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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경찰서로 갈까요, 인사위로 갈까요?”

등록 2008-09-25 16:35수정 2008-09-26 08:37

와이티엔(YTN) 노조원들이 16일 오후 '뉴스의 현장' 생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부조정실에서 구본홍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자 회사간부들이 시위중단을 요구하며 몸싸움을 하고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와이티엔(YTN) 노조원들이 16일 오후 '뉴스의 현장' 생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부조정실에서 구본홍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자 회사간부들이 시위중단을 요구하며 몸싸움을 하고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YTN 돌발영상팀 기자 사내 게시판에 글
“진술, 무한정 대기하다 결방, 회사가 업무방해
다음날 잡아준 시간, 경찰 출석 겹쳐 쓴웃음만”
“‘입가의 진한 쓴웃음’은 ‘가슴 속의 진한 눈물’을 동반합니다.”

와이티엔(YTN) 조합원들의 경찰 조사와 인사위 출석으로 와이티엔 대표프로그램인 ‘돌발영상’이 25일 결방된 것과 관련해 돌방영상팀 정유신 기자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정 기자는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사쪽이 경찰에 고소한 조합원 12명에 들었고, 회사 인사위원회 징계대상자 34명에도 포함됐다. 정 기자는 이날 서울 남대문경찰서 출석 30분 전에 쓴 ‘경찰서로 갈까요? 인사위로 갈까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24일과 25일 열린 인사위원회와 회사쪽이 조합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함에 따라 25일 경찰의 출석 요구가 겹쳐 일어난 기묘한 상황을 전했다.

사연은 이렇다. 정 기자는 “어제(24일) 인사위원회에서 34명의 징계심의 대상자들을 ‘가나다순’으로 한명씩 심의하겠다며 오후 3시부터 17층 회의장 밖에서 대기하게 했다”며 “5시간이 지난 저녁 8시 무렵 ‘김’씨들의 진술이 간신히 끝났다”고 전했다. 그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돌발영상팀은 (그 시간에) 다음날 아이템을 찾기 위해 테잎도 보고 회의도 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투쟁 국면에서도 돌발영상 제작에는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왔다”며 “그 시간에 ‘징계를 받기 위해’ 17층 사장실 앞 맨바닥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 분노 보다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정 기자는 이어 “저녁 8시10분 쯤, 진술을 마친 ‘ㄱ’씨들 외에, 아직 진술을 하지 못한 ‘ㄴ’부터 ‘ㅎ’까지 이르는 20여 명의 대상자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게 할 거냐’며 인사위원들에게 항의하니 ‘자정까지라도 해보겠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면서 “그때부터 자정까지는 4시간, 당시 남은 대기자 22명의 3분의 1도 진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래야만 하는 뚜렷한 이유는 어느 위원도 말하지 않았다”고 답답해 했다. 그는 이어 “저를 포함한 상당수는 밤 12시까지 마냥 기다렸다가, ‘내일 오라’고 하면, 또 다음날 오전 9시부터 어떤 업무도 하지 못한 채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말 밖에 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인사위가 사원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정 기자는 “인사위원장은 노조위원장에게 간략한 메모를 전해왔다. 아직 진술하지 못한 사람들의 ‘업무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다음날 ‘진술 시간표’였다”며 “저의 진술시간이 몇 시인지 확인하고는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9월 25일 오후 15시....이 시간은 이미 회사가 저를 고발함에 따라, 경찰로부터 출석을 통보받은 시간(오후 14시)과 겹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맹목과 무책임함에, 그리고 그 분들이 제가 10년간 모셔왔던 분들이란 사실에 온 몸에 힘이 빠졌다”고 밝혔다.

정 기자는 “특종상, 공로상도 받아봤고, 우수프로그램상도 받아봤고, ‘모범사원상’도 받았다. 지금까지의 제 개인 인사기록에는 지금 인사위원 몇몇 분의 개인 인사기록처럼 ‘징계’ 이력이 없다. 제가 몸담고 있는 돌발영상팀은 작년 연말 종무식에서 회사로부터 ‘YTN 대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며 “그리고 오늘, 지금부터 1시간 뒤,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라고 되물었다.

정 기자는 “‘입가의 진한 쓴웃음’은 ‘가슴 속의 진한 눈물’을 동반한다는 사실도 지금 처음 알게 됐다”며 “일단 경찰서부터 가고 보겠다”며 글을 마쳤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정유신 기자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의 전문

돌발영상팀 정유신입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실명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노조 집행부 일을 돕고 있는 한 사람으로 가급적 자제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답답한 심정을 어딘가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서 짧게 속내를 올려 봅니다.

어제(24일) 인사위원회에서는 34명의 징계심의 대상자들을 ‘가나다순’으로 한명씩 심의하겠다며 오후 3시부터 17층 회의장 밖에서 대기하게 했습니다.

‘정’씨인 관계로 저는 34명 중 약간 뒷부분입니다. 5시간이 지난 저녁 8시 무렵 ‘김’씨들의 진술이 간신히 끝나더군요.

오후 3시부터 8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돌발영상팀은 다음날 아이템을 찾기 위해 테잎도 보고 회의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투쟁 국면에서 경황이 없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돌발영상 제작에는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다른 분들도 리포트를 하고, 생방송을 진행하고,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부조 스탭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시간이었겠죠. 그 시간에 ‘징계를 받기 위해’ 17층 사장실 앞 맨바닥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 분노 보다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녁 8시 10분 쯤, 진술을 마친 ‘ㄱ’씨들 외에, 아직 진술을 하지 못한 ‘ㄴ’부터 ‘ㅎ’까지 이르는 20여 명의 대상자들은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게 할 거냐’며 인사위원들에게 항의했습니다. ‘자정까지라도 해보겠다’는 답변이 되돌아왔습니다.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 밤 12시까지 회사에 있어야 하는 것 정도야, 지난 세월 숱하게 했기 때문에 별 억울할 것 없었습니다. 다음날 돌발영상 제작을 위한 작업을 전혀 하지 못한 책임도 인사위 때문이라고 하면 그만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인사위원들(선배라 하지 않겠습니다)의 이해할 수 없는 ‘의지’였습니다. 그때부터 자정까지는 4시간, 당시 남은 대기자 22명의 3분의 1도 진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인사위원들은, 끝까지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 못하면 다음날 9시에 재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뚜렷한 이유는 어느 위원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상당수는 밤 12시까지 마냥 기다렸다가, ‘내일 오라’고 하면, 또 다음날 오전 9시부터 어떤 업무도 하지 못한 채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말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사위가 사원들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이렇게 무리하게 인사위를 강행하는 것은 이미 정해놓은 결과를, 정해놓은 시간 안에 마치려 한다는 의심을 짙게 했습니다.

이런 의구심을 제기하자 한 위원님은 두 손을 크게 저으며 ‘결코 그런 의도가 없다’고 펄쩍 뛰셨습니다. 위원장이 거듭 ‘그런 의도가 없다면, 당연히,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방법으로 인사위를 서두르려 하지 말고, 하루 내에 가능한 인원을 책정해 진술 시간을 조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런 요청을 무시하고 물리적으로 안되는 일을 계속 강행하려 한다면 ‘그런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지 않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아무 말씀들이 없으셨습니다. 잠시 위원들끼리 논의해볼테니 나가달라고 하셨습니다.(진술 시간 조절과 관련한 대화 외에 벌어진, 당시 대기 중인 징계대상자들을 분노케 한 몇몇 인사위원님들의 이런저런 발언들은 옮기지 않겠습니다.)

1시간 가까이 저를 포함한 대기자들은 또 기다렸습니다. 그 뒤에 인사위원장은 노조위원장에게 간략한 메모를 전해왔습니다. 아직 진술하지 못한 사람들의 다음날 ‘진술 시간표’였습니다. ‘업무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진술 시간표’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진술시간이 몇 시인지 확인하고는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인사위원회가 임의대로 조절한 제 진술시간, 9월 25일 오후 15시....이 시간은 이미 회사가 저를 고발함에 따라, 경찰로부터 출석을 통보받은 시간(오후 14시)과 겹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도 그런 건지, 몰라서 그런 건지...제 능력을 너무 높게 보신 건지...그 맹목과 무책임함에, 그리고 그 분들이 제가 10년간 모셔왔던 분들이란 사실에 온 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지난 세월, 저는 없는 능력이지만 열심히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누구 말대로 사회부에서 4년 동안 굴러보기도 하고, 말도 안되는 특집도 회사에 도움된다는 말 한마디에 군말하지 않고 제작했습니다. 덕분에 특종상, 공로상도 받아봤고, 우수프로그램상도 받아봤고, ‘모범사원상’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제 개인 인사기록에는 지금 인사위원 몇몇 분의 개인 인사기록처럼 ‘징계’ 이력이 없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돌발영상팀은 작년 연말 종무식에서 회사로부터 ‘YTN 대상’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지금부터 1시간 뒤,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회사의 고발에 따른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회사의 징계를 받으러 인사위원회에 가야 할까요? 무엇보다 앞으로...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해야 될까요?

‘입가의 진한 쓴웃음’은 ‘가슴 속의 진한 눈물’을 동반한다는 사실도 지금 처음 알게 됐습니다. 쓰다보니 길어졌군요. 수습때 기사 길게 쓴다고 항상 엄히 꾸짖던 선배 얼굴이 떠오릅니다. 10년 기자 생활해도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가 봅니다. 일단 경찰서부터 가고 보겠습니다. 다녀 오겠습니다.

2008년 9월 25일, 남대문 경찰서 출석 30분 전 정유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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