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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300초 영상이 주는 저릿한 각성

등록 2009-02-08 17:51수정 2009-02-08 19:29

300초 영상이 주는 저릿한 각성
300초 영상이 주는 저릿한 각성
EBS 간판 프로 지식채널 e 빛나는 500회




‘고정관념을 향한 500번의 구타.’

교육방송의 5분짜리 교양 프로그램 <지식채널e>(매주 월~금 밤 9시45분)가 9일로 방송 500회를 맞는다. 5분 안에 정치·사회적 이슈를 인문적 시각으로 조망하는 색다른 얼개를 선보인 2005년 9월5일의 첫 방송 이래 이 짤막한 교양물은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간판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방영분을 담아 출간한 책 시리즈는 1~3권이 30만부나 팔려나갔고, 영상과 책은 중·고교 논술 교재로 쓰일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이런 성과와는 별개로 지난해 5월엔 영국의 광우병 문제를 다룬 ‘17년 후’가 방영되지 않고, 이어 8월 연출자 김진혁 피디가 교체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프로그램을 없애라는 외부의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뒤 <지식채널e>는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듯 나치 독일 선전장관 괴벨스를 다룬 ‘괴벨스의 입’과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다룬 ‘3년’ 등의 날 선 영상을 보란 듯 내놓아 다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지식채널e>의 존폐를 둘러싼 우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영국 광우병 ‘17년후’ 외압 불방
연출자 교체…이후 시련 진행중
논술 교재 각광…패러디 광고도



300초 영상이 주는 저릿한 각성
300초 영상이 주는 저릿한 각성
■ 직설에서 은유로, 객관식에서 주관식으로 500회 성찬을 차릴 겨를이 없을 만큼 <지식채널e>의 ‘현재’는 녹록지 않다. 우선 프로그램 성격이 변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9월 피디 교체 뒤 방송분을 되짚어 보면 소재들이 사회적 현안보다 인간, 지식·정보, 자연 등에 집중돼 있다. 자연재해 등이 불러오는 또다른 ‘기회’에 대한 이야기인 ‘변화의 조건’(2008년 12월1일) 편에서는 약육강식의 현실을 합리화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제작진은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 “자연재해까지 강자들이 탐욕을 채우는 데 활용돼 온 현실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변화와 기회가 누구 몫일까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반전의 긴장감이나 소재 선택·편집의 과감성이 무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우 피디(사진)는 “과거엔 시사적 내용을 중심으로 직유법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좀더 많은 은유와 상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이전이 객관식이었다면 현재는 주관식으로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김진혁 피디가 돌아오게 하라는 시청자들이 있다(웃음). 지향점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담당자 교체에 따라 스타일이 변한 것이다.”

하지만 <지식채널e>를 제작했던 한 관계자는 “이 프로그램은 작가의 노하우가 절대적인데 갑작스런 인사로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당시 작가 6명 가운데 2명만 작업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긴장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첫 방영부터 3년 동안 프로그램을 이끈 김진혁 피디는 “현재 언론 환경에서 <지식채널e>를 지켜가는 것도 쉽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 5분짜리 영상 백과사전 ‘영상 백과사전을 만들고 싶다’는 제작진의 꿈은 누리꾼들의 ‘펌질’을 만나 현실이 되었다. 사이코패스를 다룬 ‘공감 무능력자’, 작가 조세희씨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200쇄를 맞아 방영한 ‘부끄러운 기록’ 등은 각각 연쇄살인범 강아무개씨와 용산 철거 참사와 맞물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정작 방영분은 이들 사건이 터지기 한참 전에 만든 작품이다. ‘공감 무능력자’는 지난해 4월, ‘부끄러운 기록’은 2006년 5월에 제작됐다. 과거 영상물이지만 ‘공감 무능력자’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사이코패스와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와 음악을 통해 강씨의 얼굴에 말초신경을 자극받은 시청자들의 흥분을 가라앉혀 주었다. ‘부끄러운 기록’ 또한 철거민에서 농민, 비정규직 이야기로 사회적 논의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시 보기’에서 ‘찾아보기’와 ‘(블로그나 홈피에) 두고 보기’로 진화하고 있는 <지식채널e>의 500개 창고는 광고업계의 교본으로 떠올랐다. “자막 글자체뿐 아니라 폰트까지 따라 하는 광고가 생겼다”(디지털 편집 김성욱 감독)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식채널e>의 편집·음악·자막 등의 표현방법은 광고에서 쉽게 확인된다. 특히 검은 화면에 ‘그리고’나 ‘그러나’란 글자만 나오다 다음 장면에서 내용 반전을 꾀하는 방식은 홈쇼핑 광고에도 등장한 지 오래다.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피겨스타 김연아의 대기업 가전 광고 동영상은 <지식채널e>의 패러디. ‘사람을 향한다’는 한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 또한 <지식채널e>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기도 했다.

한편, <지식채널e>는 500회 편으로 독일 판화가 케테콜비츠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어머니의 그림’을 방송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교육방송 제공

“지식채널e만의 색깔 살려야죠”

500화두 숨은 공신 이미성 음악감독
시청자 문의 쇄도…아예 따로 게시판


<지식채널e>를 구성하는 세 요소로 제작진은 편집, 자막과 함께 음악을 꼽는다.

자료 수집과 구성(1주)을 빼면 가편집부터 최종 편집까지 1주일이 걸리고, 그 가운데 음악 작업에 꼬박 하루가 들어간다. 프로그램의 분량과 다큐멘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음악 작업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이는 셈이다. 500회의 모든 음악에 참여한 이미성 음악감독은 이 프로그램의 또다른 산증인이다.

이 감독은 <지식채널e>에서 소개된 음악을 모은 음반을 준비 중이다. 이 프로그램의 음악은 초기부터 화제였다.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 편의 ‘이프 유 아일 비 마인’(베이비 버드 밴드)이나 ‘17년 후’ 편에 나온 ‘이 가이르’(시규어 로스 밴드) 같은 음악에 대해선 방송 뒤에 질문이 쇄도했고, 결국 누리집 게시판에 음악 질문 코너가 마련됐다. 다큐멘터리 음악에 대한 관심이 게시판 설치로 이어진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면서 <지식채널e>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주어진 5분 동안 이 감독이 음악을 구성하는 원칙은 ‘글이나 영상이 감성적이라면 음악은 건조하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음악은 감성의 빈자리를 채우자’는 것. 팝, 클래식, 뉴에이지, 가요 등 음악의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다만 ‘프로그레시브 록’이나 ‘멜로딕 메탈’, ‘개라지 록’ 등 마니아를 위한 음악을 되도록 자주 등장시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 감독은 “‘호기심에 관한 아주 짧은 이야기’의 음악에 쓰인 영국 심포니 록 그룹 ‘이엘오’ 같은 아티스트들은 밴드의 탄생이나 음악 외적 활동을 보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하는 정신이 살아 있다”며 “<지식채널e>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자주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식채널e>뿐 아니라 ‘이비에스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등 교육방송 다큐멘터리의 음악 대부분을 맡아온 그는 최근 호평을 받은 교육방송 ‘한반도의 공룡’ 음악도 담당했다.

하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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