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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블로그] 하이킥이 꿈꾸는 슬픈 현실

등록 2010-02-11 14:56

황정음의 신종 플루 덕분에 일주일간의 휴식을 마친 지붕 뚫고 하이킥은 그간 미처 다하지 못한 수다를 풀듯 에피소드들을 풀어냈다. 그중에서도 어제 100회 하이킥의 신애 생일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신애는 가정부로 일하는 세경이 언니를 따라 해리네 집에 얹혀 사는 아이다. 주인집 딸내미 해리는 신애의 이름보다 빵구똥꾸라는 말을 더 자주 하고, 숙제는 물론 일기까지 당연히 베끼려고 한다. 하지만 산속에서 아빠와 언니랑만 살아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신애는 그런 해리가 서럽기 보다는, 해리가 없는 틈을 타 크레파스를 빌려다 일기를 쓸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빵꾸똥꾸라는 말에도 서러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넉넉하다. 일기 그까짓거 한번 안빌려 줬다고 대놓고 물총을 쏘는 해리의 공격 정도는 입으로 물뿜기로 막아주는 당찬 언니가 있으니까.

언니 세경이가 지훈을 좋아하면서 그녀가 처한 상황과 삶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는데 반해, 신애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어울려 보사마와 묵찌바를 할 정도로 이 가족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러기에 생일이 돌아온 신애가 식구라 생각하는 해리네 가족들의 축하를 기대하는 건 동심의 당연한 기대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처지에 충실하려는 언니는 그것이 자신들의 분수에 맞지않는 행동이라 생각하여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신애는 아침 밥상에서, 언니와 외출 후에, 그리고 잠이 든 그 순간까지도 식구들의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를 기대하지만, 돌아오는 건 언니에 의해 정해진 냉정한 현실이고, 결국 그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물론 아빠는 봄에 돌아오시고, 그래서 언니랑 함께 다시 가족이 모이면 되지만, 어느 틈에 신애에게는 해리와 그의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슬픈 신애의 사연은 일기를 베끼려고 훔쳐간 해리에 의해 알려지고, 뒤늦게나가 온 식구의 축하로 신애의 슬픈 생일은 졸지에 진정한 서프라이즈 파티가 되었다. 물론 앞으로 세경의 앞날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신애의 생일을 축하하는 그 순간만큼은, 짠돌이 순재도, 무심한 현경도, 잔소리쟁이 보석도, 진정한 빵꾸똥꾸 해리도 신애의 가족이었다.

오갈 데 없는 어린 세경이 가정부로 들어와 동생을 데리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말도 안되는 돈을 받으며 순재네 집 생활의 틈바구니에 들어오고, 다가가기엔 너무 막막한 등을 보며 세경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그래도 100회를 맞이한 하이킥의 선택은 그래도 이제는 서로가 가족같은 사이가 된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따스한 모습이었다.

결국 김병욱 월드가 추구하는 건, 그래도 함께 했으면 하는 삶인 것이다. 혹자는 이걸 보고 안이한 결합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혹자는 이걸 보고 불가능한 화합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도 어떤 종이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건이 다양성이듯이, 한 사회를 채색하는 빛깔이 오로지 하나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름을 어떻게 채색하느냐는 것이고. 하이킥 100회의 시사점은, 인색하고 자기 편의적인 해리네 가족이지만, 그럼에도 신애의 생일을 맞이하여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마음가짐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신애는 약자요, 피고용인에 딸린 혹이지만, 그 아이와 함께 하며, 이제는 가족처럼 되어버린 해리네 가족의 넉넉한 변화가 중요한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에 '톨레랑스'가 있다. 우리 말로 옮기면 관용이 적당할까?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품고 가자는 것인데, 그 관용의 물꼬는, 하이킥에서 보여지듯이, 조금 더 가진 쪽에서, 베풀 수 있는 쪽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저렇게 생일 축하 한번 더 해준다고, 세경의 월급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세경이의 짝사랑에 별다른 가능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의 변화는 또 다른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슬프다. 김병욱 월드가 100회 특집으로 관용의 세레머니를 펼치는 그 전날, 빵꾸똥꾸도 법적으로 제재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뎅겅 사장 자리가 날라갔으니......... 가진 자들의 관용은 여전히 드라마 속의 환타지에서나 가능한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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