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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여배우들’ 속 캐릭터? 딱 내 모습이죠

등록 2009-12-07 08:49

이미숙
이미숙
이재용 감독 믿었기에 선뜻 출연
60살에 로맨스 영화 해보고싶어
나이가 어울리지 않는 배우 이미숙

1980년대에 사춘기를 통과한 남성들에게 이미숙(49)은 그냥 여배우가 아니었다. <고래사냥>(1984), <겨울 나그네>(1986)의 맑은 이미지로 숱한 청춘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80년대의 첫사랑이었다.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80년대의 첫사랑’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생기가 넘쳤다. 배우로서의 자세만은 나이에 걸맞은 어르신이었다.

-영화 <여배우들>에서 속사포 같은 말투로 솔직한 말을 마구 쏟아내시더군요.

“정확히 저예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을 내뱉는 거나 좀 유머러스한 게 딱 저의 모습이에요.”

-자기를 내보이는 거라 선뜻 출연을 결정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았어요. 배우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번쯤 다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재용 감독이 그런 얘기를 잘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100% 감독을 믿고 간 거예요. 난무하는 정보 속에서 배우 자신이 떠드는 이야기니까 진실이잖아요.”

-관객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부분이 연기와 실제의 경계선일 텐데, 어디까지가 대본이고 어디부터가 애드리브인가요?

“대본은 전혀 없었어요. 무슨 얘기 하면 좋은지 주제어만 던져준 거지. 워낙 중구난방으로 많은 얘기를 쏟아내서 시사회 때 내가 얘기하는 장면에서도 못 알아들어서 옆에다 물어봤어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되어서 신나게 떠들었어요. 대본으로 연습한다면 그렇게 안 되죠. 이 배우들이 한 거 또 시키면 안 할 사람들이에요. 감독이 그걸 너무 잘 알죠.”


이미숙
이미숙

-이혼 얘기가 나올 때는 가장 먼저 눈물을 보이셨는데요.

“속상해서 운 건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얘기 못하고 사는 게 슬펐던 거죠. 저도 그거 찍고 나서 신파 같다고 그랬는데, 시사회 때 다시 보니까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 계산되지 않은, 진실한 감정이었던 거죠. 울자고 시작한 건 아니었고, 그냥 진솔한 토크를 해보자는 거였는데.”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노력이죠 뭐. 외모부터 정신세계까지. 아침에 눈떠서 잘 때까지 일만 생각해요. 가족이나 남자, 친구, 술, 이런 건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아니에요. 공과금 낼 걱정, 친구 만나 수다 떨 생각, 이런 개인사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배우의 길을 선택한 뒤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연기는 기본이고, 후배들에게 어떤 걸 남겨주어야 하나. 아직도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 같아요.”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란 뭔가요?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요. 이를테면 60살에도 로맨스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 식어가는 세대에게 사랑의 불을 확 지펴야겠다는 생각, 그래야 사회가 재미있어지지 않겠나라는 생각이죠. 제가 일에 대한 집착이 좀 강해요.”

-일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 강한데 결혼하고 쉴 때는 어떻게 참았나요.

“저에게는 싸움의 기간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결혼하면 배우 그만둬야 하는 시대였어요. 하지만 타협하지 않았어요. 당장 이길 수 없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깨어 있어야 한다고 늘 속으로 다짐했어요. 마치 독립투사 같았어요. 아이를 낳고 나니까 엄마 배역만 들어오는 거예요. ‘내가 엄마라고 왜 엄마 배역만 해야 돼?’라고 반항했죠. 하고 싶은 작품이 없어서 자의로 쉬었던 거예요.”

-그래서 선택한 복귀작이 <정사>(1998)였군요. 일종의 선구자시네요.

“제 위 선배들 중에는 그런 역할 모델을 한 분이 안 계셨어요. 스캔들 나면 끝, 결혼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죠. 사회가 변한 것도 있지만, 변화를 준비하고 노력한 사람이 있었던 거죠.”

-언제까지 배우로 활동하실 생각인가요?

“배우들이 죽을 때까지라고 얘기 많이 하잖아요. 저도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연기는 계속 하겠지만, 여배우로서 여성의 감성을 가지고 하는 건 앞으로 10년 정도 갈 것 같아요. 배우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일상생활에서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60살에도 연애를 한다든가. 사랑도 천편일률적인 사랑이 아니라 획기적인 사랑을 해야죠. 저랑 비슷한 연배 만나서 서로 등 두드려주고 이런 거 싫어요. 한 번 (결혼해서) 살아본 사람이고 두 번째 산다면 남들 하지 못하는 획기적인 사랑을 하고 싶어요. 그런 사랑 어딘가 있지 않을까요.”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영화 ‘여배우들’ 향한 궁금증

영화 ‘여배우들’ 주인공들.
영화 ‘여배우들’ 주인공들.

‘설정’은 어디까지? 갈등 맺고 풀어가는 데까지만…
대본 없는 즉흥연기? “주제만 던져주고 맘껏 떠들어”
‘성격’ 보인 그녀들? 선입견 반영됐지만 실제와 닮아

영화 <여배우들>은 배우가 배우 자신을 연기하는 특이한 영화다. 이런 것도 영화가 되나, 라는 우문에 대해 이재용 감독은 영화로 현답을 들려준다. ‘이런 영화도 가능하다’라고.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할 부분은 어디까지가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가일 것이다. 이 감독은 대본에 대해 “시놉시스 수준의 시나리오에 기본적인 성격(선입견이 반영된)을 부여한 정도”라고 말했다. 여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갈등을 맺고 풀어가는 건 설정이었지만, 나머지는 거의 배우들의 즉흥이라는 얘기다.

이재용 감독은 “질투, 자존심, 미용, 성형, 나이 들어감 등 주제어를 던져주고” 배우들이 마음껏 떠들게 했다. 대본이 없는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배우들의 살아 있는 언어다. 한류스타 최지우의 일본 시장, 이영애의 중국 시장을 거론하던 윤여정은 “나는 그냥 재래시장을 지키려구”라고 말해 좌중의 폭소를 낳고, 고현정은 “좋은 얘기만 하면 지루하잖아요. 우리가 뭐 이비에스(교육방송)예요?”라며 도발적인 발언을 쏟아낸다.

영화 ‘여배우들’ 주인공들.
영화 ‘여배우들’ 주인공들.

기본적인 설정은 이렇다. 2008년 크리스마스이브. 한 패션잡지의 특집 화보 촬영을 위해 20대부터 60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 여섯이 한자리에 모인다. 1시간이나 먼저 도착한 최고참 윤여정은 자신을 몰라보는 스태프들의 푸대접에 기분이 상하고, 이미숙은 특유의 솔직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긴다. 스타 의식이 강한 최지우는 얄밉게 따로 놀며 특별대우를 바라고, 선배에게 깍듯한 고현정은 그런 최지우에게 다짜고짜 시비를 건다. 후배 김민희와 김옥빈이 별 말없이 선배들을 지켜보는 것도 실제와 닮았다. 실제로 젊은 남자 배우들과 염문을 뿌린 고현정은 “같은 소속사”의 미남 후배를 촬영장에 데려오기도 한다.

막판엔 거나한 수다 파티가 벌어진다. 왜 여배우들은 잘 모이지 못하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 땅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한 공감을 거쳐, 여배우들 스스로 처방을 내린다. “우리도 아내가 필요하다”고.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벽 안에 평생을 갇혀 사는 여배우들의 웃음과 눈물에 젖다 보면 동정과 연민을 넘어 묘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된다. 극장문을 나설 때는 마음 잘 맞는 친구들과의 송년회에서 오랜만에 실컷 마시고 떠들고 나온 듯한 쾌감이 들게 하는 영화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는데도 화면이 온통 화려한 색감으로 넘치는 것은 여배우들의 찬란한 존재감 덕분일 것이다. 10일 개봉.

이재성 기자, 사진 뭉클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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