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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변희봉 ‘40년 연기내공’으로 시를 읊다

등록 2009-01-15 18:11

KBS1 ‘낭독의 발견’서 연기인생 회고
드라마가 아닌 영화 업계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칭이 어울리는 현역 배우를 꼽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배우 변희봉(67)이다.

지금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과 40년 연기 인생의 첫 주연작 <더 게임>(2008)을 통해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섰지만, 1970~80년대 변희봉은 사이비 교주, 인민군 졸병, 파렴치한 친일파 등 악역을 도맡았던 브라운관 속 만년 조연이었다. 한국방송 1TV는 16일 밤 12시 <낭독의 발견>에서 오랜 시련과 기다림을 이겨내고 충무로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로 우뚝 선 변씨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가 방송계에 입문한 것은 1965년 문화방송 성우 공채 2기 시험을 통해서였다. 그 시절의 동기로는 전운·송재호씨 등을 꼽을 수 있다. 성우로 방송 데뷔는 했지만,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출연 기회는 많지 않았다. 이후 연기 쪽에서 돌파구를 찾지만 광대뼈가 튀어나온 그로테스크한 외모와 카랑카랑한 목소리 때문에 돌아오는 역은 <수사반장>의 잡범, <113 수사본부>의 간첩, 3·1절 특집극의 왜놈 앞잡이, 8·15 특집극의 이완용의 인력거꾼 등이었다.

젊은 시절의 울분을 어루만지듯 그가 처음 낭독하는 시는 윤동주의 <자화상>.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중략… 돌아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어쩐지 그리워집니다”

그를 대중의 기억 속에 각인시킨 작품은 문화방송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설중매>의 간신 유자광. 변씨는 한때 “이 손 안에 있소이다”라는 유행어로 대한민국을 뒤흔들기도 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그를 찾는 연출자는 줄어들었고, 그는 끝없는 기다림에 내몰려야 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신경림, <갈대>)

긴 기다림은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이후 그는 <살인의 추억>(2003), <괴물> 등 한국 영화가 기억하는 영광의 순간의 중심에 있었다. “해가 갈수록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는 변씨가 남기는 마지막 시편은 마종기의 <방문객>.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손으로 내가 받는다.”

방송을 연출한 이병창 피디는 “성우 출신의 공력으로 낭송되는 시마다 뜨거운 열정을 담으셨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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