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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성별 넘어 시청자 생활패턴까지 고려…“생존 위한 수단”
케이블 채널은 전쟁터 방불…시청률 지상주의 자성 목소리도
케이블 채널은 전쟁터 방불…시청률 지상주의 자성 목소리도
■ 데이, 블록, 크로스… ‘오전 9시 로맨스→족, 오후 2시 블록버스터→코미디, 밤 10시부터 수사물→호러’. 케이블 방송에 요즘 새롭게 등장한 편성 공식이다. 처음 이런 편성을 선보인 곳은 다채널 프로그램 공급업체인 온미디어. 박호식 온미디어 영화사업부 편성팀장은 “시청자들의 시간대별 생활 패턴을 분석해 30대 여성이 리모컨을 잡는 오전 9시부터 30·40대 남성들이 리모컨을 넘겨받는 밤 10시까지 고려한 ‘라이프 스타일’ 편성을 시작했다”며 “시청률과 생활 패턴을 동시에 고려했다는 점에서 첫 시도”라고 했다.
생활 패턴까지 분석하는 편성 전쟁의 첫 신호탄은 2006년 시작된 ‘데이’ 편성이다. <시에스아이>(CSI)라는 미국 수사드라마의 인기 있는 에피소드만 추려서 온종일 방송하는 파격을 선보인 것이다. 기존에 방송된 에피소드들이었음에도 2006년 첫 방송 당시 최고 10%의 시청률로 케이블 채널 전체 시청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면서 편성 전략만으로도 시청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현재 데이 편성은 영화 채널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 등 갈래(장르)를 가리지 않고 특집 편성에 적용되고 있다.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은 어린이날인 5월5일을 ‘빅뱅 데이’로 정해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인기 가수 빅뱅의 다큐멘터리와 뮤직비디오 등을 방송해 10~20대의 여성 시청자 기준 시청률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위성 채널 애니맥스의 구본승 팀장은 “거액을 투자한 고급 콘텐츠를 앞세워 시청률을 극대화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채널별로 이미 방송된 보유 콘텐츠를 솜씨 좋게 재탕하는 편성 방식도 널리 쓰이고 있다”며 “소규모 채널들이 채널 자체를 알리는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의 의미까지 더해져 데이 편성은 케이블 채널의 생존 수단이 됐다”고 말했다.
데이 편성은 콘텐츠의 물량 공세라는 점에서 다른 아이디어를 낳기도 했다. 자사의 주력 콘텐츠 앞뒤로 시리즈를 내보내면서 계열사의 채널을 이용해 앞뒤로 재방송을 내보내는 ‘크로스’ 편성을 시작한 것이다. 월·화나 월·수·금 등 특정 요일을 개념상의 블록으로 만들어 장르를 배치하는 편성은 기본이고, 한국방송 <꽃보다 남자>의 인기를 등에 업고 월·화를 ‘꽃남 데이’로 공격 편성하는가 하면, <엑스맨-울버린의 탄생> 개봉일 직전 <엑스맨> 1~3편을 집중 편성하는 것처럼 좀더 세분화된 방법을 쓰기도 한다.
■ 짱구, 짱구, 짱구, 못 말리는 편성 “짱구를 수년째 수백번씩 편성하는 게 과연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유익한 일인지 반성해 봐야 합니다.”(한 지상파 편성 관계자)
시청률 지상주의로 치닫는 편성 흐름 속에서 최소한의 규칙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비판의 중심에는 어린이 채널이 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시청률 5% 이상을 기록했던 <뽀뽀뽀>나 <티브이 유치원>은 현재 1%도 안 되는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다. 그만큼 콘텐츠가 다양하고 풍부해진 탓도 있지만, 어린이 채널들이 상당 부분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애니메이션 중심으로 ‘반복’ 편성한 것이 주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실제로 부모들의 텔레비전 시청 지도가 잘 되지 않는 오후 애니메이션 채널들의 시청률이 상승한다”며 “일부 어린이 채널들은 특히 그 시간대에 무책임한 반복 편성을 통해 어린이들을 붙잡아 둔다. ‘어린이’ 채널이므로 흥미 유발뿐 아니라 교육적인 고려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데이 편성의 획일적 유행에 대한 자성으로 최근에는 틈새·대안 편성 전략도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지형 온미디어 피디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을 수도 없고, 디브이디로도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을 예전 비디오가게를 찾듯 채널들을 골라 찾을 수 있도록 편성시간대를 발굴할 계획”이라며 “비디오가게식 편성으로 보면 되겠다”고 말했다. 김유열 교육방송 편성기획팀장도 “지난해 틈새, 대안 편성에 바탕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공격적인 배치로 교양 채널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며 “방송사와 시청자의 공익을 위해서도 단기간 수익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편성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만화책 짱구는못말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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