하는 ‘불곰’ 캐릭터다.


<불꽃놀이> 등에 나왔던 윤상현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장난질 본능을 멈추지 않는다. 염소똥을 초코볼로 속이기, 라면 훔쳐먹기, 화투에 환장하기가 취미이자 장기다. 윤상현과 환상의 복식조를 이루는 김 과장 김광규는 부장에게 “도도 개도 아닌 결국 빽도”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회삿돈으로 중국어 연수까지 받았지만 쓸모가 없다. 크크섬 앞으로 중국 배가 오고 부장이 다급하게 구조 요청을 하라고 지시하지만 그가 허공에 소리친 외마디 중국어는? “나는 학생이다, 너는 학생이냐. 나는 한국인이다, 너는 중국인이냐.” 중국 배는 돌아가버렸다.

치사한 면모를 솎아내 웃기기는 <순풍>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제작진의 특기다. <크크섬> 인물들도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투쟁하는데, 그 목표라는 것이 라면·담배·화투다. 한 대 남은 담배를 피우겠다고 윤 대리는 관 모양 상자 안으로 기어 들어가고 그걸 막겠다고 김 과장과 신 과장은 상자를 바다에 띄워 버린다. 그 와중에서도 윤 대리는 뚜껑에 난 동그란 구멍으로 담배 연기를 뻐끔뻐끔 뿜어내며 약을 올린다. 절대 권력자를 놀려먹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매사 똑 부러지는 김 부장(김선경), 바지 엉덩이 부분이 죽 찢어져 곤욕을 치른다. 숨진 염소철 주임의 장례를 치르는데, 그 와중에 염 주임이 그동안 종교를 “기독교, 가톨릭, 토속신앙” 등으로 속여가며 야근 빼먹기와 당직 바꾸기를 감행해 왔다는 비리가 드러난다. 염 주임에 대해 동료들이 떠올리는 추억은 “방귀 잘 뀌었던 염 대리”다.

‘로스트’와 설정은 닮은꼴이지만
찌질이들의 치사한 웃음 “못 말려”

■ 그곳엔 ‘떡밥’ 이야기가 산다

<크크섬>의 설정은 미국 드라마 <로스트>와 빼닮았다. 미지의 섬에 불시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로스트>는 섬의 비밀을 알려줄 듯 말 듯 하는 미끼로 시즌 5까지 이어갔다. <크크섬>도 궁금증을 모락모락 피워 올린다. 직원들을 크크섬에 보낸 사람은? 무인도로 보이는 섬인데 누군가가 덫을 설치했고 직원들의 선글라스와 휴대전화도 훔쳐갔다. 김 과장은 정체불명의 흰 수염을 봤다며 겁에 질린다.

큰 줄기 이야기의 힘이 강력해진 데는 첫회부터 바로 가동한 멜로도 한몫했다. 철두철미 김 부장은 어리바리 부하 신 과장의 복근에 홀딱 반했는데 사원 채민영이 연적으로 낀다. 이다희는 동기 심형탁, 지분거리는 윤상현과 삼각관계를 이룬다.

이 큰 줄기 미스터리 이야기와 일상적인 소묘가 한 에피소드 안에서 섞여 들어간다. 일원 중 세 명이 누군가 설치한 덫에 걸린 상황인데 신 과장과 김 과장은 담배 놓고 담배 먹기 삼치기 게임(일종의 숫자 맞히기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의 초절정 낙천적이고 근시안적인 정신 세계 안에서 불안과 일상이 이물감 없이 겹친다. 그들은 온몸으로 말한다. ‘여기가 어딘지 몰라도 밥은 먹고 똥은 누고 화투는 쳐야 할 거 아니야!’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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