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경고’ MBC ‘북극의 눈물’
‘온난화 경고’ MBC ‘북극의 눈물’
발밑 무너지는 얼음…조연출 ‘보낼 뻔’
‘시네플렉스’ 장착 헬기로 명장면 건져
발밑 무너지는 얼음…조연출 ‘보낼 뻔’
‘시네플렉스’ 장착 헬기로 명장면 건져
한겨울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청량음료 광고 속 흰곰이 불현듯 낯설어 보인다면, 월요일 출근길에 자가용 시동을 거는 손이 머뭇거려졌거나 일회용 컵을 쓰는 커피자판기 앞에서 잠시 주저했다면, 당신은 문화방송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을 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북극의 눈물>이 재방송된다. 내년 1월1일 ‘풀을 뜯어 먹는 북극곰’이 다시 시청자들과 만난다. 아직 종영도 되지 않은 다큐멘터리가 시청자들의 호응에 재방송 편성이 결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시청률 12%는 지난해 화제를 몰고 온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와 견줄 만하다. 제작비 20억원은 이미 <차마고도>(12억원)를 넘어섰다. 지난 7일 한국방송의 다큐멘터리 <누들로드>까지 10%의 시청률을 기록해 ‘명품 다큐’의 전성시대가 왔다는 호들갑에도 “무관심만 아니면 만족한다. 북극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인데도 아직도 하얀 벌판이 아른거린다”는 제작진을 10일 만났다.
■ 북극이 던진 엄중한 경고는 북극의 5월은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갈 만큼 추웠다. 북극의 빙판을 가로질러 사냥하러 가는 원주민 ‘이누이트’를 찍기 위해 제작진은 스노모빌 대신 직접 개썰매를 타고 첫 촬영에 나섰다. 사흘을 꼬박 달리다 잠깐 숨을 돌리는 틈. 조연출 김민아 피디가 없어졌다. 조준묵 피디는 김 피디가 얼음언덕을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화장실에 가는구나’ 했다. 그때 갑자기 이누이트 한 사람이 노를 들고 얼음둔덕을 향해 내달렸다. 몇 해 전만 해도 쇄빙선도 엄두를 못 내던 5월의 얼음벌판이 힘없이 무너진 것이다. 온난화의 경고였다. 얼음 아래로 빠진 김 피디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이누이트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린 제작진은 실제로 14년 전 <그린란드-에스키모들과의 100일>에 출연했던 주인공 네 사람 가운데 둘이 빙판이 갈라지면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작진은 몇 해 만에 텔레비전 화면에 다시 등장해 “우리는 얼음벌판의 사냥꾼이 아니라 빙하가 녹아내린 북극해의 어부”라는 이누이트들의 한숨을 들어야 했다. 바다표범, 일각고래를 사냥하고 해체하는 일부 장면이 방송용으로 부적합했다는 지적에 대해 조 피디는 “고래를 잡아 해체하는 것을 잔인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누이트들이 사냥한 뒤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제작진만 해도 떠난 자리를 늘 청소해야 했다. 촬영 기간 내내 이누이트들의 삶을 보면서 진짜 북극을 녹이고 망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 발밑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하 25도를 넘나드는 북극에서 가장 속을 태운 것은 동물 출연진. 카메라가 돌지 않는 온도까지 내려가는 혹한보다 북극곰과 순록, 일각고래 등을 영영 못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더 무서웠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 동물들의 개체수가 줄어든 탓이다. 총을 든 이누이트가 말리는데도, 시속 40㎞의 속도로 달린다는 굶주린 북극곰을 10m 이내에서 근접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공포 뒤에 맛본 쾌감 때문이었다. 굶주린 북극곰은 공포탄을 쏴도 물러나지 않을 만큼 촬영에 협조적(?)이었지만, 캐나다 북부 툰드라 지대의 순록은 끝까지 말썽이었다. 극도로 예민해서 순록떼를 찾아도 정지 장면 한 컷을 건지기가 쉽지 않았다.
공중 촬영은 시네플렉스라는 장비를 단 헬기가 맡았다. 기존 헬기 촬영 방식에서 한발 나가 2㎞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헬기의 앞부분에 붙인 망원렌즈로 흔들림 없이 근접 촬영의 느낌을 살릴 수 있다. 헬기 소리나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동물의 모습만 보였던 다큐멘터리에서 낮잠 자는 북극곰의 모습이나 순록의 대이동 장면은 시네플렉스 덕에 가능했다. 제작진이 꼽은 최고의 장면은 2부에서 바다표범이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크리스티나(32)라는 독일의 잠수 전문가가 촬영했다. 조 피디는 “북극해에 잠수를 하고 올라오면 입 주위에 고드름이 달릴 정도였다”며 “크리스티나가 이를 악물고 촬영을 강행했던 것은 북극에 미쳤다는 그가 북극을 지키는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는 1부에서 일각고래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잡아내기도 했다. 후반 작업을 통해 극장판으로 기획하고 있는 <북극의 눈물>은, 21일 3편 <해빙, 사라지는 툰드라>가 방영된다. 캐나다 북부 툰드라 지대에서 순록의 대이동, 늑대의 순록 추격전, 이누이트들의 순록 사냥 등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28일에는 <북극의 눈물> 제작기가 방송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음악·CG·내레이션…‘후반 작업’ 명품 좌우
K-1 ‘누들로드’에선 켄 홈·윤상 함께 작업
문화방송 다큐 <북극의 눈물>과 같은 날 방영된 한국방송(1TV) 다큐 <누들로드>의 인기 또한 만만찮다. 문명의 전파와 국수의 상관관계를 고찰하며 또다른 비단길(실크로드)을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년 1월3일 방영되는 2부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두 작품이 기존 다큐와 차별성을 갖는 것은 후반 작업 덕분이다. 내레이션, 음악, 컴퓨터그래픽 등 명품 자격을 갖추기 위한 그들만의 레시피를 들여다본다.
■ 내레이션…<북극의 눈물> 안성기와 <누들로드> 켄 홈 방영 전부터 배우 안성기의 내레이션은 화제가 됐다. <북극의 눈물> 제작진은 “안성기씨가 주는 금속성이 섞인 성에 같은 느낌의 목소리와 북극 얼음벌판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해 제안을 했다”며 “제작 의도만으로 출연료 논의 없이 승낙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성기는 차분한 진행으로 비극적인 상황을 사실감 있게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극의 눈물>에 안성기가 있다면 <누들로드>에는 중국계 미국인 켄 홈(사진)이 있다. 켄 홈은 영국 비비시에서 20년이 넘는 기간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아시아 요리에 관한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한국방송은 지난해 <차마고도>의 성공에 힘입어 세계시장을 겨냥한 전략의 일환으로 켄 홈을 내세웠다.
■ 음악…<북극의 눈물> 심현정과 <누들로드> 윤상 두 다큐에서 인상적인 또다른 부분은 음악이다. <누들로드>에선 현재 뉴욕대 대학원에서 뮤직 테크놀로지를 전공하고 있는 윤상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윤상은 “6년 동안의 공부를 정리하는 작업”이라며 <누들로드> 음악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북극의 눈물>의 음악을 맡은 심현정 음악감독은 이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 등으로 대종상영화제 음악상을 받는 등 영화계에서는 소문난 실력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밖에 <누들로드> 1부에서 켄 홈이 송나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듯한 실감나는 자동차 장면은 3차원(3D)으로 그려낸 것. 별도의 그래픽이 아닌 실사와의 합성을 보여주는 브이에프엑스(VFX) 기법의 등장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후반 작업에서는 이례적으로 <한반도의 공룡>에서 공룡 못지않다. 하어영 기자, 사진 한국방송 제공
[한겨레 주요기사]
▶ 북태평양에 한반도 3배 ‘쓰레기 섬’ 있다
▶ ‘대운하 양심선언’ 김이태 연구원 ‘징계’ 추진
▶ 휴대전화 단말기 ‘진화’ 가로막은 SKT
▶ 친재벌·과거 회귀 ‘입법 역주행’ 강행

겨울이 되자 북극의 툰드라 지대에서 캐나다 북부 마니토바주로 이동한 순록들이 눈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
■ 북극이 던진 엄중한 경고는 북극의 5월은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갈 만큼 추웠다. 북극의 빙판을 가로질러 사냥하러 가는 원주민 ‘이누이트’를 찍기 위해 제작진은 스노모빌 대신 직접 개썰매를 타고 첫 촬영에 나섰다. 사흘을 꼬박 달리다 잠깐 숨을 돌리는 틈. 조연출 김민아 피디가 없어졌다. 조준묵 피디는 김 피디가 얼음언덕을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화장실에 가는구나’ 했다. 그때 갑자기 이누이트 한 사람이 노를 들고 얼음둔덕을 향해 내달렸다. 몇 해 전만 해도 쇄빙선도 엄두를 못 내던 5월의 얼음벌판이 힘없이 무너진 것이다. 온난화의 경고였다. 얼음 아래로 빠진 김 피디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이누이트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린 제작진은 실제로 14년 전 <그린란드-에스키모들과의 100일>에 출연했던 주인공 네 사람 가운데 둘이 빙판이 갈라지면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작진은 몇 해 만에 텔레비전 화면에 다시 등장해 “우리는 얼음벌판의 사냥꾼이 아니라 빙하가 녹아내린 북극해의 어부”라는 이누이트들의 한숨을 들어야 했다. 바다표범, 일각고래를 사냥하고 해체하는 일부 장면이 방송용으로 부적합했다는 지적에 대해 조 피디는 “고래를 잡아 해체하는 것을 잔인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이누이트들이 사냥한 뒤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제작진만 해도 떠난 자리를 늘 청소해야 했다. 촬영 기간 내내 이누이트들의 삶을 보면서 진짜 북극을 녹이고 망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린란드 최북단 마을인 ‘카낙’에 사는 이누이트들이 개썰매를 타고 사냥에 나서고 있다.
■ 발밑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하 25도를 넘나드는 북극에서 가장 속을 태운 것은 동물 출연진. 카메라가 돌지 않는 온도까지 내려가는 혹한보다 북극곰과 순록, 일각고래 등을 영영 못 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더 무서웠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 동물들의 개체수가 줄어든 탓이다. 총을 든 이누이트가 말리는데도, 시속 40㎞의 속도로 달린다는 굶주린 북극곰을 10m 이내에서 근접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공포 뒤에 맛본 쾌감 때문이었다. 굶주린 북극곰은 공포탄을 쏴도 물러나지 않을 만큼 촬영에 협조적(?)이었지만, 캐나다 북부 툰드라 지대의 순록은 끝까지 말썽이었다. 극도로 예민해서 순록떼를 찾아도 정지 장면 한 컷을 건지기가 쉽지 않았다.
공중 촬영은 시네플렉스라는 장비를 단 헬기가 맡았다. 기존 헬기 촬영 방식에서 한발 나가 2㎞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헬기의 앞부분에 붙인 망원렌즈로 흔들림 없이 근접 촬영의 느낌을 살릴 수 있다. 헬기 소리나 인기척에 놀라 도망가는 동물의 모습만 보였던 다큐멘터리에서 낮잠 자는 북극곰의 모습이나 순록의 대이동 장면은 시네플렉스 덕에 가능했다. 제작진이 꼽은 최고의 장면은 2부에서 바다표범이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크리스티나(32)라는 독일의 잠수 전문가가 촬영했다. 조 피디는 “북극해에 잠수를 하고 올라오면 입 주위에 고드름이 달릴 정도였다”며 “크리스티나가 이를 악물고 촬영을 강행했던 것은 북극에 미쳤다는 그가 북극을 지키는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는 1부에서 일각고래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잡아내기도 했다. 후반 작업을 통해 극장판으로 기획하고 있는 <북극의 눈물>은, 21일 3편 <해빙, 사라지는 툰드라>가 방영된다. 캐나다 북부 툰드라 지대에서 순록의 대이동, 늑대의 순록 추격전, 이누이트들의 순록 사냥 등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28일에는 <북극의 눈물> 제작기가 방송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문화방송 제공

음악·CG·내레이션…‘후반 작업’ 명품 좌우
K-1 ‘누들로드’에선 켄 홈·윤상 함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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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 단말기 ‘진화’ 가로막은 S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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