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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내 몸에 귀신이…‘욕하면서 보는’ 심령프로

등록 2009-06-15 08:32수정 2009-06-15 09:08

지난해부터 급증…‘고스트 스팟’ ‘엑소시스트’ 등 10여 개 방송중
소재·제작비 부담 적고 시청률 좋아…조작·선정성 논란도 뒤따라
“왼쪽 팔에 마비가 와요. 더 못하겠어요.”

지난달 서울의 한 케이블 방송사 면접장 풍경. 한 20대 여성이 테이블에 기대어 힘겨운 모습으로 면접 중단을 요구한다. 이 여성은 올해 초 병원에서 ‘공황장애’, ‘과호흡증’ 진단을 받았다. 병원 간호사이기도 한 그는 면접 내내 귀신이 느껴진다고 하소연한다. 왼쪽 팔의 불편한 느낌은 귀신이 몸에 들어오거나 주변에 있다는 신호라고 주장했다.

여느 면접장처럼 대기 장소에는 대기자 30여명이 웅성인다. 이들은 정신 병력 등을 포함한 서류 전형으로 선발된 사람들이다. 이날 면접에서는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의 심령프로그램 <엑소시스트> 1주년 특집에 출연할 10명을 최종 선정했다. 모두 “몸 속에 귀신이 들어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다. 팔이 마비됐다는 여성도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결국 출연은 거부했다.

■ 불황타고 급증

지난해부터 심령 프로그램은 급증했다. 대표적인 것들이 시즌4를 준비 중인 코미디 티브이의 <고스트 스팟>, 이달들어 1년이 된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의 <엑소시스트>, 엠비시 에브리원 <미스터리 엑스파일>(지난 4월 종영), 큐채널 <리얼 엑소시스트> 등이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시청자 제보 프로그램까지 감안하면 10여개 이상이 매주 심령의 세계를 다룬다. 구성 내용이 대부분 제보로 이뤄져 소재 개발의 고충을 덜 뿐만 아니라, 출연료 등 제작비 부담도 없어 일석이조다. 시청률 한자릿수도 올리기 힘든 케이블 채널의 경우 1%를 웃도는 기본 시청률은 훌륭한 덤이다. 한 케이블 채널의 외주 제작 피디는 “심령 프로그램을 맡기 전에는 주로 시사교양물을 전담했다”며 “제작 기간, 비용 등이 문제가 돼 교양물 제작 요구가 크게 줄었고, 상대적으로 심령 프로그램 수요는 늘었다”고 말했다.

■ 조작? 선정적?

심령 프로그램에서 늘 의심을 사는 것은 조작 여부다. 제작진들은 이구동성으로 “확인되지 않은 현상을 방송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림을 위해 조작하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방송분을 보면 빙의된 사람에게 퇴마술을 하거나, 흉가에 떠도는 원혼이 있다며 제를 올리는 장면의 섬뜩함이 그대로 묻어나지만 실제 제작의 이면은 ‘기다림’과 ‘실패’의 연속이라고 한다. <엑소시스트>의 최영락 피디는 “병원에서 정신질환자가 아니라고 판단했음에도 심령이 보이거나 자신의 몸을 움직인다는 괴로움에 찾아왔다는 이들이 정작 카메라 앞에서는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했다.

선정성 또한 끊임없이 지적된다.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이상 행동을 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고부 갈등을 귀신때문이라고 한다거나(<고스트 스팟>), 배우자나 약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생과부살’을 사실인 것처럼 방송하고(<미스터리 엑스파일>), 영혼 결혼식을 위해 4명이 접신한다는 묘사(<엑소시스트>) 등 심령 세계의 해석과 처방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3월엔 티브이엔이 <특종의 재구성>이란 프로그램 꼭지에서 자살한 배우 고 정다빈씨를 ‘접신’했다는 무속인의 입을 통해 “내가 죽으려 한 것은 아니다. 술에 취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등의 내용을 방송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방송사 제작진은 “의뢰자들 대부분은 병원 치료 등에 효과를 못보고 더이상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들에게 제의를 통해 일종의 정신적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무속인들의 입을 빌어 실종 아동 찾기 같은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부모가 애타는 마음에 찾아왔더라도 제작진이 걸러냈어야 한다”고 말했다.

케이블 채널에서 기공퇴마사로 출연 중인 이중환씨는 “빙의라는 게 사실 심령에 관계된 것이지만 그 안에는 무너진 가족 관계나 불황 등이 가져온 사회·경제적인 어려움, 어렸을 적 가정폭력 등의 개인사 등이 얽히면서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화면에는 무조건 퇴마술이나 굿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제작진이 정신질환 치료나 가족 관계 회복을 먼저 권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었다.

날선 비판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의 김영미 모니터팀장은 “한국전쟁 당시 집단 학살된 원혼들이 떠돌고 있다는 내용의 방송처럼 사회적 맥락에서 접근해 역사적 사실을 우회적으로 알려내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식의 접근은 신선했다”며 “자살자나 가족 내 갈등을 심령술사의 제의에만 의존하지 말고 사회적 맥락이나 심리적 맥락까지 다층적으로 접근하면 좀 더 발전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티브이엔 코미디 티브이 큐채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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