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 푼 ‘전설의 고향’성공 방정식
에피소드마다 다른 장르 채택
세대별 공포 감안 파격도 불사 9년 만에 돌아온 한국방송 <전설의 고향>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힘은 강력했다. 1977년부터 12년, 1996년부터 99년까지는 여름에만 납량특집으로 방영했던 <전설의 고향>이 올해 8월 한달 동안 매주 수ㆍ목요일 여름 특집으로 돌아왔다. 한국 공포 드라마 대표 브랜드의 이름값은 대단했다. 첫회부터 시청률 20%로 단숨에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라섰다. 시청층의 70%는 30대 이상이다. 이 이름값은 제작진에겐 힘인 동시에 짐이다. 옛 방식대로 소복 귀신으로 놀라게 하자니 젊은 층이 등 돌릴 테고, 완전히 틀을 깨자니 장년층이 ‘내 추억 돌려놔’라고 불만을 쏟아낸다. 게다가 요즘 시청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강력해진 온갖 공포 영화에 단련된 상태다. 추억을 이용하되 기존 틀을 깨고, 공포 영화와는 다른 재미를 줘야 하는 고난도 방정식을 <전설의 고향>은 어떻게 풀어갈까? <전설의 고향>은 에피소드마다 향수와 새로움 사이를 진자처럼 오가며, 조심스럽게 스릴러, 추리, 코믹극까지 여러 장르물을 끌어안으려는 실험을 더했다. ■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 2008년 <전설의 고향>은 파격과 전통적 정서를 번갈아 디디며 가고 있다. 모두 8편 에피소드 배치부터 이를 고려했다. <전설의 고향>의 대표 캐릭터 구미호를 내세운 1편은 사회를 은유하며 파격을 보여줬다. 탈을 벗어던진 구미호는 무섭기보다 고혹적인 존재로 나왔다. 11년 전 구미호 에피소드가 약속 지키기 등 도덕을 옹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구미호는 사대부가를 배경으로 기득권 집단이 정보를 틀어쥐고 공포를 무기 삼아 약자를 착취하는 방식을 은유했다. “안 무섭다”는 옛 구미호 팬들의 원성도 샀지만, 시청률에선 성공했다. 옛 팬들의 원성을 달랠 만한 에피소드는 바로 다음날인 7일 방영됐다. ‘아가야 청산 가자’는 애끓는 모정 때문에 귀신이 된 어머니의 이야기로 전형적인 소복 귀신이 등장해 향수를 자극했다. ■ 장르 실험 아예 공포를 빼기도 한다. 28일 방송하는 ‘사신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귀신판 금고 털기 대작전이다. 이야기는 어리바리 저승사자가 죽음의 명부를 잃어버리며 시작한다. 저승사자는 저승문이 열리기 전에 명부를 찾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명부가 탐관오리 백 대감 손에 들어간다. 백 대감은 명부도 보물인 줄 알고 철통수비에 들어간다. 기회는 백 대감의 여름 휴양 길에 딱 두 번뿐이다. 저승사자는 소매치기와 한편을 먹고 명부를 찾아오기로 하는데, 여러 패거리들이 명부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14일 방송한 ‘귀서’는 귀신 없는 스릴러로 갔다. 인종이 갑작스럽게 숨진 뒤 귀신 소설 <설공찬전>에 그려진 방식대로 궁에서 사람들이 잇따라 살해당한다. ‘귀서’에서 사람을 해치는 범인도 귀신이 아니다. 이 둘을 만든 김용수 피디는 “<전설의 고향> 틀을 많이 벗어나 욕 많이 먹을 것 같다”며 “<전설의 고향>은 성공한 브랜드이지만 퇴행하지 않으려면 여러 장르의 실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귀신의 사연 전통적인 <전설의 고향>의 정서에 맞닿으면서 표현의 한계를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제작진은 ‘귀신의 사연’을 골랐다. 20일 방송하는 ‘오구도령’은 귀신을 쫓기도 하고 소통도 하는 퇴마사가 주인공이다.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자, 건강한 마을 사람들은 환자들을 치료받을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겠다며 배에 태운다. 이어 병자들이 탄 배에 불을 지르고 마을은 이상한 광기에 휩싸인다. 연출자 이정섭 피디는 “귀신들의 사연이 부각되는 귀신판 <인간극장>이라고 볼 수 있다”며 “외국 공포 영화는 귀신이나 드라큘라가 인간을 공격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지만 전통적으로 <전설의 고향>의 요체는 귀신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21일 나가는 ‘기방괴담’에서는 귀신의 원한을 풀어줬더니 마을의 변고가 사라졌다는 아랑설화와, 춘향전의 큰 틀을 섞었다. 눈에서 피를 흘리는 소복 귀신들이 여럿 등장한다. ‘기방괴담’의 김정민 피디는 “‘내 다리 내놔’부터 옛 <전설의 고향>을 살펴보니 한 시퀀스 정도만 무서운 귀신이 나오고 나머지는 다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며 “사연 많은 귀신들은 정에도 약해 인간적인 구석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귀신에 대한 향수가 컸던지, 대체로 전형적인 <전설의 고향> 이야기 구조를 따라 팬들의 지지를 받은 ‘아가야 청산 가자’에서 마지막에 소복 귀신이 용서하지 않고 투신하는 장면을 두고 “예전 <전설의 고향> 귀신들은 관용을 베풀 줄 알아 더 애절했는데 아쉽다”라고 게시판에 평한 시청자도 있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세대별 공포 감안 파격도 불사 9년 만에 돌아온 한국방송 <전설의 고향>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힘은 강력했다. 1977년부터 12년, 1996년부터 99년까지는 여름에만 납량특집으로 방영했던 <전설의 고향>이 올해 8월 한달 동안 매주 수ㆍ목요일 여름 특집으로 돌아왔다. 한국 공포 드라마 대표 브랜드의 이름값은 대단했다. 첫회부터 시청률 20%로 단숨에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라섰다. 시청층의 70%는 30대 이상이다. 이 이름값은 제작진에겐 힘인 동시에 짐이다. 옛 방식대로 소복 귀신으로 놀라게 하자니 젊은 층이 등 돌릴 테고, 완전히 틀을 깨자니 장년층이 ‘내 추억 돌려놔’라고 불만을 쏟아낸다. 게다가 요즘 시청자들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강력해진 온갖 공포 영화에 단련된 상태다. 추억을 이용하되 기존 틀을 깨고, 공포 영화와는 다른 재미를 줘야 하는 고난도 방정식을 <전설의 고향>은 어떻게 풀어갈까? <전설의 고향>은 에피소드마다 향수와 새로움 사이를 진자처럼 오가며, 조심스럽게 스릴러, 추리, 코믹극까지 여러 장르물을 끌어안으려는 실험을 더했다. ■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 2008년 <전설의 고향>은 파격과 전통적 정서를 번갈아 디디며 가고 있다. 모두 8편 에피소드 배치부터 이를 고려했다. <전설의 고향>의 대표 캐릭터 구미호를 내세운 1편은 사회를 은유하며 파격을 보여줬다. 탈을 벗어던진 구미호는 무섭기보다 고혹적인 존재로 나왔다. 11년 전 구미호 에피소드가 약속 지키기 등 도덕을 옹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구미호는 사대부가를 배경으로 기득권 집단이 정보를 틀어쥐고 공포를 무기 삼아 약자를 착취하는 방식을 은유했다. “안 무섭다”는 옛 구미호 팬들의 원성도 샀지만, 시청률에선 성공했다. 옛 팬들의 원성을 달랠 만한 에피소드는 바로 다음날인 7일 방영됐다. ‘아가야 청산 가자’는 애끓는 모정 때문에 귀신이 된 어머니의 이야기로 전형적인 소복 귀신이 등장해 향수를 자극했다. ■ 장르 실험 아예 공포를 빼기도 한다. 28일 방송하는 ‘사신이야기’는 우스꽝스러운 귀신판 금고 털기 대작전이다. 이야기는 어리바리 저승사자가 죽음의 명부를 잃어버리며 시작한다. 저승사자는 저승문이 열리기 전에 명부를 찾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명부가 탐관오리 백 대감 손에 들어간다. 백 대감은 명부도 보물인 줄 알고 철통수비에 들어간다. 기회는 백 대감의 여름 휴양 길에 딱 두 번뿐이다. 저승사자는 소매치기와 한편을 먹고 명부를 찾아오기로 하는데, 여러 패거리들이 명부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14일 방송한 ‘귀서’는 귀신 없는 스릴러로 갔다. 인종이 갑작스럽게 숨진 뒤 귀신 소설 <설공찬전>에 그려진 방식대로 궁에서 사람들이 잇따라 살해당한다. ‘귀서’에서 사람을 해치는 범인도 귀신이 아니다. 이 둘을 만든 김용수 피디는 “<전설의 고향> 틀을 많이 벗어나 욕 많이 먹을 것 같다”며 “<전설의 고향>은 성공한 브랜드이지만 퇴행하지 않으려면 여러 장르의 실험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1일 나가는 ‘기방괴담’에서는 귀신의 원한을 풀어줬더니 마을의 변고가 사라졌다는 아랑설화와, 춘향전의 큰 틀을 섞었다. 눈에서 피를 흘리는 소복 귀신들이 여럿 등장한다. ‘기방괴담’의 김정민 피디는 “‘내 다리 내놔’부터 옛 <전설의 고향>을 살펴보니 한 시퀀스 정도만 무서운 귀신이 나오고 나머지는 다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며 “사연 많은 귀신들은 정에도 약해 인간적인 구석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귀신에 대한 향수가 컸던지, 대체로 전형적인 <전설의 고향> 이야기 구조를 따라 팬들의 지지를 받은 ‘아가야 청산 가자’에서 마지막에 소복 귀신이 용서하지 않고 투신하는 장면을 두고 “예전 <전설의 고향> 귀신들은 관용을 베풀 줄 알아 더 애절했는데 아쉽다”라고 게시판에 평한 시청자도 있었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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