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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블로그] 에티켓마저 앗아간 <아내의 유혹>

등록 2009-04-01 14:06

어제였다. 여느 때와 같이 저녁 7시 넘어 마포경찰서 앞에서 600번 버스를 탔다. 퇴근길이다. 들고나는 사람으로 버스 안은 붐비지만, 어쨌든 집으로 가는 길은 즐거워야 한다.

 그러나 마포대교를 건널 때쯤 됐을까…. 라디오도 아닌 것이, 사람의 대화도 아닌 요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옥타브 높은 독기 어린 목소리… <아내의 유혹> 신애리였다. 누군가가 버스 안에서 이어폰도 없이 휴대전화로 <아내의 유혹>을 시청하고 있었다. 만원버스 안이라 정확한 진원지를 알 수는 없었지만, mp3을 통해 라디오를 듣던 내 귀에도 들릴 정도이니, 작지 않은 소리였다.

혀를 끌끌 차며 영등포 등기소 정류장에서 6637번으로 갈아탔다. 목동 쪽에서 나온 버스에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민소희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유혹> 팬은 이 버스에도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아내의 유혹>에 나도 한때 관심을 가졌더랬다. 구은재가 민소희로 변신하고 복수를 다짐하던 시기였다. 나름 분석해보니, 이 드라마의 '매력'은 빠른 극 전개에 있었다. 온갖 우연과 부조리가 난무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너무 빨라 이게 말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를 판단할 수 있는 여유조차 시청자에게 주지 않았다. 시청하며 이성을 작동할 필요가 없는 드라마였다.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공공장소에서는 휴대전화로 TV를 보고 싶어도 이어폰이 없으면 보지 말아야 한다. 그게 공중도덕이고 에티켓이다. 그러나 <아내의 유혹> 중독자들은 남에게 피해가 될줄 알면서도 드라마를 보고 싶은 욕망을 떨치지 못한다. 이성의 ‘마비’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이어폰 없이 TV를 보는 개념 없는 사람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다. <아내의 유혹>이 공헌한 바가 크다.  

 최근에는 진짜 민소희가 거짓말처럼 살아와서 복수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구은재와 신애리가 힘을 합쳐 민소희를 쳐부순다고 한다. 한때 이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셨던 칠순의 우리 부모님도 “너무한다”고 하실 정도다. 팬들도 이젠 지쳤다. 게다가 타인에게 드라마 ‘청취’를 강요하는 모바일 팬들의 몰지각한 행동은 현실에서의 ‘막장’을 연출하고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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