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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블로그] 추노 속 두 세계관

등록 2010-03-05 15:59

열연을 펼치는 여러 주인공과 조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오늘의 글은 김갑수 씨가 분한 인조에게서 시작해야 겠다.

아니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추노 속의 갈등이 그 시발점은 인조 대왕의 노욕에서 비롯된 것이니, 미안한 일이기보다는 좀 늦었지만 그 본원을 찾아가 보자는 의도랄까.

이덕일 씨의 '조선 왕 독살 사건'이란 책도 있듯이, 조선 시대에는 꽤 많은 왕들이 독살 또는 사살의 의혹을 받고 있다. 영조 대왕의 형이었던 경종이 그 주인공이요, 영조 대왕의 손자인 정조가 또 그 주인공이다. 추노에 등장한 인조 대왕의 아들 소현 세자가 또한 그 주인공이다.

추노 역시 소현 세자의 독살설을 드라마를 통해 보여줬고, 그 배후에 아버지 인조 대왕이 있음을 지그시, 종종 내비치고 있다. 도대체 왜? 하늘이 내려준 천륜이라는 부자 지간인데, 어떻게 아비가 아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드라마 상에서는 어리고 무기력 하게 죽어갔던 소현 세자는 실제에 있어서는 아버지 인조 대왕의 권좌를 흔들 만큼 위협적인 인물과 세력이었다. 그에 비해 흔히 알려지다시피 왕의 이름 끝자에 붙인 '조'가 '종'보다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오죽 하면 임금 이름에 어질 인자를 붙였을까 싶은 인조 대왕은 그 등극에서부터 신하 들에 의해 광해군을 밀어내고 등극된 임금이었으며, 광해군이 주도했던 실용적 노선이었던 친청 정책 대신에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친명 정책을 고수하다 수도를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달아나 결국은 적장 앞에 무릎을 끓어야 했던 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지탱해왔던 권좌는 오히려 그로 하여금 더욱 자신의 입장과 권위에 집착하게 했고, 그 결과 아들 소현 세자와 그 일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

물론 그 사실 여부에 관해서는 아직은 논란이 있는 면이 있지만, 추노에 있어서는 작가 천성일은 그러한 사관에 입각해서 드라마를 전개 시키고 있다. 즉 추노라는 드라마의 근간을 이루는 긴장 관계는 인조 대왕의 권력욕, 탐욕이 그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인 부자 관계를 결단내고 아들을 희생시켰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한 인간의 공적인 욕구와 사적인 관계의 갈등은 근본을 이루는 인조 대왕과 소현 세자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모두에게 관통된다.


우선 소현 세자의 유지를 받드는 송태하, 그는 어느 블로그의 표현 처럼 글로디에이터의 주인공 막시무스와 같은 인물이다. 가족 모두가 전란 속에 희생되었고, 그는 노비의 신분이란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세손을 지키고 세자의 뜻을 따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그 탈출의 여정 속에서 만난 여인 언년이 덕분에 그의 행보는 갈짓자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송태하의 갈짓자는 바로 그가 가진 공적인 신념과 사적인 관계의 갈등의 전형이다. 그는 공적으로는 세자의 유지를 받들어야 하는 옹골찬 의지를 가진 무장이어야 하지만, 전란 속에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그는 한 가족을, 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경험 때문에 언년이를 놓지 못한다.

추노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극적인 재미에서 힘을 잃고, 심지어 일부 배우의 연기 논란까지 덧붙이게 된 데에는 개인적으로는 이 송태하란 캐릭터를 제대로 구현하는데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아쉽지만, 자신의 연기에 논란이 이는 와중에 여전히 오락 프로와 라면 광고를 그 컨셉으로 찍어 안그래도 부족한 이미지에 마이너스를 만든 배우의 책임도 없지는 않은 거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송태하의 그러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갈등은 결국 선비들의 궐기론과 그가 그간 경험한 바에서 깨닫은 신중론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드라마 상에서는 언년이로 인한 송태하의 우유부단으로 보여졌다.

실제로 이 부분은 추노라는 드라마에서 굉장히 중요한 주제 의식을 보이고 있는 부분인데도, 언년이와 송태하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해 오히려 드라마에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바로 송태하의 호적수 대길이, 그는 송태하와 전혀 반대의 길을 걷는다. 자유자재로 무술을 구사하는 그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바로 책을 태워 언년이 손을 녹여줄 돌을 따뜻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양반집 도령의 철없는 사랑 노름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대길이란 인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양반이었지만 애초에 그 양반이 가져야 할 권위나 권세에 대한 미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즉 공적인 명예와 사적인 관계의 갈등이 가장 적었달까.

그가 비록 자신의 가문을 망하게 한 언년이와 그 오래비를 쫓아 다니지만 그 추노질의 목적은 잃어버린 재산이나 권세가 아니라 바로 사랑하는 언년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맹목적일 수 있고 계산 따위란 없이 양반 그 따위 벗어버리고 추노 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대길이 였기에, 막상 송태하와 마주쳤을 때 같은 양반임에도 두 사람의 가치관은 극명하게 대립이 된다. 송태하는 이전에 언년이의 가슴에 난 상처에 의혹을 지닌 적이 있고, 그 역시 노비로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그가 양반이고, 그가 지켜야 할 '충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그런 송태하의 분노 안에는 여전히 그가 한 시대의 엘리트이며, 무장이며, 양반이라는 기득권의 흔적이 자욱하다.

그런 그에 대해 대길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감정의 노예로서 분노만으로 작렬한다. 포효하는 짐승같은 대길에게 양반 따위, 송태하의 충절 따위는 하등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 대길의 분노는 곧 여전히 공명의 범주에서 노니는 송태하를 조롱하고 짓누르고자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은 아직 잠재태이다. 그들은 칼부림 속에서, 지쳐 널브러진 속에서, 그리고 갇힌 옥에서 나누는 대화 만으로 서로가 다름을 확인할 뿐이다.

두 사람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데 방해한 인물은 바로 다스베이더란 별칭을 얻은 황철웅이다. 그는 공명을 얻기 위해 자신을 팔았고(정승의 뇌성마비 딸과 결혼을 했고), 하지만 자신을 판 댓가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닫자, 자신을 샀던 장인의 목에 칼을 겨눈다. 그에게 사적인 관계는 오직 가난한 어머니 밖에 없고, 그 사적인 관계에서 오는 포한은 그로 하여금 공적인 영역에서의 거침없는 다스베이더를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그를 만든 또 하나의 사적인 동기가 있으니, 그건 바로 송태하란 절대 1인자! 그를 넘지 못한 시기심은 다스베이더의 또 다른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황철웅이란 인물을 다스베이더와 같은 무뢰배로 만든 장인 정승 이경식은 그의 권력을 위해 사위 조차도 희생시킨, 결국 인조 대왕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이다. 식음을 전폐한 딸 앞에서 사위를 진정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그런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처럼 보일 뿐이다.

물론 추노 속에는 보다 심오한 조선 시대 신분제를 둘러싼 심오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사실이지만, 그의 해석은 후손의 몫인 것처럼, 이 시대, 추노라는 드라마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역사의 해석을 요구한다. 지나간 시대 속에 우리는 늘 열심히 노력해서 입신양명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살아왔다. 지금도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운다, 수학을 배운다 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 혹시라도 늦을까 노심초사하며 달려들고. 그

런데, 조선 시대 한 임금의 어리석은 권력욕에서 비롯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운명의 소용돌이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같다. 과연 자식조차 죽여가며, 희생해 가며 당신들이 따르는 그 공명과 명예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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