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온 이야기
EBS 국내 첫 동물 재연 다큐 ‘마리온 이야기’ 16일 방송
100살짜리 코끼리거북이 ‘재연 배우’로 데뷔했다. 교육방송이 16일 밤 11시10분 방영하는 <마리온 이야기>(사진)는 1918년 멸종된 야생 세이셸코끼리거북의 마지막 생존자 ‘마리온’의 일대기를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다. 마리온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군도 위쪽에 있는 세이셸섬에 실존했던 거북으로, 인간에게 포획돼 낯선 섬으로 끌려간 뒤 120년 동안 외롭게 살았다. 고향을 잊지 못했던 마리온은 무려 3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동안 그의 고향 땅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이미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자연다큐멘터리를 주로 만든 문동현 교육방송 피디는 국내에서 출간된 동화 <착한 발자국>에서 마리온의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뒤 올해 초 촬영 준비를 시작해 지난 7월3일 아프리카 세이셸공화국으로 날아갔다. 1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이셸공화국에는 인간의 출입이 통제된 세이셸코끼리거북 보호구역이 있고, 약 10만~15만 마리의 거북이 살고 있다. 알다브라코끼리거북으로도 불리는 세이셸코끼리거북은 다 자라면 무게가 300㎏이 넘고 평균 수명은 100여살에 이른다.
문 피디는 보호구역 밖 국립공원에 살면서 인간의 존재에 비교적 익숙한 30여 마리의 세이셸코끼리거북 중에서 주연 거북을 물색했고, 이 중 100살쯤 된 중간 크기의 거북 한 마리를 마리온 역으로 택했다. 만약에 대비해 주연과 흡사하게 생긴 대역 배우 한 마리도 준비했다. 마리온을 사냥하고 사육한 ‘사람들’ 역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현지 주민들이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문 피디는 “거북들이 느릿느릿 움직여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성격이 온순한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정이 풍부해 촬영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마리온 이야기>는 국내에선 최초로 제작된 동물 재연 다큐멘터리다. 1초를 24프레임으로 구성하는 영화 촬영 방식을 택해 화면에 풍성한 질감을 살렸고, 드라마 <태왕사신기> 음향팀과 <대장금> 음악팀이 빚어낸 ‘소리’로 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문 피디는 “멸종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인지 해설자가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전달하는 게 훨씬 호소력이 있다고 판단해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재연 배우를 통해 90년 만에 되살아난 이야기의 주인공 마리온은 현재 영국박물관에 박제돼 있다.
이미경 <씨네21> 기자 friendlee@cine21.com
사진 교육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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